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공기와 낮은 하늘의 만남
화려했던 그 여름을 굳이 애써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중충하기만 할지 모르는 겨울을 담담하게 기다리며 받아들여야지.
이렇게 네덜란드의 가을은 겸손하게, 묵묵히 다가왔다.
어딜 가나, '가을'이라는 계절이 있는 곳은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색이 변하는 나뭇잎과, 언젠가 고개를 들면 찾아와 있는 노을을 보며 사람들은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가을은 이렇게 다가온다. 늘.
어수선했던 과거를 회상하고, 기약 없는 미래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성장한다.
그 사이에 있는 '지금'이라는 순간을 존중하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가을'임을 만끽하며.
네덜란드의 가을도 그리 특별나진 않다.
나무들은 저마다 색을 바꾸고,
기가 쇠해 늙어가는 머리 숱 없는 쓸쓸한 중년의 한 남자처럼 풍성함은 사라진다.
한국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높은 하늘이 가을의 상징이지만,
네덜란드의 하늘은 언제나처럼 낮고 넓다.
아침에 맞이 하는 알싸하고 습한 내음이 올 겨울을 예고하고,
옷깃을 좀 더 여미게 하는 바람이 올 추위를 예고한다.
길거리를 지나다 바라보는 형형색색의 나무와 나뭇잎들은,
가을이 있는 곳, 사람이 사는 곳엔 큰 차이가 없음을 상기시킨다.
조금은 다른 환경일지라도 '가을'이라는 계절에 당도한 순간,
어쩌면 가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거기가 어디든.
여기가 어디든.
당신이 누구든.
우리가 누구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