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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경단 Oct 05. 2022

예수님, 성모 마리아 님
부디 저에게도

P은행 다니는 직장여성 최민경입니다 02

민경의 이상형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다.(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비슷한 학교를 졸업하고(서울대나 하버드대 출신은 왠지 좀 부담스럽다) 비슷한 레벨의 회사를 다니고, 비슷한 연봉에,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성품이 좋은 사람.

아, 함께 있을 때 서로가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물론 외모로 예선을 통과해야 함은 기본이다.


올 해에만 벌써 스무 번이 넘는 소개팅을 한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새로운 사람을 만났으니 이젠 소개팅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신기한 것은 딱히 힘들거나 하진 않았다. 아마 매일 은행 창구에서 새로운 고객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일상이라 소개팅 상대도 마치 고객을 만나 대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슬슬 지겨워질 때쯤, 교회를 나가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민경의 집안은 불교 집안이다. 외할머니는 “불자”로서 매 주말 절에 나가시고, 절에서도 무슨 직함을 받으신 듯했다. 스님들과도 친밀하여 매년 새 해가 되면 절에서 산 작은 부적과 오색실을 챙겨주시곤 했다. 민경의 부모님도 주말이면 등산 겸 가까운 산에 있는 절의 불당을 찾았다.


민경은 독실하진 않지만 급한 일이 있거나 궁지에 몰리면 마음속으로 항상 부처님을 찾았다. 절을 자주 가진 못해도 마음만은 불교신자라고 늘 믿어왔다. 내 인생에 하느님이나 예수님은 없다고 생각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동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주말에 너 교회 갈 때 나 따라가도 돼?”

“오~ 물론이지! 다들 환영할 거야.”


일대일로 만나는 소개팅보다 여럿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다 보면 좋은 인연이 생길 수도 있다. 딱히 나처럼 크게 뜻 없이 인연을 찾으러 온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 설레는 맘으로 메이크업을 풀셋팅을 하고 옷을 단정하게 갖춰 입었다. 소개팅하러 나갈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친구와는 교회 정문 앞에서 만나 들어갔다.


교회는 마치 콘서트장 혹은 토크쇼 같았다. 몇 번의 찬송가와 몇 번의 설교, 목사님과 신자의 대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민경은 내가 여기 잘 온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연의 꽃이 핀다는 청년부 모임은 대체 언제 있는 걸까.


드디어 모든 식순이 끝나고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교회에서는 밥도 주는구나. 신기했다.

친구를 따라 청년들이 모인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친구가 민경을 “새 신자”라며 소개했다.

모임의 리더인 듯한 멀끔한 남자가 민경을 보고 말을 걸었다.


“민경 자매님은 교회 처음이세요?”


자매님?
움찔했다.


“네~ 친구가 너무 좋다길래 따라와 봤어요~”


일단 깔끔한 외모는 합격. 뭐 하는 사람일까? 나이는..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데, 여자 친구는 있나? 독실한 크리스천일까?

단 1초도 되지 않는 순간 민경의 머릿속에 온갖 궁금증이 생겼지만 그 와중에도 절대 친근한 눈웃음을 잃지 않는다.


“전에 말했던, P은행 다니는 친구예요~”


역시 내 친구다. 약간의 놀람과 호기심을 갖고 민경을 바라보는 멀끔한 리더를 바라보며 수줍게 미소 짓는다.


뉴페이스인 민경에게 쏠린 관심을 즐기며 짧은 점심식사가 끝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청년부 모임에서 재미난 활동을 하겠지? 대학교 동아리처럼 옆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친해지면 자연스레 인연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만추다. -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잔뜩 기대하던 민경은 친구의 소개로 교회의 어떤 직원을 따라 교회 지하의 골방으로 따라갔다.


“새 신자 모임” “환영합니다”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이건 뭐지? 청년부가 아니잖아?


“민경 자매님, 우리 교회에 잘 오셨어요. 제가 오늘 민경 자매님을 도와드릴게요.”


민경보다 대여섯 살 많아 보이는 한 여자가 민경을 전담 마크했다. 하얗고 둥근 테이블에 민경을 앉히고 바로 옆에 의자를 붙여 앉았다. 성경책을 펴고, 새 신자로써의 마음가짐에 대해 물었다. 앞으로 매 주말마다 있을 성경공부 스케줄표도 주었다. 성경공부를 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자신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다. 민경에게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를 적으라고 등록표와 펜도 주었다. 성경책은 교회 1층에서 사면된다고 했다. 성경공부를 하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같은 시험이 있는데, 시험을 통과해야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는 길 아니겠냐며 웃었다.


민경은 두 번 다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교회는 처음부터 너무 매운맛이었나. 청년부에 발도 담가 보기 전에 교회에 질려버린 민경은 한 주 쉬고 성당을 나가보기로 했다.


성당은 굉장히 릴랙스 한 느낌이 있다. 딱히 성경공부를 강요하거나 전화번호를 등록하라고 은근한 압박이 없을 것 같은, 모든 죄를 씻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성스러운 장소. 왠지 일요일 아침에 성당에 오는 남자는 성실하고 심성도 곱고 나를 홀리한 세계로 인도해줄 것만 같다.


가끔 만나 점심을 먹는 비슷한 처지의 아는 언니와 함께 동네 성당을 가보기로 했다. 왠지 혼자서 가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 같았다. 입구에서 성스러운 물을 이마와 양쪽 어깨에 찍고 들어갔다.


정말 홀리 하다.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되는 성당의 성스러운 분위기. 

하지만 이럴 수가. 

아무도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없다. 헌금 강요도, 등록 압박도, 성경공부 안내도 없다. 성스럽게 기도를 하고 한 명씩 앞으로 나가서 무언가를 받아서 입에 넣는데 왠지 따라 나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역시 성모 마리아는 아무에게나 인연을 만나게 해 주지는 않나 보다.


언니도 조금 실망한 듯했다. 둘은 기분 전환 겸 브런치나 먹으러 가기로 했다.


에그 베네딕트와 샐러드는 민경이 가장 좋아하는 브런치 메뉴다.

잉글리시 머핀 위에 올려진 훈제연어와 수란, 그리고 홀랜다이즈 소스. 수란을 잘라 흐르는 노른자와 빵과 훈제연어를 함께 입에 넣으면 왠지 유럽에서 먹는 아침 느낌이 났다. 상큼한 샐러드도 필수다. 실제로 유럽에서 이렇게 먹는지 미국에서 먹는지는 모르지만.


인연을 찾는 소득은 없었지만 새로운 에그 베네딕트 레스토랑을 알게 된 것에 만족하며 민경은 이번 주말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제 1화 파스타는 물려도 계속 먹을 수 있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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