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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망 Oct 22. 2024

사진으로 안 보이는 것

대체로 우중충하다가 잠깐 갠다면


1. 

스위스 하면 아름다운 자연이 생각날 테지만 난 요상하게 언어학자가 생각난다. 국문과에 다닐 때 언어 기호학을 살짝 배웠다. 스위스 언어학자 소쉬르의 언어학 개념들 - 시니피앙(signifiant), 시니피에(signifie). (랑그(Langue)’와 빠롤(parole)도 있지만 더 어려워지니까 관두자.) 시니피앙은 기호(sign)의 ‘형식’으로, 음성과 글자로 나타난다. 시니피에는 기호의 ‘의미’를 뜻하며, 단어가 가진 개념이다. 나도 겉핥기식으로 배운 거지만, 형식 속에 숨겨진 함의를 찾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걸 배운 것 같다. 



 졸업 후에도 글이나 사건에 시니피앙, 시니피에를 가끔 대입해 생각해 봤다. 하지만 내가 회사에서, 사회에서 겪는 일은 잘 해독되지 못했다. 인턴 생활을 하던 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해석하는 게 어려웠고 숨은 의미를 찾는 게 본능적으로 되지 않았다. 남들의 배로 눈치를 봐야만, 하나하나 고민해야만 사회생활을 따라갈 수 있었다. 


상사들은 어떨 땐 왜 눈치를 많이 보냐 했고 어떨 땐 왜 눈치 없이 회식 때 술을 안 따르냐고 했다. 나는 억울했고 술 따르는 것과 회사 생활의 상관관계를 잘 연관 지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인턴 때부터 사내 정치질에도 지쳐버렸다. 그런 관계의 역학들, 사회는 어떤 기호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는 상태로 인턴이 종료됐다. 그런 상태로 유럽 여행에 왔다.  



 이번 여행에서도, 어떤 사건이나 말(시니피앙)을 겪었고 그것의 개별 의미(시니피에)는 무엇이었을까 돌아보고 싶다. 예를 들자면 나는 사진이라는 기호에 집착하다가 사진에 담긴 의미를 찾아보려 했다.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형식 없이 시니피에만 존재하던 순간들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하늘에 뜬 별들은 사진으로 찍을 수가 없었다. 




2. 

기차에선 창밖을 보는 것 말고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카메라로 찍은 이전 여행지 사진들을 보며 기억을 되새겼다. 사실 카메라 없이는 금단 증상이 올 정도가 됐다. 순간을 가감 없이 포착해 영원히 남겨줄 그 도구 자체에 집착하게 됐다. 아무래도 혼자 여행을 다니면 증명해 줄 것이 카메라뿐이니까. 


인터라켄에선 사진 집착에 돌아버린 한국인을 만났다. 한 집착하는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나처럼 혼자 여행 온 젊은 여성이었고, 유랑에서 남자 동행을 구한 모양이었다. 그 둘과 길 가다가 마주쳐서 잠깐 동행하게 되었다. 딱 봐도 그 남자는 이미 지쳐있었다. 여자의 시도 때도 없는 사진 요구에 다크서클이 발끝까지 내려와 있었던 거다. 어느 정도길래 저러지? 의문은 곧 풀렸다. 


여자는 포토 스팟은 당연하고 일반 가정집 앞에서도 끊임없이 사진 부탁을 했다. 어디모델 사진을 출품하려는 줄 알았다. 남자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계속 찍어주고 있었다. 여자도 조금은 미안했던지, 이젠 내게 '찍어줘' 폭탄을 떠넘겼다. 이쯤에서 나는 그 여자보다 낫다고 선을 긋고 싶다. 나는 양심은 있어서 한 장소에서 딱 한 번씩만 부탁하거나, 결과물이 이상해도 재촬영 부탁은 안 한단 말이다. 


그런데 이 여성은 거의 5번을 “다시 찍어줘요!”하는 당당함을 선보이고 있었다. 구도와 표정이 완벽할 때까지 계속 요구해서 나도 인상이 찌푸려지고 지쳐버렸다. 옆에서 잠깐 쉬고 있던(…) 동행 남자와 몇 초간 눈빛으로 교감하는 순간을 가졌다. 그러던 나는 귀찮은 티를 내거나, “이따가 찍어드릴게요.” 하는 식으로 거절도 했다. 어느새 동행하던 남자는 표정이 펴있었다. 나와 짐을 나눠서 져서 그런가 보았다. 


사진 열정의 정점은 쉴트호른 산꼭대기에서였다. 여자는 풍경을 찍다가 DSLR 카메라를 놓쳐 버렸다. 천 길 낭떠러지였으니 누구라도 거기서 카메라를 주우려는 미친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는 했다!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카메라를 따라 몸을 기울이고… 


우린 반사적으로 “어어!” 하며 비명을 질렀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게 생겼으니, 눈을 질끈 감는 것과 동시에 손을 뻗어 도와주려는 동작을 취했다.



한쪽 눈을 살짝 떠보니, 다행히 꼭대기 밑에 턱이 나와 있어서 여자가 손으로 주울 수 있을 정도였다. 모두 휴- 한숨을 몰아쉬었다. 본능적으로 목숨보다 카메라를 챙기는 그 진정성이 감탄스러웠다. 그 장면을 목격한 후로 겁이 나서 돌아올 땐 난간에서 거의 기어 오다시피 했다. 그 와중에 그 여자는 기어가는 내 사진도 찍어주겠다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완전히 질렸다. 

“아니요 됐어요…”  




사실, 정도의 차이일 뿐 (정도가 심하지만) 나도 카메라에 집착하는 면이 있었다. 잘 쓰던 미러리스 카메라를 숙소에서 한번 떨어뜨렸는데, 바로 렌즈인식이 안 되며 고장 나버렸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유럽은 수리가 오래 걸리며 매장도 별로 없다고. 마침 유용한 댓글을 발견했다. 스위스 수도 베른에 가면 중고 렌즈 파는 곳이 있단다. 상심하던 차에 한번 베른에 가보기로 했다. 갈 생각이 전혀 없던, 그냥 수도일 뿐인 도시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베른역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독일 대도시 느낌의 삭막해 보이는 도시였고 자연물이 별로 없었다. 카메라숍에 가서 중고 렌즈를 사느니 완제품과 별 차이가 없어서 그냥 새 카메라를 샀다. 235프랑이었는데 신용카드가 자꾸 거절돼서 진땀이 났다. 그새 돈을 다 쓴 것이다. 현금을 긁어모으니 200프랑이어서, 주인아저씨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한국에서 왔으니 특별히 이 가격에 줄게요.”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돌아가는 길에도 일진은 최악이었다. 지나가던 서양 미친놈이 “워!”하면서 날 놀래켰다. 저건 또 무슨 뜻(시니피에)인가. ‘FXXking Racist’라고 항의할 힘도 없어서 째려보며 지나쳤다. 배고프고 돈도 한 푼 없으니 고달파졌다. 사진을 위해 200프랑이나 허비하다니 갑자기 부모님에게 미안해졌다. 내 삽질로 인해 카드 막힌 걸 전했더니 부모님은 잘 보고 오라며 돈을 더 부쳐주었다. 



돈과 집의 소중함은 나와서야 알게 된다. 부모님과 매일 붙어있고 싸우니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내가 아직 덜자란, 무력한 존재란 걸 알게 되었다. 항상 날 혼내던 부모님을 날 사랑하지 않는다며 미워했는데, 그래도 지원을 해주는 걸 보니 찔끔 눈물이 났다. 




골든패스 기차를 타고 그린델발트로 돌아갔다. 카드 문제가 해결되어 뮤즐리 요거트를 사 먹으며 통창 뷰를 보고 즐겼다. 스위스는 지역에 따라 4개의 언어를 쓰는데 기차에선 독일어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 적이 많았다. ‘인터라큰 오옥-스트(ost-동쪽)’ 하는 발음이 강렬해서 그걸 따라 했다. 


여기서도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데 내 뒤 인도인 애기가 찡찡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애기의 엄마가 노래를 부르며 달래주는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만국의 동요였다. ‘Brother John’. 딩딩동 딩딩동~ 하고 이야이야호~까지 하는데 나도 따라 부를 뻔했다. 동요는 마법 같은 효과를 지녔다. 그 엄마는 애기 뿐만 아니라 내 기분까지도 어르고 달래주는 것 같았다. 괜히 울컥해서 창문을 보는데 지나가는 마을들이 모두 아름다웠다. 제일 예쁜 마을 이름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노트에 적어놨다. Giswil, Sachsein, Weggis, Pitznaw…    



언젠가 저길 가볼 날이 올까?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자라면 얼마나 맑게 자랄까? 그런데 각 마을마다 끝 집, 마지막 집인 사람들은 무섭거나 적막하지 않을까? 뒤에 아무것도 없고 오직 대자연뿐이라는 것이 경이롭고도 두려울 것 같다. 새 사람이 어서 집을 지어서 자기가 그 동네 마지막 집 신세에서 탈출하게 되길 바라겠지. 


나는 그 마을들의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기호(시니피앙)로만 기록할수록 실제 눈으로, 마음으로 담을 시간이 줄었다. 내 눈에 충분히 못 담으면 무슨 의미인가 싶다. 여행할수록 멀티 태스킹 기술이 조금씩 늘긴 했다. 손으로 카메라를 기능적으로 누르는 동시에 육안으로 보며 ‘우와’ 감탄하는 요령이 생겼다. 이것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균형, 기계적인 손과 생동감 있는 눈… 인도 아기는 잠에 들었고 기차 안은 고요했다. 






3.                                        

중간에 경로를 이탈할 계획은 전혀 없었다. 나는 계획을 잘 바꾸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데 여긴 창문 밖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골든 라인 철길이었고, 스위스의 모든 아름다움이 여기 있었다. 햇빛이 내려쬐는 집들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8살 때인가 봤던 만화영화 중, 옴니버스 구성의 만화가 생각난다. 각 단편 만화 순서는 매번 바뀌었다. 기차가 지나가면서 버섯 모양의 '만화'의 집에 멈추면, 해당 만화가 재생되는 식이었다. 다음 순서엔 다른 버섯집(만화)에서 멈췄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식에 전율을 느꼈다. 이렇게 내리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니! 최초의 스트리밍 서비스 테스트가 아니었을까. 


나는 계속 지나치는 마을들을 아쉬워만 했다. 만화 속 기차와 다르게 나는 결정 장애가있었다. 이쯤 한번 내려볼까? 아니, 다음에 더 좋은 마을이 나올 거야. 그다음 마을을 지나치면서는 긴가민가했다. 아까 마을이 제일 좋았던 거면 어떡하지? 그러나 되돌릴 수 없다. 세 번째 마을을 등지면서도 갈등한다. 딱 맞는 타이밍에 결단을 내리는 건 여행에서도 인생에서도 어렵다. 놀러 온 여행일 뿐인데, 나는 자꾸 인생 전체로 생각한다. 




 'Lungern'(룽게른)이란 이름의 마을에 멈춰 섰을 땐, 생각을 멈추고 일단 내린 후였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덜컥 결정해 버리는 경우가 바로 이때였다. 내린 사람은 나 혼자다. 왜 이 마을은 나밖에 알아보지 못한 걸까? (지금은 <사랑의 불시착> 엔딩 촬영 장소로도 쓰여 좀 유명해졌다.) 



  본능은 가끔 최고의 선택을 하는 건지, 룽게른은 유럽 마을 중에 베스트일만큼 좋았다. 관광객 없이 호숫가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숨은 보석 같은 곳. 니벨룽겐이란 신화가 떠오르는 이름. 동그랗게 깎은 푸른 동산 배경의 옥빛 호수는 에메랄드를 통째로 녹여서 채워 넣은 것 같다. 정갈한 폭포가 끊임없이 물을 공급하는 신선의 땅, 또는 <반지의 제왕> 속 엘프의 마을. 꽃의 정원이 딸린 통나무집들이 드문드문 있고, 수련과 갈대는 고개를 숙이고 잔잔한 윤슬이 흐른다. 이 모든 게 한눈에 보이니 비현실적이다. 


호숫가 왼쪽에선 할아버지와 손자가 파란 조각배들을 넘나들며 낚시를 한다. 스위스어는 모르지만, 왠지 이런 대화 같다. 


"거기 조심해서 넘어와라." 

"할아버지, 우리 언제까지 낚시해요?"

"세 마리만 더 잡고 밥 먹자."


이 무슨 <어부사시가>같은 풍경인지. 배들도 풍경을 해치지 않고 자연에 녹아든다. 아무도 발견 못 하게 하려는 듯, 바람도 조용히 부는 마을이다. 나는 탄성을 지르며 벌렁 풀밭에 누워버린다. 그러고는 혼자 호수 주위를 팔딱거리며 뛰어다닌다. 이 풍경을 찍기 위해 새 카메라를 산 건가, 그렇다면 인정. 


하지만 어느새 카메라보다 두 눈으로 더 많이 담는다. 1시간 동안 하염없이 앉아 윤슬 섞인 풍경을 본다. 스위스에서의 사건 사고들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다. 아름다운 걸 보고 울 것 같은 감정은 처음이다. 누구에게라도 감사하게 된다. 기차에서 급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이런 축복 같은 이벤트는 없었을 거다. 




가끔 방향을 트는 것이 청춘의 마음인 듯하다.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 본능에 따라 계획에 없던 일을 저지르고. 실수하고 부딪히고. 그게 최선의 기회이기도 하고 대부분은 아니지만. 물처럼 말랑말랑한 마음이 저지르는 재미난 일들은 아직 젊으니 봐줄 만 하다. 신선하고 푸르다. 지금은 그래도 잃을게 적지만 갈수록 겁이 많아질 테니까, 바꾸고 번복할 거면 젊을 때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카메라 다음엔 또 새로운 고민거리가 온다. 지금 나는 ‘내일 하루만 날씨가 좋다’는 숙소 직원의 말에 홀려서 스위스 체류 기한을 연장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 연장하면 또 오스트리아 일정을 줄이고 이것저것 조정해야 하고 취소 수수료도 있다. 하지만… 잔잔한 호수가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고, 이런 풍경을 좀 더 보고 싶다. 단단히 세워놨던 계획을 내 손으로 어그러뜨린다. 그래, 내일은 꼭 패러 글라이딩을 하고 싶어. 


룽게른의 아름다운 풍경에서 마음을 녹이고 치유한 덕에 마음을 따라갈 용기가 생긴다. 고민에서 풀려나고는   본격적으로 옥빛 물에 녹아든다. 양팔을 크게 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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