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우중충하다가 잠깐 갠다면
5월 중순. 깐느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에야 본격적으로 부스를 차릴 수 있었다. 여기는 깐느 콘텐츠 마켓, 깐느 영화제 뒤켠에서 이뤄지는 바이어와 셀러의 장이다. 영화제에 나온 영화들과 시리즈, 만화들을 이곳에서 사고판다. 부스가 모인 전시장인 코엑스를 떠올리면 된다. 나와 회사 여직원들, 즉 실무자 여성 셋이 회사의 한국 영화와 시리즈들을 팔러 출장 온 것이다.
가기 전부터 좀 걱정은 했다. 옆의 대형 부스들과 달리 우리가 파는 콘텐츠들은 그리 인지도 높거나 인기 배우가 출연한 작품도 아니었다. 그저 옆 부스에서 콩고물이 떨어지기를, 또는 바이어와 안면이라도 트기를 바라며 왔다. 역시 실제 할당된 부스는 작았고 영화를 틀어줄 TV, 미팅 때 앉을 의자 3개와 테이블 1개, 전단지 거치대가 전부였다. 게다가 다른 업체 부스의 1/3 면적을 쉐어해 쓰느라 협소하고 면구스러웠다. 다른 부스들은 테이블이 여러 개 있거나 유리문이 설치된 미팅룸이 있었다. 우리는 벽에 걸린 영화 포스터로 안 끌리는 주목을 끌어보려고 사탕이나 간식을 사서 구비해놨다. 나중엔 사탕만 누가 집어 가고 우리 소득은 없었다.
깐느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전시장 밖을 나서면 바로 바다가 펼쳐졌다. 바다 전망의 야외 부스엔 한국영화진흥위원회가 상주해 있어 거기서 잠깐 쉬거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 둘 수 있었다. 해외에 나오면 한국 업계인들끼리 급 친근해지고 웃음이 많아졌다. 국내에서 거래처로 만날 때는 건조한 얼굴들이더니… 출장이라도 해외라서 얼굴이 피나보다. 나 역시 웃고 있었다.
야외부스들 옆엔 거대한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나중에 거기서 광란의 선상 파티가 벌어진다고 했다. 주로 디즈니, 넷플릭스 등의 거대 기업이 주최해 VIP들, 헐리웃 스타들을 초대한다고. 너무 다른 세상처럼 느껴져 부럽지도 않았다. 우리는 담배 피우는 파리지앵들 옆에서 바닷바람을 10분쯤 마시다가 부스로 돌아오곤 했다. 괜히 아쉬우면 모래를 밟고 조약돌을 만지고 왔다. 출장의 장점이자 단점은 업무지와 관광지가 옆에 붙어있다는 것이다.
오기 전 야근을 해가며 철저히 준비한 덕에 업무상 차질은 없었다. 한 가지, 우리가 공들여 인쇄소에 맡기고 제작한 40p짜리 콘텐츠 ‘책자’ 배송이 안 오고 있었다. DHL 해외 배송을 일정에 맞춰 보냈는데 부스 설치한 지 하루 이틀이 지나도 안오는 것이었다. 그 책자를 보여주면서 무슨 콘텐츠인지 설명하고 영업해야 하는데… 우리는 백방으로 전화하고 따지다 지쳐서 기다렸다.
“우리 소포는 어디쯤 떠돌고 있을까요? 한국? 아니면 파리?”
3일째 되는 날 업무를 마치고 직접 소포를 찾으러 가기로 했다. DHL 창고는 서울에서 일산 가는 정도의 위치에 있었고, 가는 택시 안에서 우리 표정은 황당하면서도 지쳐있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걸까요. 유럽까지 와서…”
당도한 DHL 창고는 굳게 닫혀있었고 오후 4시쯤인데 영업 끝났단 표시를 걸어놨다. 역시 프랑스의 워라밸이란… 문을 두드려 담당자에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사무실로 들어갔다. 담당자가 우리 소포가 누락된 것 같다며 찾아보겠다고 했다. 우리 택배가 유실물 코너에 있을 거라니… 그가 찾아보는데 또 30분 넘게 걸렸다. 다른 전화도 한참 받고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우리를 가리키며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저거 인종차별인가…?
“뭐지. 갑자기 예민해지네.”
“그냥 우리가 들어가서 찾겠다 하면 안 돼요?”
할 정도로 한국의 일 처리 속도와 비교가 안 되게 느렸다. 늑장 부리면서 동료들과 농담할 시간에 빨리 퇴근하는 게 낫지 않나.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서 진이 빠진 채 알 수 없는 프랑스어를 들었다. 드디어 담당자가 나오더니 우리가 한국에서 보낸 소포를 내밀었다! 뛸 듯이 기뻐 메르시를 연발했다. 그러다 소소한 인종차별이 생각나 웃음기를 싹 거두고 택시를 탔다. 철저히 준비해도 막상 오면 뭐가 터지는구나. 그래도 큰 미션을 하나 해결했다는 뿌듯함에 취해버렸다.
책자 하나 생겼다고 갑자기 영화들이 잘 팔릴 줄 알았지만, 또 그 역할이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내 제안으로 복도에서 책자와 명함을 나눠주며 눈도장을 찍는 노력까지 했다. 고맙게도 동남아권, 대만 업체 몇 군데서 관심을 보여 미팅을 몇 번 했다. 아시아권 바이어들은 한국어 인사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우린 박수를 치며 상대 나라의 인사로 화답했다. “사와디캅” “셰셰” 부스 이곳저곳에서 현지 언어가 들렸다. 인사만 하고 바로 영어로 이동했지만.
결국 우리가 한 건 전체 시장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일 같았다. 우리 영화를 팔 생각에 전단을 나눠주고 바이어를 유치했지만, 일차적으로 한국 영화, 한국에 대해 홍보할 필요성을 느꼈다. 약간 외교관을 자처하는 기분. 한국 것 좀 봐줘 하면서 전단지를 주는 기분. 세계적으로 한류가 인기일지 몰라도 콘텐츠 마켓에서의 한국 콘텐츠들 위상은 아직 미미했고, 인지도가 없었다. 드라마 아닌 영화는 더욱. 해외에서 잘된 한국 영화는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작품 말고는 많지 않으니까.
부끄럽게도 “봉준호 아시죠? 그런 감독과 같은 나라의 작품이랍니다. 호호” 발언을 뻔뻔하게 자행했다. ‘두유노 김치’ 밈이 왜 나왔는지 알겠다. 보수적인 바이어들에게 한국 문화를 간단히 보여주기도 했고, 우리 라인업 중에 맞는 게 없으면 다른 업체의 콘텐츠도 추천했다. 어느새 다른 회사들도 그러고 있었다.
사실 세계 시민적인 마인드로 국가보다 콘텐츠 자체로 승부하는 게 쿨하긴 하다. 그러나 담당자부터 대륙-국가별로 색을 나눠 구분한다. 한국만 봐도 대중들이 주로 인식하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영어로 말하는 영어권 영화다. 스페인어, 태국어, 중동어로 된 영화들은 유명 감독과 배우가 붙어도 수요가 거의 없다. 우린 자막에 익숙한 국민인데도 들리는 언어가 영어보다 더 낯설면 안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문화권엔 아시아권이 낯설고 말이다.
마켓은 아무래도 상업 영화가 목적이라 대중성을 생각하게 된다. 각국에서 모인 전시장에서, 문화권들 간의 큰 벽을 느꼈다. 영어와 스페인어 권역들의 부스만 붐볐다. 아시아권에 대한 수요가 적으니 우리 존재감도 희미해졌다. 유실된 소포처럼 마켓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오후 6시쯤 운영 시간이 끝나면 기력 회복을 위해 식사를 든든히 먹었다. 가끔은 외식을 했고 보통은 장을 봐서 간편식을 데워먹고 에비앙 물처럼 싼 와인을 사 와서 마셨다. 한국에 없는 식재료들 – 샬롯, 치즈, 납작 복숭아 등- 도 곁들여서. 숙소는 3층에 위치한 방이었는데, TV와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도 구비되어 있어 지내기 편했다.
식사 후엔 숙소에서 메일 작업을 하거나 쉬었다. 한국에 있는 거래처, 상사와 소통도 했지만 시차 때문에 불편해선지 거의 우리를 냅둬주었다. 부스가 안 여는 주말엔 니스에 들렀다 오거나 바닷가 노천카페의 선베드에 누워 일광욕했다. 그곳에서 우린 조개껍질과 반질반질한 오색 조약돌들을 주워 왔다. 청록색, 선홍색, 회색, 황토색.
여자 셋이 모이면 할 말이 많았다. 일에 대한 고충과 사적인 얘기도 했다. 한국에서 못하던 말들을, 여기선 알아듣는 이가 없고 우리끼리만 있으니 편하게 했다.
“자 봐요. 우리 업무 분장이 지금 이렇죠.”
팀원들을 각각 조약돌로 비유하여 논의도 했다. 돌을 식탁에 톡톡 두드리며 장기 말처럼, 보드게임처럼 움직였다. 업무 분장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지, 매년 있는 인사이동은 어떻게 될지 돌을 굴렸다. 조약돌 대화법이었다. 그 돌에 우리가 파는 콘텐츠들이나 거래 국가들을 대입하기도 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으니, 모든 건 전쟁 작전 짜는 게임과 비슷하구나.
“이 돌은 A 영화고 저건 B 영화라 쳐요. 둘의 포지셔닝이 어디쯤일까요?”
“내일은 C 영화를 더 영업해 보는 거 어때요?”
“독일엔 호감도가 일단 없고, 러시아에 가능성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 출장 막바지에 가선 한국의 전체 파이에 대해 낙담스러운 결론이 나왔다. 누가 돌을 흐트러트려서 상하좌우 위치를 뭉개버렸다.
“결국 이만큼밖에 계약 못 했네요. 한국 가서 팔로업하면 좀 늘려나…”
“매년 와서 한국 콘텐츠에 대해 알리면 호감 이미지가 누적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씨 뿌려놓는 게 몇 년 후에 열매 맺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다른 회사에서.”
붉은 와인 세 잔이 찰랑 테이블에서 부딪혔다. 돌들도 덜그럭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모여 있으니 세계시민이 모인 마켓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이건 한국, 이건 대만, 이건 프랑스 쪽. 9일의 출장은 부스를 철거하고 짐을 싸며 마무리되었다. 나는 숙소를 떠나기 전 테이블에 대고 여기서 배운 작별 인사를 프랑스어로 했다. ‘오르부아르' 또는 '오르부아' Au rev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