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네덜란드에는 운하도 많지만...
"Welcome to Holland!"
제주 한 호텔에 도착하여 평화롭게 돌고 있는 풍차를 보자마자 내가 외쳤다.
사람들은 박장대소까지는 아니어도 커다란 유쾌함을 감추지 않는다.
그들의 입에서 미소가 가시지 않고, 이 곳 제주를 매우 좋아하는 듯 보인다.
네덜란드인과 제주도의 인연
네덜란드에서 온 10명의 손님들은 서울을 거쳐 제주에 도착했다.
나는 현재 네덜란드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매 년 주요 거래선 손님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하는데 올해는 제주 일정이 특별히 추가되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인연은 가깝게 히딩크로부터 시작된다. 아마, 우리 국민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테지만, 네덜란드와의 더 오래된 인연은 다시 제주에서 시작된다.
모두 알고 있는 하멜표류기의 '하멜'이 그 주인공이다.
하멜은 동인도 회사 소속으로 일본 나가사키를 향해 가다 난파하여 1653년 제주 땅을 밟게 된다.
당시 조선 효종의 명으로 한양으로 압송, 감시를 받으며 생활하고 1666년 끝내 어선을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하게 된다. 이후 표류를 한 지 12년인 1668년 드디어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된다.
하멜과 표류한 22명의 선원 중에서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하멜이 유일했고, 그래서 그는 조선의 상세 지리와 역사 및 생활에 대해 기술할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그가 글을 쓴 이유는 (정말 네덜란드인 답게...) 역사의식이 투철해서라기 보다는, 표류당한 12년의 생활 동안 '자신은 놀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해서, 하멜이 네덜란드에 도착하자마자 한 것은 자신이 쓴 글을 근거로 하여 동인도 회사를 상대로 한 12년간의 임금 보상 요구였다. 결국 그는 임금을 받아냈고 다시금 인도로 항해를 떠난 뒤에는 독신으로 살았다는 정보 외에 이렇다 할 기록이 없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멜이 제주와 연을 맺은 첫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알고 있는 사람만 알고 있는 '박연 (얀얀세 벨테브레)'이 제주와 첫 인연을 맺은 사람이며 최초의 귀화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연 역시 1627년 일본으로 향하던 중 난파는 아니고, 땔감과 음료수를 구하려고 잠깐 들렀다 관원에게 잡혀 한양에 호송되고 훈련도감에서 근무하게 된다.
박연의 이름을 보면 유추할 수 있듯이 그는 한국에 매우 잘 적응하여 귀화, 이름도 바꾸고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기도 했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인지 축복인지, 박연이 도착한 후 26년 만인 1653년에는 하멜이 표류하여 상봉하게 되고, 서울로의 호송 및 통역, 관리감독과 한국의 풍속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한국과 네덜란드의 인연이 참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더 정이 가기도 하고!
여기는 삼다도(三多島)
손님들에게 제주와 네덜란드의 특별한 인연을 말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제주는 '삼다'로 유명하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귀를 쫑긋 세우는 그들에게 '삼다'는 '바람', '돌', '여자'라 설명했고, 이내 내 머릿속에는 네덜란드의 '삼다'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우선, 제주는 지리상 바람이 잘 날이 없고, 화산섬이라는 태생으로 돌이 도처에 깔렸고, 여자의 활발한 경제활동과 부지런함에 '삼다'가 완성된다고 한다. ('여자'의 경우 뱃일을 떠난 남편들이 돌아오지 못해, 홀로 된 여자들이 많아 그 수가 많고, 또 홀로 살아가야 하기에 억척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고 한다.)
그럼 네덜란드의 '삼다'는 무엇일까?
바람, 운하, 여자의 삼다국(三多國) 혼저옵서예!
첫째, 바람의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하면 풍차이고 이는 바람이 많이 그리고 강하게 분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바람이 네덜란드 땅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알다시피, 풍차는 바람을 잘 이용하여 이 나라 땅 3분의 1을 개간해냈다. 더불어, 이 바람으로 곡식도 찧고 물을 퍼올려 저지대에는 치명적인 홍수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서안해양성 기후인 네덜란드는, 북위 50∼53° 의 고위도에 속해도 멕시코 난류 영향으로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지만, 바람은 1년 내내 강력하게 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겨울에 부는 바람을 경험해보면 우리나라의 태풍 수준이어서 깜짝 놀라곤 한다.
한 겨울, 북해와 에이셜호를 가르는 대제방에선 정말 높이 점프를 하면 사람이 날아갈 정도의 바람이니 과연 '삼다'의 한 요소로 내세움에 부족함이 없다.
둘째, 운하의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운하로도 유명한데, 이는 17세기 무역 활성화에 따른 도시계획으로 이루어졌다.
90개의 섬과 1,500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촘촘한 운하망은 2010년 마침내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까지 등재되었다.
사실, 네덜란드는 운하가 많을 수밖에 없고 또 많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어 수면이 상승,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혈관이 피가 두루두루 잘 통하고 오갈 수 있도록 건강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연간 강수량이 700mm로 한국의 1,200mm보다는 적지만, 강수 일수는 약 200일로 한국의 두 배 가량 된다. 그만큼 비 오는 날이 많다.)
실제로, 1953년 2월에는 잘 버티던 네덜란드도 홍수로 인해 1800여 명이 사망하고, 16만 ha의 농경지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은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이에, 대형 댐과 하굿둑 건설에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 다시 한 번 더 제대로 준비한 '델타 프로젝트(1958년)'가 가동되었다. 이 때, 운하도 함께 정비되면서 미관은 물론 실용적인 면에서도 진일보하는 기회가 되었다.
셋째, 여자의 나라 네덜란드!
사실, 세 번째로 들고 싶었던 '삼다' 중 하나는 '자전거'였다.
전체 국민의 1.1배에 달하는 자전거가 있고, 이는 굳이 숫자를 들이밀지 않아도 네덜란드에 발을 들인 이상 볼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시금 '여자'로 '삼다'의 요소 중 하나를 선택한 이유는 제주와 매우 닮은 면이 있어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제주의 남자들은 뱃일을 주로 나갔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옛 네덜란드도 다름 아니었다.
해상무역과 식민지 개척으로 15~17세기를 호령한 네덜란드의 역사적 배경에 맞게, 옛 암스테르담 항구 터에는 '눈물의 탑'이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이는 긴 여정을 향해 떠나는 남편을,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탑으로 제주의 여성이 남편을 보내는 모습과 무리 없이 오버랩된다.
참고로, 1609년 헨리 허드슨 (뉴욕 허드슨 강의 시초)이 신세계를 향해 돛을 올렸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유럽 중에서도 여권 신장이 매우 높다. 네덜란드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74.3%로 OECD 평균 62.3%, 한국 55.2%, 영국 71.0%, 독일 71.7%보다 높고 이는 가장 높은 수치다.
(정말 같이 일하다 보면 네덜란드 여성들의 '억척스러움'을 자주 경험하곤 한다^^)
자, 이쯤 되면 제주도와 네덜란드와의 인연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고, 제주의 '삼다'를 떠올리며 네덜란드의 '삼다'를 떠올린 내가 완전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할 수있다.
그러고 또 이렇게도 말할 수도 있겠다!
바람, 운하, 여자 '삼다'의 네덜란드로 "혼저옵서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