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형사가 내 말을 끊었다. 손에 쥔 맥주캔을 가볍게 우그러뜨리더니 탕 소리가 나도록 책상에 내려놓았다.
"후... 야 순덕아."
"네."
"너가 죽은 최선화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은 알겠어."
"아 그런 사이는 아니었구요..."
"아니 아무튼간에. 그렇고 그런 사이이든 아니든 나는 상관없다고. 응? 순덕아.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아니요..."
"하."
형사의 한숨에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눈을 내리깔았다. 눈을 바닥으로 내릴 때 뒤통수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형사는 어깨에 손을 대고 이리저리 목을 돌리더니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지금 너한테 그런 시시콜콜한 것을 이야기하라고 시킨 게 아니라는 말이지. 하필이면 내가 쉬는 날에, 같은 아파트 사는 고삐리인지 대학생인지 모를 남자애가 피 묻은 칼을 들고 나한테 왜 왔느냐를 설명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거란 말이야. 응?"
형사의 얼굴이 벌게졌다. 형사는 답답한지 티셔츠 목덜미를 잡고 펄럭 펄럭하더니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래서, 니가 안 죽였다고?"
"네! 정말이에요! 제가 왜 죽였겠어요!"
"그럼 증거는?"
"네?"
"증거 있냐고 니가 안 죽였다고 너 대신 말해줄 증거."
형사가 진정이 되었는지 평온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형사의 표정과 반대로 복잡해졌다. 내가 선화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줄 증거. 그런 것이 나에게 있을 리 없었다. 내게 있는 것은 아까부터 계속 저릿하게 머리를 누르는 통증과 형사에게 맞아 살짝 부은 턱이 전부였다.
"병신 같이 범행도구인 칼은 챙겨놓고 아무것도 없다 이거지? 그래 놓고 너가 안 죽였다고?"
형사가 한심하다는 듯이 쯧쯧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나는 형사의 말에 주머니 속에 있는 선화의 휴대폰이 생각이 났다. 왼쪽 허벅지에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니 형사가 주머니를 뒤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형사에게 이야기했다.
"저기... 제가 선화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데요..."
"뭐? 그걸 네가 왜 갖고 있어?"
"선화가 손에 쥐고 있어서... 제 휴대폰인 줄 알고 빼왔는데 아니었어요."
"너도 참 골 때리는구나. 줘봐."
형사가 손을 내밀었다. 두툼한 손바닥에 군데군데 붙은 굳은살이 휴대폰을 넘기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뭐해? 빨리 내놔."
형사가 내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잠시 움찔했으나 형사의 손에 휴대폰을 넘기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형사는 내게 받은 선화의 휴대폰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버튼을 몇 번 누르고는 켜지지 않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형사가 중얼거리며 방에 들어갔다 오더니 분석실에 일단 넘겨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 맞는 충전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기 형사님..."
"왜?"
"선화는 죽은 게 맞겠죠?"
내가 머뭇거리며 묻자 선화는 이상한 사람 본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대답했다.
"죽었다며?"
"네?"
"아니 니가 그랬잖아. 죽었다고. 아니야?"
"아니 그건 맞는데... 다시 확인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야 순덕아."
"네?"
"후우. 경찰이 한가한 줄 아니? 너 같으면 갑자기 비번날 들이닥친 애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것 같아요!' 하면서 주머니에 씨바 칼 꽂고 지랄하면, 아 그래요? 얼른 출동시키죠! 하면서 사이렌 왜애앵 울리면서 수색할 것 같아?"
형사의 얼굴이 다시 벌게졌다.
"니가 주머니에 사시미만 없었어도 그냥 한대 쥐어박고 돌려보냈을 거야. 알아? 에이씨 재수가 없으려니까 말이야. 너 뭐 약 같은 거 하는 거 아니지? 에휴. 그냥 시바 삶이 좆같아서 묻지 마 살인했어요 하지 무슨 친구가 뒤졌다고 말을 하냐. 이왕 들은 거 수사는 해야 하니까 기다려. 일을 아주 만들어주네 만들어줘."
나는 말문이 막혀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전개였다. 형사에게 다 털어놓으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형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다짜고짜 칼을 들고 찾아온 사람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형사는 일단 서에 가야겠다며 재킷을 챙겼다. 나에게 주먹질을 할 때 손에 둘둘 말았던 카키색 재킷을 툭툭 털어 걸친 그는 나에게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형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나를 묶어 두었던 의자에 다시 앉혔다.
"야 순덕아."
"네."
"내가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내가 어제 차를 수리를 맡겼어."
"네."
"그래서 그런데, 내가 서에 가서 차 타고 올 테니까 어디 나가지 말고 여기에 있어. 어차피 너 인적사항이랑 다 아니까 굳이 다른 데 가서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알았지? 맘 같아서는 내가 너 묶어두고 싶은데, 지금 수갑도 없고 요즘 인권 어쩌구 하도 말이 많아가지고 말이지."
"네. 여기 가만히 있을게요."
"그래. 그리고 저.. 아까 때린 일은 어쩔 수 없었다. 누구든 모르는 사람이 칼 들고 집에 찾아오면 그럴 거야. 이해하지?"
형사가 짐짓 미안한 듯 말했다. 얼굴이 다시 평소의 색으로 돌아온 것을 보니 적잖이 다혈질인 성격인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형사를 먼저 보내기 위해 최대한 협조했다. 형사는 내가 고분고분하게 알겠다고 하자 마음이 놓였는지 목이 마르면 냉장고에 물이 있으니까 꺼내 마시라고 까지 이야기한 다음 금방 돌아올 테니 얌전히 있으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