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의 평화로움이 없어지는 시간들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에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는 것 같다. 그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사회 통념의 틀에서 벗어나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우리들만의 리그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결혼 - 임신- 출산이다.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100% 비즈니스였다. 여기서 말하는 비즈니스는 흔히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들과 같은 목적이 아니라 우리 부부 나름 이해관계가 확실했다는 뜻이다. 내가 남편에게 프러포즈할 때에도 당연히 사랑을 전제로 하지만 왜 당신과 결혼을 생각했는지 그로 인해서 어떤 긍정적인 결과가 있는지를 이야기했었고 그 부분에 대해서 남편이 동의함으로써 우리의 결혼은 성사되었었다. 결혼이라는 1차적 목표가 달성된 이후에 우리 부부에게 그 이상의 다른 목표나 계획은 없었다. 그냥 이렇게 맞벌이하면서,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 다니면서 우리의 삶을 즐기는 것 외에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를 제외한 주변의 어른들은 아니었다. 결혼과 동시에 어른들의 머릿속에는 우리 부부의 미래 계획이 다 정해져 이었고 그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우리의 삶에 늘 궁금증을 가졌었다. 결혼을 했으면 당연히 임신을 해야 하고, 임신을 했으면 당연히 2명 이상은 낳아야 하고, 이제 부모가 됐으니까 자가를 마련해야 하는 등 반드시 지켜야 하는 순서가 있는데 왜 하지 않는지 여러 의문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하셨다.
나에게 임신과 출산은 매우 사적이고 신중한 영역이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피임하니?"라고 당당히 묻는 어른들을 보며 결혼 초 임신에 대해서 더 멀리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마트에서 남편이 포대기를 들고 있는 모습에 뜬금없이 남편을 닮은 아기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 부부는 그제야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었다. 그리고 올해 4월, 결혼 3년 만에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축하인사를 받은 것 같다. 어른들은 이제야 본인들 계획의 일부가 실행되었다는 기쁨에 "이왕 가진 거 낳고 바로 둘째 가져" , "이제 네가 자식 노릇을 하네, 너 할 일을 하네'라며 덕담인지 모를 덕담을 주셨고 당시에는 나도 기뻤기에 같이 웃으며 새 생명과 만남을 기대하고 설레었었다.
그러나 나의 임신에는 입덧이라는 괴물이 따라왔고 임신 5주 차를 지나자마자 입덧, 토덧, 체뎃 등 종류별 입덧을 매일매일 경험하기 시작했다. 24시간 멀미 속에서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위산을 토해내는 나에게 모두가 하나같이 말했다. "엄마가 되는 것이 원래 힘들다,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일이지 않니", "입덧이 심해도 참아, 원래 임신은 그런 거야, 그래도 엄마가 되는 일이 아름답지 않니?"라고....
진짜 이게 아름다운 게 맞는 건가?
입덧은 생각보다 내 일상을 빠르게 망쳐가고 있었다. 한국인의 힘이라는 쌀밥은 냄새조차 맡지 못했고 수프나 죽, 계란국과 같은 음식만 섭취 가능했으며 그것조차도 먹고 나면 토하기 일수이기에 온 몸에 에너지가 다 빠져나갔다. 에너지가 떨어지니 누워만 있게 되고 누워만 있으니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하니 마음이 슬퍼지는 이상한 현상의 반복이 계속되었다. 그나마 직장을 다니고 있기에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는 순간순간도 있지만 회사에도 화장실 변기통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나를 볼 때면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 현타(*현실 타격)가 늘 찾아왔다. 이렇게 입덧이 심한 와중에도, 겨우 목소리를 꺼내어 전화를 받는 그 순간에도 어른들은 말했다. "이왕 입덧하는 거 살이나 빼", "이렇게 으쌰 으쌰 해서 둘째까지 가자", "다 그런 거야, 참아"라고 하며 꼭 마지막에는 "엄마가 되는 건 힘들지만 아름다운 일이니 견뎌"라고 말하며 나를 위로(?)했다.
물론 알고 있다. 어떤 의미로 전하는 말인지. 악의가 없이 그저 위로 방법이 그렇다는 것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또 이해한다. 하지만 똑같은 10의 상처라도 인간마다 느끼는 고통은 각기 다른데 그것을 '아름답다'라는 말로 보편화시켜 위로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에게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나에게 깃든 생명이기에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나 스스로가 삶을 지켜낼 것이다. 그러니 그저 새 생명이 무사히 탄생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응원만 해 주면 좋겠다. 세상에 태어날 새로운 생명에 덕담과 희망찬 메시지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그 이상은 내가, 우리 부부가, 우리 가족이 천천히 알아서 잘할 테니 말이다.
혹자는 어른들의 덕담을 왜 그렇게 안 좋게만 듣냐고. 다 너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라고 질책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 덕담도, 위로도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진정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이 분명 신비롭고 매우 성스러운 영역임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신비롭고 성스러운 영역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과정 자체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10달 동안 생명을 품고 있는 엄마들의 고통과 노고가 무조건 아름답다는 말로 포장되지 않기를...
어른들도 겪어보았던 과정이기에 정말 많은 것을 맞바꾸고 신체의 일부가 망가져가는 것조차 감수하며 내가 만든 생명을 남편과 함께 지켜내고 있음을 아실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부디 당신의 계획에 우리를 넣지 마시고 그저 멀리서 지켜봐 주시고 힘들 때 손 한번 잡아주시길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