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모든 것이 옳지 않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기 전까지, 미련할 정도로 관심과 사랑을 받길 원했다. 흔히 말하는 둘째의 서러움이라고나 할까? 뛰어난 머리로 온 집안의 기대와 사랑을 한꺼번에 받는 언니와, 그저 막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동생 사이에서 뛰어난 머리도, 특별한 재주도 없는 나는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로 자라났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고등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의 진로조차 함께 고민해주지 않았다. 당시 나는 평균 70점~75점을 받는 부끄러운 딸이었고 어려운 가계에 나한테 투자할 생각 따위 부모님은 처음부터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별다른 슬픔도, 반항도 없이 청소년기를 보내고, 또 조용히 대학 4년, 휴학 1년(경찰공무원 공부)의 세월을 보낸 후 경호경비업체에 남자친구 아버님의 빽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첫 직장이었고, 돈을 벌 수 있어서 나는 행복했지만, 경찰공부를 1년 동안 뒷바라지 하셨고 없는 살림에 1,000만 원 정도를 투자하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축하한다'라는 말 한마디 않으셨다. 아마 그 무렵 언니가 재수 끝에 들어간 대학에서 과대로 선출되어 그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갑자기 주제와 어긋난 나의 신세한탄이 되어버렸는데, 아무튼 2013년도 취직한 회사에서 나는 정말 많은 성차별을 겪었다. 여자가 커피를 타야 하고, 여자는 무조건 힐을 신어야 하고, 회식 때는 무조건 사장님 옆에서 앉아 술을 따라드려야 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대처할 줄 몰랐고, 그저 지인들에게 '우리 회사 미쳤다', '나는 문제가 없고, 회사와 선배님들만 문제가 있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퇴사의 정당성을 높이고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취직한 회사에서 나는 내 직장생활의 한 가지 좌우명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좌우명이 제목에 적혀있는 '나도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 일 수 있다'였다. 두 번째 직장은 지사에서 근무를 했는데 희한할 정도를 나를 너무 예뻐해 주는 사람이 많았다. 첫 직장에서 당한 서러움을, 그동안의 삶에서 받지 못한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한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본사 직원들과도 친해졌고 아예 00팀에서는 (오버해서 말하면) 내가 정말 친동생이 된 것처럼 이뻐해 주었다. 집에도 늘 데려다주고, 저녁도 같이 먹고 혼자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 정말 많이들 애써서 나를 예뻐해 주셨다.
그래서였을까? 사랑에 취해 여기 저리 활보하며 다녔고 그 사이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지 않았을 땐 늘 그 사람이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사랑받고 화제가 되고 밥을 먹고 회식을 하고 여름휴가를 떠났다면, 내가 나타난 이후로 그 사람 모르게 회식하는 일이 생기고, 견고했던 그들만의 여행에 내가 끼어 들고 내 부서 일도 아닌데 나의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면서, 그 사람은 소외되어 가고 있었다.
사실 1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알고 있다. 그저 새로운 것에 다들 신기했을 뿐, 그러나 그때는 관심을 뺏기고, 사랑을 뺏었고 드라마 한 편을 찍고 있었다. 나를 싫어하는 눈빛에 자연스레 그 사람을 빼고 어울리는 일이 잦아졌고, 은근한 험담을 통해 나의 불편을 표현하며 '우리끼리'를 강조했다.
나는 정당했고, 나는 당연했고, 나는 문제없었다. 그 사람이 불손하고, 그 사람이 이상하고, 그 사람이 예민한 거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개인 사정으로 나는 다시금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인사를 하러 다시 그 사람이 있는 방으로 갔을 때, 그 사람은 그동안의 속이야기를 하며, 내가 너무 미웠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이 사람에게 최악의 동료이자, 최고로 나쁜 사람이었다.
'이 회사에서 만큼은 날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나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라고 생각하며
지냈지만, 사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진짜 이 사람에게는 '최악의 직장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직장을 계기로 다니는 직장마다 '모두에게 사랑받기'가 아닌 '누구에도 피해를 주지 말기'로 마음을 바꾸고
나는 늘 올바르고, 착하고 정당하다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될 수 있고, 나라고 모든 것이 옳지 않다
이때의 나는 정말 나빳고, 첫 직장 회사 선배들, 사징님들 만큼 나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