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시간은 길었지만 막상 발걸음을 떼니 어느새 선화의 집 문 앞에 와 있었다. 다행히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잠금 버튼이 눌린 채로 문이 닫혔는지 샛바람이 겨우 들 정도로 살짝 열려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당겼다. 끼 이익하는 소리도 없이 매끈하게 문이 열렸다. 한 사람이 겨우 서있을 만한 현관 바닥에는 군데군데 빨간 피가 칠하다만 페인트 자국처럼 번져있었다. 현관 바로 옆에 딸린 화장실의 불은 켜져 있었다. 저기서 급하게 세수를 하고 나온 기억이 생생히 떠올라 나도 모르게 물기를 훔치듯 이마를 닦았다.
방은 아직도 어두컴컴했다. 나는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를 잠시간 기다렸다 방에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서니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무겁고 텁텁하면서도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향수. 싸구려 향수 냄새가 진동을 했다. 선화는 벽에 기댄 채로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다만 눈은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냄새의 근원지를 쫓으려는 듯. 나는 조심스럽게 선화에게 다가가 손바닥으로 눈꺼풀을 덮었다. 시멘트 같은 촉감이 손바닥을 차갑게 식혔다. 꺼끌꺼끌한 눈썹이 등 뒤에 소름이 오도도 돋게 만들었다. 나는 선화의 휴대폰을 열 때처럼 눈을 질끈 감고 손바닥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선화의 눈꺼풀은 내 손바닥과 함께 내려가지 않았다. 꼿꼿하게 선 눈썹이 손바닥을 빗자루처럼 쓸고 지나갔다. 그 촉감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워 나도 모르게 황급하게 손을 떼었다.
"쉽지 않지?"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의 실루엣이 화장실 쪽에 서 있었다. 문틀에 몸을 기대고 있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와 키가 비슷하거나 약간 작은 남자인 듯싶었다. 나는 남자가 서 있는 쪽에서부터 지독한 향수 냄새가 발산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죽은 선화가 있는 방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형사를 찾아간 일, 다시 형사의 집에서 선화의 집까지 오면서 선화와 있었던 일을 복기했던 사실들이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저 남자다. 저 남자가 내가 선화의 집에 들어오기 전에 선화와 이 방에 있었다. 그때의 선화가 살아있는 인간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죽어서 바람 빠진 인형처럼 벽에 기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저 남자가 선화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선화의 방에서 의식을 찾았을 때 느꼈던 묘한 이질감의 정체를 저 남자에게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향수 냄새가 그때도 선화의 방 안에 분명히 남아있었다. 여자의 방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싸구려틱한 남자의 진한 향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뭔가 무기로 쓸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주먹을 말아주었다. 주먹으로 맞아본 적은 있어도 사람을 때려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위태롭게 떨리는 두 주먹이 오늘따라 유난히 작고 초라해 보였다.
"진정해. 너랑 싸우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니까. 설마 깡패처럼 그 주먹을 휘두르려는 건 아니지?"
남자가 손을 뻗어 내 주먹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눈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짐에 따라 남자의 실루엣이 점점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목소리가 퍽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전에 김민수한테 한소리 했다길래 좀 변한 줄 알았는데 여전하네."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마치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의 말투였다.
"날 알아?"
"알지. 나도 널 알고 너도 날 알고. 아, 너무 캄캄해서 안 보이나? 스위치가... 아, 여깄네."
남자가 벽을 더듬거리며 불을 켰다. 벽에 세워진 스탠드에서 주백색의 등이 연하게 들어왔다. 천장에는 등이 없었다.
"아니 무슨 방에 달랑 스탠드 하나 켜놓고 살아? 이런 것도 간접등이라고 치는 건가? 나 참 궁상스러워서. 그렇지?"
남자가 경멸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남자의 말에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희미한 주홍 불빛이 남자의 얼굴을 그림자 속에서 끄집어내듯 드러냈다.
"네가 왜...?"
내 말에 김필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는 너는 왜?"
"뭐?"
"너는 왜 여기, 최선화의 집에 왔냐고. 죽은 최선화 눈 감겨주러 왔어? 그렇다면 실망인데."
김필수가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미 사후 경직이 일어나서 감기지 않는다고. 인간이라는 게 죽으면 눈 하나 감는 것도 제 스스로 못한다니까. 그렇지?"
김필수가 말할 때마다 농밀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바닥에 흥건한 선화의 피 냄새 대신 김필수의 향수 냄새만이 이 방안에 존재하는 것 같은 상황이 문득 서글프게 느껴졌다. 선화는 죽어서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못하는구나 싶었다. 그것도 자신을 죽인 사람에 의해.
"너지?"
김필수가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네가 죽였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네 향수 냄새. 내가 이 방에서 눈을 떴을 때 네 향수 냄새가 가득했어. 지금 네 몸에서 나고 있는 그 향수 냄새가."
김필수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오, 그림 그리는 친구라 그런가 생각보다 디테일하네."
김필수가 딴청을 하며 대답했다. 나는 선화를 죽인 범인이 김필수인 것을 확신했다.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선화를 죽인 것은 분명 김필수였다. 아니, 애초에 부정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저렇게 태연하게 내 앞에서 범죄 현장에 다시 나타나는 것은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래서 내가 죽였다면?"
내가 머뭇거리자 김필수가 역으로 나에게 질문했다.
"내가 최선화를 죽였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나는 뭐라고 대답하려다 김필수의 당당한 표정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흠, 대답하기 어려우면 질문을 조금 바꾸지. 내가 최선화를 죽였으면... 아니다, 내가 최선화를 죽인 게 맞아. 그럼 네가 어떻게 할 건데?"
"지금 네 말에 책임질 수 있어?"
"책임?"
김필수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가 젖혀질 정도로 크게 웃었다. 웃는 소리가 하도 커서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이쪽으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졸여왔다.
"책임이라. 글쎄, 내가 책임 못 질 일은 하지 않는 주의라서.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치라서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한 구분은 명확하거든. 그게 없었다면 지금 여기까지 내가 올라오지 못했겠지. 그랬다면 너처럼 최선화 같은 애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다가 눈이나 감겨주러 왔겠지. 어차피 감기지도 않는 눈을 말이야."
김필수는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지만 말투에는 가시가 서려 있었다. 묘하게 사람의 신경을 긁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네가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른 건 인정해. 그렇다고 나나 선화를 그런 식으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명예와 경제력 같은 것은 애초에 부차적인 것이니까. 너도 나도 선화도 똑같은 사람이야. 너도 칼에 찔리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그러니 그런 천박한 말은 집어치우지?"
나는 김필수의 말에 발끈해 숨도 쉬지 않고 몰아붙였다. 말을 마치고 나서 나는 나에게 확실히 반골 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죽은 사람의 방에서, 그것도 그 사람의 피가 덕지덕지 발려 있고 시체가 벽에 기대어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듣자 피가 뜨거워져 앞 뒤 안 가리고 말을 뱉었다. 중학교 때도 그랬다. 나를 괴롭히는 김민수 패거리들의 행동이 내 자존심의 한계를 긁는 날에는 어김없이 나는 그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물론 쿠데타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그때마다 혁명을 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