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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6. 2018

운칠복삼

나의 미래에 쓰는 편지

흔히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한다.

운이 칠 할이고, 재주나 노력이 삼 할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일은 재주나 노력보다 운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해오다 보니 '운칠기삼'보다는 '운칠복삼(運七福三)'이란 말을 절감한다.

최고위 임원분들에게 질문을 해도 이와 비슷한 대답을 한다. 상승의 기류가 있는 그곳에, 그때 자신이 거기 있었다던가 실제로 '운칠복삼'을 거론하기도 한다. 성장의 시대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수혜가 없지 않았음은 기정사실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누린 사람과 누리지 못한 사람은 극명하게 갈린다. 그러니, '운칠복삼'이라는 걸, 나는 믿는다.


'운'에 대한 가치관은 각양각색이다.

어떤 이는 '운'은 타고나는 것이라 하고, 누군가는 '운'은 만들어가는 것이라 한다. 나는 그 둘을 다 믿는다. 어느 한쪽만 믿기에는 내 삶을 너무 한정 짓는 것 같아서다. '복'도 마찬 가지다. 타고나느냐, 만들어 가느냐는 그 누구도 쉬이 결론 낼 수 없다. 그저, 일어난 일에 대해 해석을 할 뿐이다. 대개는 끼워 맞추기 식이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운칠복삼'이란 말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10할의 요소로 내 앞길이 정해진다는 뜻인걸 상기해보면 희망적이기 어렵다. 

그럼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것인가. 어차피 정해진대로 흘러갈 것이니, 막살아도 되는 걸까. 그러고 보니,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 회사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 그러한 생각이 굳어질 만도 하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을 고정시켜 버리면 삶에 낙이 없지 않은가. 내가 '운'과 '복'은 타고남과 동시에 만들어가는 것 둘 다라고 믿는 이유다.


이미 타고는 '운'과 '복'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

그저 맞이해야 한다. 내게 허락된 그것들을, 아직은 모두 맞이 하지 않았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얼마나, 어떻게, 얼마큼 만들어야 하는 것에 대한 결론은 없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무어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앞 길이 불분명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는가 싶어도, '운'이 너무 천천히 오는 건 아닌가 싶어도.


훗날, 내가 어떤 것을 이루어 뒤를 돌아봤을 때 그러한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내가 가진 가장 큰 행운은, 현재에 집중하며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직장인으로서의 본업. 어수룩해도 꾸준히 써 내려간 글.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 고민을 나누며 진행한 강의와 코칭.


편지를 쓰지 않으면 답장을 받을 일도 없다. 

그러니, 나는 나의 미래에 끊임없이 편지를 쓰려한다. 간간이 오는 답장 속엔, 어쩌면 내가 바란 '운'과 '복'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앞 날에 대한 희망은, 미래에서 오지 않는다. 오늘의 나에게서다. 난, 그렇게 믿고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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