우리끼리 비정상 회담!
10월의 어느 가을 늦은 밤.
마포 재래시장, 족발과 전을 24시간 파는 어느 한 가게 안 테이블에 한국사람과 네덜란드 사람이 각종 전과 떡볶이, 그리고 어묵탕을 사이에 두고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 한국 사람은 물론 바로 나고, 네덜란드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까운 직장 동료인 ‘리노’다. 그 친구의 Full name은 Rino Van Deventer로, Deventer 지역에서 온 Rino라는 뜻 정도 되겠다. 참 네덜란드 사람들 답게 이름도 간단하게, 그리고 실용적으로 짓는다.
우리가 보통 아는 서양인의 이름은 그들의 직업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네덜란드는 지명과 연관 지어 짓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함께 한국으로 출장을 와있다.
나는 네덜란드로 주재를 나가 있고, 리노는 내가 일하는 곳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직장 동료이자 통하는 부분이 많은 친구다. (80년 생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Sales Head로서 현지 Sales 팀을 이끌고 있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이 친구는 나이는 어리지만 배울 점이 참 많다. 그리고 잘 생겼다!)
대부분은 업무 이야기를 주로 하지만, 리노는 비밀 사내 연애를 하다가 나에게 첫 번째로 그녀가 누구인지 귀띔을 해주거나, 지금은 동거 중인데 내년 초에는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할 예정이라는 지극히 비밀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서슴지 않는다.
“리노, 그리고 네덜란드 인과의 대화”
그를 네덜란드의 표본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해보면 네덜란드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물론, 이 친구도 나에게서 한국인에 대한 그러한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친구도 각 나라의 표본은 아니지만, 대변은 할 수 있을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노는 한국 문화를 참 좋아한다. 단순히, 이방인으로서 좋은 점만 보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이 친구도 한국 회사에서 일한 햇수를 모두 합치면 약 10년이 다 되어간다. 한국사람들의 좋은 점, 나쁜 점, 배워야 할 부분과 배우지 말아야 할 부분은 알아서 거를 정도다. 다 늦은 밤, 마포 24시간 재래시장에서 맥주 한 잔 하자고 이끈 것도 바로 리노였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리노”
모든 네덜란드인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리노는 한국 문화를 참 좋아한다.
아, 물론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사실 한국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들에게 한국이라는 곳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의 본거지이고, 북한이 도발하는 위태위태한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 대형 일간지에 한국 기사가 나올 때면, 리노는 나에게 가져와서 많은 질문을 하는데 가끔 나오는 한국 뉴스는 다양하지 않다. 대부분 북한이 도발한 내용이거나 대기업이 내어 놓은 신기술과 신제품 뉴스가 주를 차지한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현재 시리아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매우 위험한 나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사실 이것도 ‘지역적’이야기다. 예전 중동 시장을 담당하며 시리아와 이라크 출장을 다녀봤는데, 그들은 오히려 우리 한국 사람을 더 걱정했더랬다. 전쟁(휴전) 중에 괜찮으냐며.
"우리끼리 비정상회담"
리노는 매운 것도 잘 먹고, 24시간 제공되는 각종 편의와 이와 더불어 함께 하는 한국의 ‘빠른’ 서비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칭찬한다.
“찰리 (내 영어 이름이다.), 난 한국이 참 좋아.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고. 그렇다고 네덜란드처럼 터무니없이 비싸지도 않고. 조금 전 우리가 치고 온 스크린 골프 같은 것도, 어떻게 그런 걸 생각해 냈는지 존경스러울 따름이야. 이건 네덜란드에 꼭 들여와야 해!”
어쩌면 땅덩이가 넓고 풍요로운 어느 유럽에서 온 사람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골프를 어찌 이리 답답한 방 안에 옮겨 놨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리노는 참 좋아한다. 맞아, 어쩌면 날씨가 좋지 않은 네덜란드에서 오히려 필요한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리노는 네덜란드인 답게 ‘실용적’으로 생각을 하는구나…!
“찰리, 그리고 말이야. 난 한국 사람의 도전 정신이 좋아. 가끔 일을 하다 보면 터무니없는 타깃을 받고 그것을 위해 건배하며 술 마시고, 너무 심한 챌린지가 있긴 하지만 난 그것이 한국 회사를 빠른 시간 내에 성장시킨 주요 원동력이라 생각해. 무언가를 정해 놓고 실제로 달려가는 모습이 참 매력적이야. 물론, 바뀌어야 하는 부분도 많아.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Too much 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한국 문화를 아는 나니까 그나마 이해하려 노력하는 거지. 찰리, 너 같은 젊은(?) 세대가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지양하고 있어서 난 기뻐. 그것이 내가 너와 함께 일을 즐기는 이유야.”
그렇구나. 고맙다. 리노.
맞아, 나도 좋지 않은 점은 지양하고 어떻게 하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거든.
아, 그건 그렇고, 네덜란드 하면 행복순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한데, 정작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어때?
“찰리, 맞아. 나도 우리 네덜란드가 행복순위가 높다고 알려진 것을 알고 있어. 그런데, 사실 정작 우리 젊은 세대는 그걸 몰라. 물론, 그 친구들이 아프리카나 오지를 다녀오면, 아 우리 네덜란드 고국이 참 살기 좋은 곳이고 난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는 하겠지.
그런데, 그래도 잘 몰라. 솔직히 난, 네덜란드 사람들이 참 잘못 길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해. 너, 그거 아니? 젊은 친구들이 도전 의식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 일하다가 잘리거나 그만두면, 2년간 마지막 급여의 70%가 제공돼. 그래서 이를 악용하는 사람도 많고. 행복 순위라고는 하지만, 걱정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이 행복을 뜻하지는 않아. 도전 의식도 많이 결여되고.
찰리 네가 한국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 네덜란드도 다르지 않아. 요즘엔 연금 기간도 줄고, 금액도 줄고 예전에 기성세대가 누리던 혜택들이 줄어들고 삶은 조금씩 팍팍해져 가고 있거든. 그래서 난 우리 젊은이들이 도전 의식을 좀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아 참고로 물론, 난 좀 달라. 우리 아버지도 그랬고. 우리 아버지는 70살이 다 되어 연금이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일을 찾아다니고 계셔. 그런 영향 때문인지 난 일을 즐기거든. 앞으로도 그럴 거고.”
역시 멋진 친구다. 리노.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은 도전의식이 있어도 안된다는 패배감에 '탈한국'을 꿈꾸고 있어. 실제로 사회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중학교 들어 갈 때부터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그 진로에 맞추어 삶에 적응하잖아? 그리고 직업의 귀천 없이 그 직업에 만족해하며 살아가고.
많게는 거의 50%, 적게는 15%의 세금으로 부를 나누기도 하면서 말이지. 그래서 마트에서 계산원을 하더라도 큰 박탈감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게 바로 행복을 느끼는 비결인 것 같아.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그런데 사실 지금 우리 회사가 그리 상황이 좋지는 않잖아? 만약 네덜란드 사람들도 자신이 다니는 회사 (네덜란드 회사인 경우)가 상황이 어려우면 위기 의식을 느끼거나 그 어려움에 동참하니?
“찰리, 아니, 회사는 회사이고 나는 나라는 생각이 더 강해. 그래서 만약 회사가 쓰러져가도 칼퇴근은 기본이고, 당장 다음 달에 차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계약서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이 부분은 맞기도 하기 틀리기도 하지만, 솔직히 내 생각으로는 네덜란드 사람들도 좀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한국 회사와 사람들이 Too Much 하다면 , 네덜란드는 Too Less라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중간 수준이면 딱 좋을 텐데 말이야!”
맞아. 우리 좀 섞자^^
내가 너와 일하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리고 우리가 우리 일을 즐기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케미’가 아닐까? 우리 한 번 잘 해보자.
난 근데, 네덜란드 사람들이 참 존경스러워. 땅을 일구어내서 만든 것도 그렇지만, 태풍이 불어도 꿋꿋하게 자전거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타고 가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해 보여. 너무 대단해서 무서워 보이기까지 한다니까^^
“찰리, 맞아. 그건 나도 인정해. 우리 선조들을 보면 없는 땅 만들어서 개간하고, 거기에 튤립과 같이 돈 되는 것들을 심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지. 난 참 감사해하고 있어 우리 선조들에게. 그거 알지? 유명한 속담. '신은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은 네덜란드를 만들었다'는. 난 우리 선조들이 이루어낸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맞다. 그건 나도 인정!
“아, 그리고 찰리. 난 참 한국사람들이 재밌는 건. All or Nothing 기질이 있다는 거야. 예를 들어, 수영을 보자. 나 호텔에서 어린 친구들이 정말 멋있는 자세로 수영하는 것을 봤거든. 완전 대표선수 같더라.
너, 그거 알지? 네덜란드는 운하가 많아서 어릴 적부터 수영을 배우거든. 단계적으로 배우는데 마지막엔 비옷을 입고 빠져서 나오는 수영을 배워. 그러니, 뭐 자세나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지. 물에 잘 뜨고, 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면 돼. 실용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한국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런데 한국인은 수영을 제대로 (정식으로, 자세 교정해가며) 배우거나, 아니면 아예 물에 뜨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아.”
하하하, 야 리노, 너 참 그런 거 잘 본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나 사실 수영 못하거든. 처음부터 자세 교정받고, 뭐하고 하려니 귀찮더라고. 그러니, 물에 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영어도 그런 것 같아. 네덜란드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자신 있게 영어로 이야기하잖아. 그게 문법에 맞건 틀리건, 소통으로서 대화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시험의 하나로 생각해서 말하기보다는 측정의 도구로 쓰고 있으니까.
그래서 국제 영어 소통 심사기관에서 측정한 순위가 네덜란드 2위, 한국이 24위 더라고. ‘영어공부’는 우리 한국이 몇 배는 더 할 텐데 말이야. (영어야 반갑다 너, 네덜란드에서 글 참조)
두 시간 반 이상이 걸린 우리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되어갔다.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배울 점이 있고 누구에게 장점이 누구에겐 단점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노와 같은 친구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업무도 그렇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통할 수 있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Rino 이름의 뜻 (코뿔소)처럼, 그 인생의 목표를 향해 힘차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알겠지, 리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