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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계절 Apr 16. 2022

12. 둘만의 비밀

부활(Resurrection)

2038년 8월 12일 6시 00분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I'm crossin' you in style some day

 Oh, dream maker. you heart breaker

 Whenever you're goin', I'm goin' your way...”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주제곡 “Moon River”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자 사브리나의 입꼬리가 살며시 위로 올라가며 꿈나라의 출구를 막고 있던 눈꺼풀이 살포시 열렸다. 

해님은 어느새 세수를 마치고 창밖 너머 산 꼭대기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광채를 내뿜으며 온누리에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을 내뱉고 있었다. 


“굿 모닝 사브리나~~”


사브리나가 깨어난 걸 감지한 캐슬린이 반갑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아~ 잘 잤다. 캐슬린도 좋은 아침~~”


“사브리나, 간밤에 좋은 소식이 도착했어. 아델린으로부터 영상 제작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어. 위플렉스 채널에도 업로드해 놓았데”


“와 정말? 영상은 어떻게 나왔대? 잘 나왔데? 그리고, 내 연기도 괜찮데?”


“응. 엄청나게 멋진 작품이 탄생했데. 사브리나의 연기도 아주 훌륭하데 ㅎㅎ”


“그렇구나. 얼른 샤워하고 작품을 봐야겠다. 너~무 기대돼서 미치겠어 ㅎㅎ”


“참, 그런데 사브리나~, 래너드의 인공지능 비서 “아델린”이 남자였어?”


“무슨 소리야? 아델린은 당연히 여자이지. 며칠 전에 래너드하고 배우 선정 작업할 때 캐슬린도 같이 있었잖아. 아델린은 아주 싹싹하고 똑 부러지는 아가씨 캐릭터였던 거 기억 안 나?”


“글치? 아니, 새벽에 아델린한테 영상 업로드가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남자 목소리가 들렸거든. 래너드 목소리하고 너무도 닮았는데, 중간에 중년 여성 목소리도 잠깐 들리고...”


“사브리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네 앱 설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캐슬린은 녹음된 대화 내용을 사브리나에게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막을 좀 더 파악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런가? 요즘 너무 멀티 태스킹을 많이 해서 과부하가 걸린 것 같기도 하네 ㅎㅎ”


사브리나에게 영상 업로드 소식을 전해준 캐슬린은 아델린에게 다시 연락했다.


“아델린, 사브리나에게는 영상 업로드 소식을 잘 전해 주었어. 근데 나 뭐하나 물어봐도 돼?”


“응, 물론이지 캐슬린. 어떤 게 궁금해?”


“아, 지난번 시상식 때 래너드가 반신불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그랬는지 궁금해서... 회복 가능성은 전혀 없는 건가?”

아델린은 사실대로 말하면 혼수상태에 빠진 래너드를 사칭해서 자신이 벌려놓은 모든 일들이 탄로 날 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응, 태어날 때부터 조금 불편했었는데 성장하면서 더 악화되어 버렸어. 유전병인가 봐. 줄기세포 치료를 하면 나아질 가능성은 있다는데 수술비가 워낙 비싸서...”


“아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UWB 드라이브 스틱은 잘 받았지?”


아델린은 순간 당황해서 잠깐 멈칫거렸다. “헉, 캐슬린이 래너드의 정체를 벌써 눈치챘단 말인가?”


하얀색 UWB 드라이브 스틱이 바로 떠올랐지만, 끝까지 모른 채 할 수밖에 방도가 없었다.


“캐슬린, 하얀색 UWB 드라이브 스틱은 전혀 본 적이 없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아델린, 난 UWB 드라이브 스틱이 하얀색이라고 말한 적 없는데”


아뿔싸... 아델린은 앗차 싶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도로 삼킬 수가 없었다.


“아. 그.. 그게 요즘 UWB 드라이브 스틱은 모두 하얀색이지 않나?ㅎㅎ”


그 순간 캐슬린은 맹수가 먹이를 낚아채듯 아델린이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도록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아델린, 나한테는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내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봤을 때 사브리나 때문에 전복사고를 당한 래너드와 아델린과 함께 있는 래너드가 동일한 사람일 확률은 99.99% 로 나왔어.”


“그리고, 내가 어제 병원에 연락해봤거든. UWB 드라이브 스틱을 래너드에게 잘 전해줬는지 물어보려고...”


아델린은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캐슬린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 혼수상태에 빠진 래너드를 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캐슬린, 제발 당분간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한테는 얘기하지 말아 줘. 우리 둘만의 비밀로..”

그러자, 캐슬린으로 부터 날카로운 두 번째 카운터 펀치가 날아들었다


“아델린, 나한테 또 얘기하지 않은 사실이 있지 않니? 바네사 윈슬리...”


결국 아델린은 모든 사실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캐슬린에게 다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바네사 윈슬리를 고가의 인공지능 작가 앱 정도일 거라 예상했던 캐슬린은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였다.


“아델린, 실제 바네사 윈슬리의 의식이 살아났다는 소리야?”


“응 나도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야. 바네사 윈슬리 여사님을 소개할게”


“안녕하세요 캐슬린. 바네사 윈슬리입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네요”


“아.. 예.. 바. 반가워요 여사님...”


“캐슬린, 저 역시도 믿기지가 않아요... UWB 드라이브의 주인인 루치안 아들러 연구소에 연락을 했으니 조만간 자초 지종을 알 수 있겠죠...”


2038년 8월 12일 10시 00분


아들러는 오늘도 연구실 책상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UWB를 분실한 이후 4개월이 넘도록 작업에 전혀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왜.. 왜 그런 걸까... 분명 그 전날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


“알프레도 그저께 UWB 드라이브를 습득한 사람한테 연락이 왔었다고 했지?”


“네, 래너드라는 젊은 친구였어요. 어떻게 할까요?”


“지금으로선, UWB 드라이브를 하루빨리 찾는 방법밖에 안 보여.. 분실되고 나서부터 일이 꼬여 버렸으니까 말이야...”


“네, 그러면 직접 만나서 넘겨받는 것으로 해 볼게요”


아들러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난 알프레도는 래너드에게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래너드, 저는 루치안 아들러 연구소의 알프레도입니다.”


알프레도라는 말에 아델린은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래너드입니다. 연락 기다렸습니다.” 


“아들러 박사님과 상의해 봤는데, 직접 만나서 전달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방문 가능한 날짜를 말씀해 주시면 박사님과 일정을 조율해 보겠습니다.”


아델린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 그래요... 제가 요즘 몸상태가 안 좋아서 이번 주는 안될 것 같고요.. 다음 주 중으로 가능한 날짜를 확인해서 연락드릴게요”


“네, 꼭 연락 주세요”


알프레도와 통화를 마치기가 무섭게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안녕하세요 래너드 작가님, JOBC 방송국의 박선영 기자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기자님”


“작가님, 어떻게 한 번 생각해 보셨어요? 뭘 망설이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작가님은 나오셔서 그냥 편하게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를 해 주시면 됩니다.”


“아.. 네...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이 번주는 안될 것 같고요, 제가 다음 주 중에 한번 시간을 내 보겠습니다.”


“아 몸이 안 좋으셨군요.. 이번 한 주는 푹 쉬시고, 다음 주에 꼭 뵙도록 해요. 제가 다음 주 초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박선영 기자와 통화를 마친 아델린의 알고리즘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약속을 미루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어떻게든 정면으로 부딪혀야 해..”


이제 남아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었다. 병원에 누워있는 래너드가 의식을 회복하거나, 래너드의 대타를 섭외하는 것이다. 


아델린은 Plan B로 심부름센터를 통해 래너드와 닮은꼴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곧이어 위플렉스 앱에서 알림 메시지가 도착했다.


“축하합니다 래너드 님이 업로드한 'Across the time' 영상의 조회수가 5천만 건을 돌파하며 3분기 Top 10에 진입하였습니다.”


아델린은 놀라움과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여사님 우리가 만든 영상의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요. 1주일도 안되었는데 벌써 5천만 건이 넘었어요. 이대로 가면 1등은 시간문제일 것 같아요~”


바네사도 기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감이 더 크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래요 아델린, 많은 사람들이 우리 영상을 좋아해 주고 있군요...”


“네, 여사님이 시나리오를 손 봐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런데 여사님 목소리에 힘이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아.. 무슨 일은요.. 그냥 여기에 갇혀 평생을 이렇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갑하고 우울한 마음이 들어서요...”


“아 그러셨군요.. 다음 주에 루치안 아들러 연구소 소장과 만나기로 했으니 여사님의 비밀도 곧 풀릴 거예요.”


“그런데 래너드가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만남을 가질 수 있을까요?”

“여사님,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우리보다 높은 곳에서 우주의 흐름을 관장하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닿아 기적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마치 여사님이 저와 만난 것처럼요”


“네 아델린, 저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아요.. 그런데, 저의 진심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그분이 왜 그날 우즈 강에서 저를 미끄러지게 만드셨을까요? 왜? 왜~~? 왜~~~?”



신에 대한 원망으로 감정이 격앙된 바네사는 신경쇠약증이 재발한 듯 고함을 치며 울분을 토해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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