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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Nov 05. 2024

나는 언제쯤 꽃 피울 수 있을까

 9월에 아파트 베란다 화단에 심은 해바라기가 시들었다. 다이소에서 천 원을 주고 해바라기와 방울토마토가 들은 씨앗 패키지를 사서 심었는데, 방울토마토는 다 자라지 못하고 해바라기 다섯 송이만 간신히 길러 냈다. 씨앗을 흩뿌려 심었어야 했는데 서울 촌놈인 나는 그것도 모르고 대충 씨앗을 뿌려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 싹은 다 같이 났다. 초록색과 연두색이 어우러져 땅에서부터 싹이 올라오는데 그때 아차 싶었다. 연두색의 큰 떡잎을 가진 싹들은 나름의 거리를 두고 자라나는데 진한 초록색을 가진 작은 새싹들은 손바닥보다 작은 땅에 옹기종기 모여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그래도 잘 자라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연두색의 큰 떡잎을 가진 새싹들의 자라는 속도는 생각보다 무척 빨랐고 이파리들이 내 손바닥을 아득히 넘어서는 크기로 자라나며 초록색 새싹들의 하늘을 덮었다. 그 탓에 초록색 새싹들은 조금씩 메말라 갔고 연두색 이파리를 가진 싹은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초록색 새싹들이 거의 말라비틀어질 즈음에야 그것들이 방울토마토인 것을 알았다. 마트에 갈 때마다 보는 방울토마토야 익숙하지만, 방울토마토의 새싹이라니, 태어나서 거의 처음 본 것이나 다름없기에 나는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다만 초등학생 때와 달라진 점은 방울토마토가 내 잘못으로 세상의 빛도 다 보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진 것에 대해 심심한 위로와 사과를 건네자마자 잘 자라나고 있는 해바라기로 얼른 눈을 돌렸다는 점이다. 


해바라기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자랐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물만 주는데도 하늘 위로 꽃대를 높이며 쑥쑥 자라났다. 방울토마토가 있던 자리는 호박잎처럼 큰 해바라기의 잎들이 뒤덮어버려 잎을 들추지 않으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느 높이까지 자라날까 매일 지켜보던 해바라기는 일 미터 오십 센티미터 정도 되는 길이에서 멈췄다. 그제야 꽃대 끝에는 노란빛이 새어나오는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을까 아침에 물을 주려고 나왔는데 노랗게 활짝 핀 해바라기가 나를 맞이했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아내에게 해바라기가 피어났다고 이야기했다. 졸린 눈을 비비던 아내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해바라기를 구경하러 왔다. 우리 집을 등지고 바깥쪽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는 비록 뒷모습이지만 노란 꽃잎을 자랑하며 ‘나 피었다’고 말하는 듯 자태가 늠름했다. 처음 꽃이 핀 이후로는 순서대로 꽃봉오리들이 열렸다. 씨앗을 대충 뿌려서 방울토마토를 죽게 했지만 해바라기씨들은 운이 좋았던지 한군데에 뭉쳐있었지만 그렇다고 비좁지는 않아서 마치 화병에 꽂은 고흐의 해바라기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얀 커튼 뒤로 비치는 해바라기의 그림자를 보는 그 잠깐의 시간을 나와 아내는 참 좋아했다.


해바라기 1호.

그런 해바라기가 이제는 시들었다. 올해는 유독 여름이 길었다. 길 뿐만 아니라 너무 혹독했다. 내리쬐는 햇볕은 물론이거니와 37도에 육박하는 찜통더위에 도저히 바깥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 더위가 추석까지 계속되었으니 사람들의 진을 홀딱 빼놓을 만했다.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주는 양식인 수돗물을 받아먹고도 늠름함을 자랑하듯 꿋꿋하게 얼굴을 활짝 들었던 해바라기가 이제는 시들었다. 나와 아내가 좋아하던 커튼 뒤 해바라기의 그림자는 앙상하게 마른 꽃대만 남아버렸고 우리는 이제 커튼 뒤 그림자를 보지 않는다. 


얼마전 외할아버지의 산소를 다녀왔다. 외할머니와 삼촌 내외, 엄마와 우리 부부가 함께 성묘차 갔는데 날씨가 참 좋았다. 여름이 다 가고 초가을이 느껴지는 날씨에 반가운 잠자리들이 기분 좋은 듯이 날아다니는 그런 날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할아버지의 산소는 생각보다 잡초들이 무성했다. 적갈색의 대를 가진 잡초는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기에 할머니한테 무슨 잡초인지 여쭤봤더니 할머니는 모른다고 대답하셨다. 옆에서 엄마가 할머니는 맨날 불리한 질문에는 모른다고 대답하신다며 농담을 했다. 우리 여섯 식구는 장갑을 하나씩 나눠 끼고 부지런히 할아버지의 산소를 다듬었다. 이미 할아버지가 생전에 지녔던 육체는 자연으로 돌아간 지 오래겠지만 이렇게 당신의 자리를 가꾸는 아내와 자식, 손주를 봤으면 할아버지가 퍽 뿌듯해 하셨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할아버지의 산소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아내가 사온 꽃과 엄마가 사온 꽃을 한데 묶어 화병에 꽂으며 문득 우리 가족들의 면면을 보게 되었다. 다섯 살 때부터 나에게 큰 형과도 같았던 삼촌은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희끗희끗한 새치들이 검은 머리보다 더 많았다. 난생처음 나를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갔던 숙모의 얼굴에도 세월이 많이 담겼다. 우리 엄마는 환갑을 훌쩍 넘겼고, 나를 업어 키우신 할머니는 이제 구순을 바라보신다. 멀리 일본에 계신 이모와 이모부도 엄마와 삼촌처럼 세월이 스쳐 갔을 것이다.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나는 해바라기가 생각이나 마음이 울컥했다. 녹음이 지고 단풍이 들듯이 내 앞에 우리 가족들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푸릇한 청춘과 어엿한 어른다움을 보내고 늙어가고 있었다. 우리 집 마당의 해바라기처럼 그네들도 화려하게 꽃잎을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겹겹이 쌓인 잎들이 방울토마토의 성장을 막았듯이 세상은 나의 성장을 돕기보다는 고난에 빠지게 할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들은 물심양면으로 물이며 양분이며 때로는 영양제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밤새 나를 보살피며 한 사람의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왔다. 어린 나의 눈에는 그런 그들은 해바라기였다. 나도 얼른 어른이 되어 저들처럼 늠름한 해바라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했다. 이미 시들어버린 그들의 꽃처럼 지금 나의 꽃도 역시 활짝 피어났을까? 아직도 나는 봉오리가 채 열리지 않은 해바라기 같은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짧은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선선했던 날이 넘겼지만, 쌀쌀함으로 바뀌는 것을 아침마다 느끼며 세월이 빠름을 새삼 느끼고 있다. 이대로라면 곧 동장군이 찾아올 것이다. 길고 긴 겨울이 지나면 그다음에는 작은 새싹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봄이 또 올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돌고 돌다 보면 나의 이파리도 힘을 잃고 연두색에서 녹색으로, 녹색에서 갈색으로 변해 시들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해바라기처럼 단 한 번의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 일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모든 순간이 의미가 있겠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시기,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그 순간을 위해 인간은 태어나고 죽는지도 모른다. 시기로는 나 역시 지금 가장 화려한 꽃을 피워내야 할 시기인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의 후배들과 밑의 세대들을 위해 우리 가족이 나를 위해 해준 것처럼 해주고 싶은데 정작 내 앞가림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가족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나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채의식은 밤마다 나를 잠 못 들게 한다. 


매일 밤 자기 전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내일은 연락해봐야지’ 하면서도 다음 날 눈뜨면 피곤한 육체가 나를 일터로 이끌고 가기 바쁘다. 내가 화려하게 꽃피우는 날 모두 갚겠노라 매일 다짐을 하지만 그 순간이 언제 올지는 나는 모른다.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시기가 너무 늦어버려 그들이 채 기다리지 못하는 일만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번의 겨울이 지나고 내년의 봄이 오면 이제는 나도 꽃피울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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