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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계절 May 26. 2022

16. (래너드) 의식을 회복하다

부활(Resurrection)

래너드가 연구소를 떠난 것이 확인되자 아들러 박사는 꺼져 있던 컴퓨터 스크린을 다시 ON 시켰다.


“바네사 여사님, 기분은 좀 어떠세요?”


“글쎄요. 내게 기분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래너드하고 만남은 잘 되었나요?” (바네사는 방금 전 있었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시치미를 때며 물었다)


“네, UWB 드라이브 스틱은 잘 돌려받았어요. 그런데, 여사님이 어떻게 래너드의 스마트워치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어요”


“래너드라는 친구는 어떤 사람인 것 같던가요?” (바네사는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래너드가 갑자기 깨어나서 찾아올 리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짧은 시간 동안 만난 거라 잘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많이 긴장한 듯 보였어요. 마치, 오기 싫은데 억지로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난번에 여사님이 래너드의 스마트 워치로 들어갔다고 하시길래, 저는 UWB 드라이브 스틱의 지문 인증 기능이 고장 났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아까 래너드의 지문으로 시험해 봤는데 인증이 실패되더라고요.. 분명 고장은 아니에요.”


“그래요? 그거 이상하네요. 분명히 래너드가 지문인증에 성공 후 데이터를 모두 옮겼다고 했는데...” 


“네, 그렇게 말하셨죠. 그래서, UWB 드라이브 스틱의 접속 로그를 살펴봤어요.”


“어떻던가요?”


“그게,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요. 사실 말이 안 되는 결과가 나와서...”


“무슨 소리죠?”


“UWB 드라이브 스틱은 저와 여사님의 남편 세바스찬 윈슬리 두 사람의 지문만 등록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지문 인증 성공 이력이 확인되었어요. 데이터를 옮긴 이력도요. 죽은 남편이 살아나서 인증을 했다는 건데... 말이 안돼요...”


“그래요? 분명 래너드라는 청년이 지문 인증을 성공했다고 했어요. 서로 다른 사람의 지문이 동일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죠?”


“870억 분의 1이에요. 사실 0이라고 보면 돼요. 무엇보다, 오늘 새벽에 테스트했을 때는 래너드의 지문으로 인증이 안되었어요. 래너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지문 인증에 성공했다는 얘기인데... 저 아니면 세바스찬 윈슬리 중 한 사람이라는 얘기죠...”


“그럼, 박사님은 아닐 거고.. 그렇다면 제 남편이 살아나서 래너드에게 마법을 부렸단 얘기인가요?”

아들러 박사도, 바네스 윈슬리도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네사의 생각은 의문점을 풀 수 있는 마지막 실타래인 래너드를 향하고 있었다. 오늘 새벽에 방문한 남자가 래너드의 대역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래너드라는 청년의 정체는 뭘까? 이름도 남편하고 비슷하고.. 나의 작품을 좋아하고...

그런데, 지금은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죽은 남편이 그의 몸으로 환생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그냥 870억 분의 1 확률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졌지만 시원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래너드가 깨어나서 실제로 만나보면 좀 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들뿐이었다. 그러자, 아들러 박사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질문이 생각났다.


“박사님, 제가 이렇게 깨어난 게 남편의 부탁이라고 했었죠? 앞으로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리고, 남편은 언제 깨어나는 거죠?”


아들러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잠시 생각을 다듬었다.


(아들러의 머릿속 의식의 흐름) “남편이 깨어나면 디지털 결혼식을 하는 거야. 그리고, 휴머노이드에 주입된 이후 실세계에서의 삶이 시작될 수 있겠지... 그래, 거기까지만 이야기하자... 프리메이슨이니, 인공지능의 총수이니 하는 것은 나중에 남편이 깨어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까...”


그러자, 바네사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디지털 결혼식이라니 너무 설레네요. 그리고 실세계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순간 아들러는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흠칫 놀라며 스크린 속 바네사를 쳐다보았다.

“여사님,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예전에 얘기했었던가요?”


“무슨 소리예요? 방금 전 저한테 남편이 깨어나면 디지털 결혼식을 할 수 있을 거고, 그리고 휴머노이드 얘기도 했었잖아요?”


“네, 제가요?”


“네, 그런데 프리메이슨은 뭐고 인공지능의 총수는 무슨 말이에요?”


순간, 아들러 박사는 3년 전 니콜라스 요원이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바네사 윈슬리의 뇌가 성공적으로 복제된다면, 슈퍼(최상위) 프로세스가 자동으로 실행되게 될 겁니다.

인공지능의 총수가 되어, 모든 인간의 의식의 흐름을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그 프로세스가 말이오...”


소름이 돋았다. 바네사 윈슬리의 뇌가 성공적으로 복제 완료되었다는 기쁨도 잠시..이제 그녀 앞에서 생각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에, 저 갑자기 몸이 이상하네요. 잠시 병원을 다녀와야 할 것 같네요.”


바네사가 대꾸를 하기도 전에, 아들러는 쏜살같이 연구실 밖을 빠져나가 버렸다. 연구실 방안에 혼자 남은 바네사의 머릿속엔 방금 전 들었던 알 수 없는 말들이 계속 맴돌았다.


“프리메이슨, 인공지능의 총수, 모든 인간의 의식의 흐름을 지배하는 슈퍼 프로세스....”


2038년 8월 17일(화) 14:00


아들러 박사와의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리카르도는 첫 번째 과제를 잘 마쳤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푹 파묻혀 앉았다. 바네사와 반가운 조우를 하고 돌아온 아델린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마치, 헤어진 엄마를 다시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ㅎㅎ리카르도, 아주 잘했어요. 이제 내일 있을 방송사 인터뷰만 잘 끝내면 되겠어요.”


“아, 나야 뭐. 돈 받고 하는 거니까.. 근데, 좀 찝찝하긴 하네요.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에이, 뭐가 찝찝해요. 아무도 못 알아볼 거예요. 오늘처럼만 하면 돼요”


“아들러 박사야 혼자 잠깐 만나는 거라 괜찮았는데, 전 세계로 중계되는 방송에서 래너드를 사칭해서 연기를 하려니 좀 떨리기도 하고 걱정도 되네요...”


사실, 아델린도 좀 걱정이 되긴 했다...실수할 걱정... 누군가 날카로운 눈썰미로 가짜임을 알아챌 가능성..

“리카르도, 그래서 내일은 말은 최대한 아끼고, 침착해야 돼요. 서두르지 말고. 우리가 사전에 연습한 주제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답변을 피해 가는 걸로 하고..립싱크할 때 너무 입모양을 크게 안 벌려도 돼요. 오히려 입술을 적게 움직이는 게 나아요.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 걱정할 것 없어요.”


그렇게, 아델린과 리카르도는 오후 시간 내에 수십 번 가상 질문에 답하는 연습을 하고 나서야 저녁식사를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2038년 8월 17일(화) 19:00


리카르도가 저녁식사를 하러 간 사이, 아델린도 충전 패드에 누워 메모리에 누적된 가베지(쓰레기 값)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었다.


모처럼 달콤한 재충전의 기쁨을 즐기고 있는 그 순간, 스마트워치의 스크린이 깜빡이며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래너드 스티븐의 의식이 돌아왔으니, 보호자는 병원 중환자실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도 뜻밖의 메시지에 Idle 상태에 있던 아델린의 모든 프로세스가 다시 활성화되었다. 혼수상태에 빠진 지 40여 일 만에 다시 래너드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뚜~. 네, 하이델베르크 병원 중환자실입니다.”


“안녕하세요. 래너드의 보호자 아델린입니다. 래너드가 깨어났다구요?”


“네, 10분 전부터 의식이 돌아오더니 지금은 사람들을 알아보고 말도 하기 시작했어요. 병실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뚜~. 래너드입니다.”


“래너드, 나 아델린이야. 이제 괜찮아진 거지? 불편한데 없고? 배는 안고파?”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아델린의 질문 세례에 래너드가 웃으며 답했다.


“ㅎㅎ 아델린, 진정해. 나는 괜찮으니까 이제. 그나저나 그동안 별일 없었지?”


“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야.. 난 영원히 널 못 보는 줄 알았잖아. 다시는 그런 짓 하면 안 돼? 알겠지?”


“ㅎㅎ 그래 알았어.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음.. 래너드 네가 정말로 깜짝 놀란만 한 일들이 있었지. ㅎㅎ이건 전화로 설명하려면 좀 길고, 직접 만나서 얘기해 줄게. 1시간 내로 내가 병원으로 갈게”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지 궁금하네. 그런데 병원엔 어떻게 오려고?”


“ㅎㅎ 다 방법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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