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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멸다 어질 현 Nov 17. 2024

가족관계증명서, 가벼움을 찾다 1

학습 효과: 자발적 K 며느리

2남 6녀의 장남, 나의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보유하고 있는 위치이다. 

즉, 나의 어머니는 맏며느리다.


장남(남편)-시누이 1-시누이 2-시누이 3-시누이 4-시동생 1-시누이 5-시누이 6

이렇게 적어두면 나의 어머니가 수십 년을 짊어지었을 무게가 가늠이 되는가? 

어머니가 집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막내 시누이, 즉 나의 막내 고모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어린아이였었다. 


나는 명절이 정말 싫었다. 

유달리 감각이 더 예민하던 어린 시절, 

차만 타면 멀미를 하던 나는 검은 봉지를 손에 들고, 

명절 막히는 도로를 참아가며 시골로 향하는 차의 뒷좌석에 껴 있었다. 

나는 4남매의 둘째이다. 4명의 아이가 크지 않은 차 뒷좌석에 쪼르륵 밀착하여 2시간을 참고 가야 했다.

창문을 수시로 열어가며, 멀미를 참아가며 도착한 시골은 일을 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명절은 힘들게 차를 타고 가서, 수십여 명이 먹을 최소 9끼~12끼를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하고 나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명절 음식 만드는 것을 돕기 시작한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편안 옷을 입히지 굳이 깔끔하게 옷을 입고 인사 한 번하고 옷을 갈아입는 이 과정이 나는 참 부질없게 느껴졌다. 


맏며느리는 3~4일간 이어질 명절 동안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 

제멋대로 놓인 할머니표 부엌을 정리하고 밑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시작한다. 

내가 언제부터 전을 부치기 시작했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초/중/고 거의 모든 시간 동안 전을 부치는 것은 늘 언니와 나의 몫이었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하루 종일 기름 냄새로 온몸을 치장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사이사이 식사 시간이 되면 밥상을 따로 준비한다.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면, 이제 이 음식들로 명절 내내 밥을 차려내며 어머니는 시댁에서 보낸다. 

나는 명절 당일 오후부터는 며느리는 친정에 돌아가서 지낼 수 있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임을 알지 못했다.


자랄수록 의문만 가득했을 뿐이다. 

'분명 고모들은 본인들 엄마 보러 고모부들과 친정에 왔는데, 

왜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 보러 못 가지?' 

 

나의 외갓집은 아이들이 가고 싶다고 아빠를 졸라야지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제 그만 외가댁 가자"고 아빠를 한참 조른 후에야 20~30분여 거리에 떨어져 있는 외가댁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서너 시간 외가댁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외가 식구들의 따뜻한 말투와 행동이 편안하다.

늘 미소가 가득한 공간이다. 마당에 있는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따먹는 것도 즐겁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 고모들이 친정(엄마의 시댁)으로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다시 짐을 챙겨 아빠의 본가로 가야 했다. 

나의 외갓집은, 엄마의 친정은 고모네(시누이네)가 오기 전까지만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고모들은 그렇게 본인의 친정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는 친정에서 다시 시댁으로 불려 와서 고모네 식구들이 먹을 밥을 차린다. 

늘 그랬다. 

단 한 번도 명절의 마지막을 외가댁에서 마무리한 기억이 없다. 

늘 시댁으로 돌아와서 온갖 수발과 정리 마무리를 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음 착한 우리 엄마는 그 누구의 험담도 하지 않으신다. 

좋은 면만 말씀하셔서 그게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음을 느끼지 못했었다. 


성격 강한 아빠네 남매들과 수십 년 풍파를 겪은 뒤에야

마침내 엄마는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 그 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졌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기억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잊고 싶으니까.


하지만 보고자란 것의 무서움으로 

나는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낮추는 며느리 생활을 시작했다. 

그 누구의 강요도 없었지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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