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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경단 Sep 15. 2022

공부머리는 없어도
온실 속의 아름다운 화초로

P은행 지현서 계장의 이야기 01

빼어난 얼굴에 날씬하고 적당히 큰 키의 현서는 딱히 말수가 많거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어디에서나 주목받는 스타일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시원시원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단아하고 예쁘장한 얼굴은 누가 봐도 호감상이었다. 엄마는 현서의 왼쪽 뺨에 폭 파인 보조개를 특히 예뻐했는데, 객관적으로 봐도 딸의 외모가 꽤 괜찮다고 생각한 나머지 현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쌍꺼풀 수술을 권유했다.


“너는 다 괜찮은데 눈이 조금 밋밋해. 눈에만 살짝 포인트를 주면 훨씬 예뻐질 것 같은데, 어떠니 현서야?”

“포인트? 쌍꺼풀 얘기하는 거야?”

“그래. 요즘 쌍꺼풀은 수술도 아니지 뭐. 앞 동 사는 지혜 쌍꺼풀 하고 나니 훨씬 낫더라. 지혜가 엄청 만족스러워한다고 지혜 엄마가 그러더라고. 현서 너도 대학 가기 전에 눈 살짝 집는 거 어때?”

“글쎄. 잘못해서 망하면 어떡해.”

“지혜 눈 자연스럽게 잘 됐던데 엄마가 그 병원 알아봐 줄게. 상담이라도 한번 받아보자. 아니다 싶으면 다른 병원 알아봐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그렇지만 엄마가 볼 때 우리 딸은 눈만 조금 더 또렷하면 완벽할 것 같아.”


보통 자기 자식은 너무 예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고들 하던데 우리 엄마는 참 한결같이 객관적이야. 속으로 생각했지만 현서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엄마의 객관적인 눈과 딸인 현서에 대한 관심과 애정 덕분에 지금까지 덕 본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서의 아빠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이었지만 엄마는 키가 작고 통통한 편이었다(젊었을 땐 날씬했다고 했지만 엄청나게 혹독한 관리의 결과물이지, 원래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고 했다). 엄마는 혹여나 딸이 자신의 체형을 닮을까 봐 어려서부터 현서의 외모 관리에 무척 신경을 썼다. 키 크는 데 좋다는 온갖 영양제는 물론 현서의 방에 소형 냉장고를 넣어주고 성장에 좋다는 칼슘 음료를 채워 넣고 매일 마셔야 할 할당량을 정해주었다. 몸 선이 예뻐진다는 발레 레슨도 시켜주었고, 거실에 앉아 TV를 보거나 쉬는 시간에는 무조건 스트레칭을 하면서 쉬게 했다. 사춘기에 들어선 현서의 얼굴에 여드름이 나자 엄마는 얼굴에 흉 진다며 절대 손대지 못하게 했고, 여드름에 좋다는 화장품 공수는 물론이요, 피부과도 정기적으로 갔으며 주말 저녁이면 거실이 모녀의 피부관리실로 변하곤 했다. 이 모든 것이 현서네가 부유해서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현서네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지만 엄마는 다른 데에서 많이 아끼는 대신 현서를 온실 속의 아름다운 화초로 키우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누구네는 학원비며 과외비로 달에 몇 백을 쓴다던데 엄마는 현서가 공부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공부는 적당히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충분하고, 부족한 부분은 외모로 채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현서가 원하는 학원만을 보냈고, 다른 엄마들에 비해 공부 압박을 크게 하지 않았다. 외모에 한창 관심 있을 나이에 ‘공부머리’는 별로 없는 자신의 딸이 그나마 ‘기본’은 해야 하기에, 외모관리에 일절 신경을 쓰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게끔 만들려는 속셈인 것 같기도 했다. 엄마의 노력 덕인지 현서의 성적은 특출 나지는 않아도 중간 이상의 수준을 유지했다. 적당히 평범한 성적표와 더불어 늘 군살 없이 날씬한 몸매에 매끈한 피부를 유지했고, 아빠의 유전자 덕분인지 칼슘 음료 덕인지는 몰라도 키도 적당히 커서 엄마의 걱정을 잠재웠다.


“현서야 넌 외모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 외모는 엄마가 관리해줄게. 엄마가 좀 가혹하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나중엔 고마워할 거다.”

“크크크 알았어, 엄마. 지금도 고맙지 뭐. 가끔은 좀 귀찮을 때도 있지만.”


친구들은 이런 현서를 부러워했고, 현서 또한 엄마와 함께 팩을 붙이고 누워 수다를 떠는 것이 즐거웠다. 빼어난 외모의 현서는 늘 주목을 받았고, 이것은 현서의 자신감 상승에 도움을 주었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엄마는 지금은 아줌마가 되어 볼품없는 몸매에 주름진 얼굴을 갖고 있지만, 젊었을 때엔 예쁘장한 얼굴 덕을 꽤 많이 봤었다. 학창 시절에는 인기가 많아 잘 생긴 남자 친구도 마음껏 사귀어 보고, 취업할 때에는 같이 면접 보러 들어간 평범하디 평범한 외모의 또래 여자보다 스펙이 낮았고 심지어 면접을 더 못 봤음에도 당당히 합격했었다. 회사에서도 많은 남직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엄마는 함께 사내 잡지 커버 모델로 뽑혀 촬영을 하던 아빠와 연애하다가 결혼했다. 그 당시 미남 미녀 커플이라며 회사에서도 유명했고, 엄마는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현서와 남동생인 현수를 키우는 데에 전념해왔다.


수능이 끝난 후, 현서는 엄마와 쌍꺼풀 수술 상담을 받으러 한 성형외과에 들렀고(지혜의 쌍수가 성공한 바로 그 성형외과였다) 상담실장과 엄마의 강력한 권유에 따라 쌍꺼풀 수술을 했다. 수술 직후엔 눈 주변에 시퍼렇게 멍이 들고 퉁퉁 부어 눈 두 덩이에 보라색 소시지를 얹어놓은 것만 같아 혹여나 망할 징조는 아닐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엄마는 불안해하는 현서에게 매일같이 부기 빼는 데에 좋다는 호박즙을 만들어 가져다주며 현서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자 부기가 거의 빠지고 또렷한 눈매가 살아났다.


“엄마 말 듣기를 잘했지? 너무 잘 됐다. 눈에 포인트가 생기니 훨씬 예뻐.”


엄마는 매우 만족스러운 듯했다.


“휴 정말 다행이야. 난 혹시나 망하면 어쩌나 걱정했어.”

“망하긴 뭘 망해. 아주 잘 됐어. 엄마 딸, 이제 완벽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외모는 현서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고, 현서는 집 근처의 무난한 대학교의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현서는 국내의 한 은행에 취업하여 서울로 떠나게 되었고,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기숙사로 떠나기 전, 엄마와 커다란 캐리어에 옷가지를 챙겨 넣으며 짐을 싸던 중 엄마가 말을 꺼냈다.


“여자는 결혼을 잘해야 해. 물론, 남자도 결혼 잘해야지. 그렇지만 엄마가 보니까 여자는 결혼을 잘하면 인생에 많은 것이 바뀌어. 능력 좋은 남자 만나는 게 여러모로 중요해.”

“엄마는 아빠 능력 보고 만났어?”

“능력을 더 봤어야 했는데. 호호”


엄마는 아빠가 있는 방을 힐끔 보고는 아빠가 들을 세라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아빠 좋은 사람이고, 잘 생겼었지. 아빠와의 결혼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잖아? 퇴직도 몇 년 안 남았고. 그땐 엄마가 뭣도 몰랐고, 그냥 어린 나이에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사귀다가 결혼한 것 같아. 엄마 친구들 중에는 의사 사모님 소리 듣는 친구도 있고, 변호사 남편 만나서 내조하면서 사는 친구도 있는데 다들 여유가 많아. 남편들이 돈도 잘 버는 데다가 전문직이라 퇴직 걱정도 없지. 우리 집은 그냥 평범한 편인데도 그 친구들 만나면 엄마가 제일 초라해. 티 안 내려고 하지만 친구들이 들고 오는 가방이며 옷이며, 솔직히 그 여유가 부럽긴 하지. 엄마는 친구들 만날 때 어쩌다 한 번씩 가는 비싼 식당이 친구들은 일상인 것 같더라고. 해외여행도 턱턱 다니고 얼마나 좋니? 학교 다닐 때 우리 셋은 모든 면에서 비슷했어. 공부도, 외모도, 형편도. 굳이 따지자면 엄마가 조금 더 예쁘고 인기도 많았는데 결혼을 기점으로 생활이 확 바뀌었어. 일단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마음에 여유도 생겨서 삶이 풍요로워지고, 스트레스가 확 줄어. 만나는 사람 무리도 달라지고. 그 친구들이 더 똑똑했고, 엄마는 너무 순진했어. 우리 딸은 엄마보다 더 똑똑하게 결혼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

“하긴. 돈 많은 남자 만나면 좋긴 하겠지. 연예인들도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하는 사람들 많잖아.”

“물론, 인성이나 성격이 제일 중요하지. 근데 그건 기본이고, 기본 이외의 부분을 봐야 한다 이거야. 외모까지 잘생기면 더 좋겠지만 엄마 생각엔 외모는 평범하면 됐고, 능력이 우선이야.”


엄마가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갈 때마다 이 옷, 저 옷을 입어보며 유난히 신경 쓰던 이유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임을 다녀오면 괜스레 별거 아닌 일로 아빠에게 톡 쏘는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장 결혼을 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른 전에는 결혼해야지. 여자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좋은 남자를 만날 확률이 줄어들어. 남자들은 예쁘고 어린 여자를 원하거든. 능력이 출중한 남자일수록 더더욱.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잖아. 그러려면 좋은 남자를 일찍 만나서 연애를 해야 해. 좋은 남자들은 다들 알아보고 바로바로 채간다는 얘기 들어봤지?”


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별로 낯설지 않다. 현서가 대학 다닐 때 동아리 선배들이나 주변 친구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걸 보면 결혼에 대한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나도 결혼은 서른 전에 하고 싶긴 해. 내가 지금 스물일곱이니까 생각보다 몇 년 안 남았네.”


현서는 화장품 몇 가지를 챙겨 넣고 캐리어 지퍼를 잠갔다.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로 가서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이제야 좀 실감이 나는 듯했다. 내가 은행원이 된다. 회사는 어떨까. 동료들은 괜찮을까? 기숙사 룸메이트는 누구일까? 떨리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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