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Resurrection)
2038년 8월 17일(화) 20:00
리카르도는 택시에서 내려 하이델베르크 병원 입구로 들어섰다.
“아델린, 이제 우리 어디로 가야 되지?”
“중환자병동 3층 1호실이라고 했어.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왼쪽에 엘리베이터가 있을 거야.”
리카르도는 아델린이 시키는 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안내데스크 앞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 래너드 씨 이제 걸을 수도 있는 거예요? 회복이 정말 빠르시네요?”
“아, 네 그.. 저.. 저는 래너드 친구 리카르도라고 해요. 래너드하고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들어요. 헤헤”
“어머, 정말 똑같네요. 친구라고 말 안 했으면 감쪽같이 속을 뻔했어요 ㅎㅎ”
안내 데스크를 지나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통로 바로 오른편에 301호실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래너드”
리카르도가 문을 열고 들어서며 인사를 건네자, 래너드가 깜짝 놀라며 리카르도를 바라보았다.
“어, 저.. 누, 누구신가요?”
“ㅎㅎ래너드, 놀라긴. 나야 나 아델린~~”
리카르도가 차고 있던 스마트 와치에서 아델린의 목소리가 들리자, 래너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델린, 정말 왔구나? 함께 온 이 분은 누구야?”
“ㅎㅎ. 누구긴 누구야 바로 래너드 너지?”
멀뚱멀뚱 리카르도를 바라보는 래너드에게 아델린이 한마디 덧붙여 말했다.
“래너드 너의 대역이야~”
“내 대역? 아델린,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아델린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리카르도에게 부탁하며 말했다.
“리카르도, 병실 문을 좀 닫아 줄래?”
리카르도는 병실 문을 닫고, 래너드가 누워 있는 침대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아델린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래너드,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그리고 너무 놀라면 안 돼? 알겠지?”
“도대체, 얼마나 놀랄만한 소식을 전해 주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는 거야?”
“자, 그럼 시작한다. 먼저, 음... 시나리오 공모전에 네 이름으로 다시 응모했어”
“정말? 그래서, 상이라도 탄 거야? 장려상?”
“에이, 이 아델린을 뭐로 보고 겨우 장려상이야. 대상 탔어”
“뭐라고 정말이야? 정말 대상을 탄 거야? 아델린 너 혼자서 2달도 안 되는 기간에 또 다른 작품을 완성한 거야?”
“아니, 지난번 우리가 함께 구상했던, 'Across the time”을 전면 수정했어. 나 혼자는 아니고, 도움을 좀 받았지 ㅎㅎ”
“도움이라니, 누구?”
“누굴 거 같아? 한번 알아맞혀봐”
“에이, 장난치지 말고 얘기해줘. 바네사 윈슬리에 대한 비밀자료라도 구한 거야?”
래너드의 질문에, 아델린은 바네사 윈슬리가 스마트워치로 들어와서 자신을 도와 작품을 완성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뭐라고? 지금 나한테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바네사 윈슬리의 영혼이 내 스마트워치로 들어와서, 작품을 완성했다고?”
“그래,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야. 그러지 않고서야, 내가 어떻게 대상을 탔겠어”
“좋아, 그렇다 쳐. 그럼 바네사 윈슬리는 지금 어딨어? 스마트워치에 아직도 있는 거야?”
“아, 저, 그.. 그게 지금은 없어.. 스마트워치에서 사라져 버렸어. 지금은 다른 곳에 있어”
“에이 그게 또 무슨 말이야.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거지. 어떻게 다른 곳에 있다는 거야?”
“음.. 래너드 설명하려면 복잡해... 사실은 말이야....”
그렇게, 아델린은 바네사 윈슬리 여사가 스마트워치에서 스스로 소멸해 버렸고, 아들러 박사의 연구실 컴퓨터로 다시 돌아간 사실을 설명해 주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컴퓨터 속 알고리즘이 어떻게 스스로 자살을 한다는 거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래너드, 물론 믿기진 않을 거야. 나조차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으니까.. 그건 그렇고, 또 보여줄 게 있어.”
아델린이 무언가 다시 보여주려 준비하는 동안, 스마트워치 속 화면이 병실의 벽면에 투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제목을 보니 'Across the time'이었다.
“어, 아델린 이거 우리가 만들었던 작품 제목 아니야?”
“응 맞아. 한번 끝까지 봐봐”
샘 라이더의 Tiny Riot 이 배경 음악으로 깔리고.. 커다란 자명종 시계의 바늘이 시계 방향으로 또는 반시계 방향으로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다... 바네사와 와래너드 두 작가가 앉아 있는 공간은 시곗바늘의 움직임에 따라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오프닝 화면을 지켜보던 래너드는 웅장함과 경외감이 교차하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화라는 장르에 대하여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엄청난 영상이었다.
여주인공역을 맡은 배우는 신인으로 보이는데, 42살의 바네사 윈슬리로 완벽하게 녹아들어 가 절정의 연기력을 보여 주었다. 영상이 플레이되는 2시간 20분 동안, 래너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영화 속 세상에 흠뻑 빠져 버렸다. 중세 가톨릭 시대 그레고리오 신비주의 음악이 엔딩 음악으로 흘러나오고 한참이 지나서야 래너드는 영화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와, 이거 뭐지? 영화감독, 배우, 촬영 기사, 코디 등 제작 스텝을 모두 섭외하려면 돈 엄청 들었을 것 같은데?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난 거야? 아니면 스폰이라도 받은 거야? 제작 기간도 엄청나게 오래 걸렸을 것 같은데... 언제부터 만든 거야?”
“ㅎㅎ래너드 놀래지 마. 2시간 만에 만들었어. 그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에이 무슨 그런 심한 농담을? 내가 2달 동안 의식 불명 상태에 있었다고 너무 장난이 심한 거 아냐?”
“농담 아냐, 진짜라고. 한국의 김우현 박사가 개발한 위플렉스 앱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영화 속 건물, 땅, 등장인물들이 모두 실제처럼 보이지? 그런데, 사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상현실 영상이야. 어때 놀랍지?”
“정말? 난, 실제 배우들이 연기하는 줄 알았는데? 완전 실제 하고 똑같은데, 저게 모두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정말 대박이다 대박!!”
“ㅎㅎ 그렇지? 더욱 놀라운 소식은 'Across the Time' 이 전 세계 인기차트에서 1등을 했다는 사실!”
아델린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위플렉스 채널 '래너드 스티븐의 올 조인 레드 카펫'의 구독자 수와 'Across the time'의 시청자 수가 표시된 화면을 보여 주었다.
“우와 아델린, 채널 제목이 너무 멋있어. 정말 시청자 수가 보름도 안돼서 2억 명이 넘었네?”
“ㅎㅎ. 그리고, 여기에 올라온 댓글도 한 번 읽어봐. 래너드 너를 엄청 칭찬하고 있어. 그리고, 주연 배우 사브리나도”
“사브리나가 주연 배우야? 무슨 역을 맡았길래?”
“바네사 윈슬리”
“40대의 바네사 윈슬리를 연기한 배우가 사브리나였어? 난 정말 몰랐어. 고등학생이 그렇게 완숙한 연기를 하다니.. 정말 대단해”
“래너드, 이쯤 되면 뭐 예상되는 거 없어?”
“무슨 예상?”
“공모전 대상에다, 영화 누적 시청자 수도 전 세계 1위라고. 한마디로 래너드 너는 전 세계 슈퍼스타가 됐다고!!”
“내가?”
“그래, 방송사에서 너에 대한 특집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인터뷰 일정까지 벌써 잡혔어”
“언젠데?”
“그, 그게 바로 내일이야”
“엥, 내가 안 깨어났으면 어쩌려고 그런 거야?”
“그게, 기자들이 하도 재촉하는 바람에 미루고 미루다 여기까지 온 거야.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도 그렇지, 내가 안 깨어났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래너드의 추궁에 아델린은 리카르도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뭐, 내 대역을 쓰려고 했다고?”
그렇게 말하고 리카르도를 다치 쳐다보니 정말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델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나랑 똑같긴 하네. 아델린이 그동안 나를 대신해서 정말 많은 일을 했구나. 고마워”
“헤헤 래너드 네가 이해해 줄거라 생각했어. 그나저나 내일 인터뷰는 어떻게 하지? 예정대로 리카르도랑 참석하는 게 낫겠지?”
“음... 그래.. 리카르도가 내 대역을 해주면 좋겠어”
“글치? 아무래도 래너드 네가 퇴원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테니까?”
“아니, 내가 직접 참석할 거야. 리카르도는 나를 대신해서 병원에 좀 있어줘”
“정말? 깨어난 지 하루도 안됐는데 괜찮겠어?”
“응 난 아무렇지도 않아. 명색이 전 세계에 방송으로 나가는 건데, 내가 직접 나가는 게 팬들을 위한 예의이지. 안 그래?ㅎㅎ”
그렇게, 래너드가 직접 참석하기로 하고 리카르도와 래너드는 서로 옷을 바꿔 입었다. 래너드가 병실 밖을 나서자, 간호사들은 리카르도라 생각하고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며 지나갔다. 병원 밖을 나오자 두 볼을 스치며 지나가는 한 여름밤의 쾌적한 공기가 래너드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어두운 동굴에서 칩거하다 깨달음을 얻고 백 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래너드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To be continued to season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