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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11. 2019

조직에서 존재감을 찾고 싶다면

[직장내공] 2장: 직장생활의 고비를 여유롭게 넘기는 마음내공

몇 달 만에 체중이 20kg 가까이 늘어난 적이 있다.


극도의 스트레스. 가장 힘들었던 시기.

술과 담배를 좋아하지 않는 탓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걸로 푸는 버릇이 있긴 하지만 20kg이나 증가한 건 보통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원인은 극도의 스트레스였다. 지금까지의 직장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때 알았다. 직장에서 가장 힘들 때는 일이 많아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허덕일 때가 아니라, 조직 내에서 존재감이 없을 때라는 걸.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그 시절의 기억은 매우 어둡고 우울하다.


입사 3년 차에 나는 부서 이동을 했다.

직장에서 부서 이동은 대개 다음 중 하나에 해당한다.


• 부서가 없어졌거나, 조직개편이 된 경우

• 일을 못해 방출된(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밀려 나가는) 경우

• 일을 잘해 스카우트되는(누군가 끌어가는) 경우

• 내가 정말로 원하는 업무가 있어서 사전 작업을 통해 이동하는 경우


당시 부서 이동을 했을 때, 난 이 상황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았던 부서 이동

국내영업 부서에 속해 있던 내가 해외영업 부서로 이동하려다가 걸린 것이 문제였다. 인사부서에서는 괘씸죄를 살짝 적용하여 본부 내 마케팅 부서에 일방적으로 발령을 냈다. 결론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다. 그 부서는 한마디로 잘 나가는 곳이었고, 누군가가 자기 후배를 끌어오려 사전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자리로 발령이 났으니, 그 부서 누구도 바라지 않은 엉뚱한 사람이 들어오게 된 셈이었다.


내가 원해서 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끌어준 것도 아닌 상황.

나를 포함해 모두가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 부서 사람들은 내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니 당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신입사원을 갓 벗어난 나는 3년 만에 그렇게 또다시 ‘비기너’가 되었다. 그것도 ‘낙동강 오리알 비기너’.


그때부터 비기너의 설움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외롭고 메마른 시간이 시작되었다.

역량은 검증되지 않았고, 평판에 대한 정보도 없고, 끌어준 사람이 없으니 누구 하나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하루 종일 멍하니 책상에 앉아서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일과 사람들을 구경했다. 신입사원 때보다 더 혹독했다. 3년 차인 사원은, 자신에게 일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살이 찌기 시작했다.

얼굴은 웃음기 없이 점점 굳어가고, 몸과 마음은 물론 영혼까지 지쳐갔다. 갑자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 쉬기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영혼이 망가지는 그 느낌을 견디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는 대로, 투명인간 취급하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름을 바꿔야겠다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존재감 찾기’의 시작은 ‘자신감’이었다.

자신감이 최우선이다.

살이 찌면서 떨어진 자신감에 누가 말 붙이기도 싫을 만큼 굳어 있는 얼굴까지, 나 같아도 손 내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후 매일 아침 출근하면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화장실에서 웃는 연습을 했다. 어색했다. 축 처져 있는 입꼬리를 두 검지 손가락으로 쭈욱 끌어올렸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저 뛰기만 하는 것이 지루한 내게 스쿼시는 궁합이 잘 맞는 운동이었다. 그렇게 석 달 만에 20kg을 뺐다.


이제 ‘흐름’을 바꿀 시간, 사람들이 손 내밀어주길 기다리는 대신 내가 먼저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자질구레한 일을 자진해서 도맡았다.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일을 안 준다고 서러워만 했지, 내가 일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바빠서 못 챙기는 일, 힘들어서 버리는 일은 나에게 보석과도 같았다. 단순 심부름부터, 시장조사, 경쟁사와의 소송 진행까지……. 소송에서 패하면 개인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선배들은 그 일을 기피했다. 당장의 업무 처리가 우선이어서 그들에겐 현장에 나갈 시간도 부족했다. 그런 일을 대신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나에겐 잃을 것이 없었고, 그게 오히려 용기가 되었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자신을 믿으며.

그렇게 점차 조직에서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갔다. 사람들은 나에게 웃으며 인사했고, 나에겐 더 많은 일이 주어졌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비기너의 설움을 그렇게 극복하고 그 부서에서 2년을 근무했다. 그곳을 떠나 해외영업 부서로 옮겨갈 때 많은 사람이 아쉬워하고, 또 누군가는 눈물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시작이란 늘 설렘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 경험 이후에도 나는 운 좋게도 여러 부서와 해외 지역 파견근무를 경험했다. 비기너의 시간이 반복된 것이다. 그때마다 예전에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렸다. 자신감을 갖고 궂은일을 도맡았다. 직급에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러면 어느새, 먼저 온 자가 나중 되고, 나중 온 자가 먼저 되어 있었다. 지금 속해 있는 조직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떠나든, 조직이 떠나든 언젠간 변화가 일어난다. 나는 비기너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비기너가 나 있는 곳으로 오기도 한다. 그건 직장생활은 물론이고,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반복될 운명이다.


비기너로서 존재감을 찾으려면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비기너의 삶은 언제든 반복될 테니 겸허하게 다른 비기너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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