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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Jul 10. 2021

초대

 

  날을 좀 잘못 잡은 집들이였다. 늦은 장마가 이날 시작된다고 했다. 심상치 않은 비 소식에 엄마는 오전에 따다 놓은 들꽃을 앞에 두고 "우리 어머님 고생하면 어떡하나, 우리 아버님 고단하면 어떡하나" 하늘만 쳐다보다가, 이미 비 맞은 화분들 사이를 물을 뿌리며 돌아다녔다. 신혼집들이 때 할머니가 바짝 마른 화분들을 걱정했던 게 생각났다면서. 벌써 30년이 넘은 일을 어제 일처럼 얘기했다. '식물의 적은 과습인데 저 엄마가...!' 싶었지만, 나는 엄마가 산타클로스 기다리듯 할머니 오실 날만 기다렸다는 걸 알기에 우려 같은 건 내보이지 않았다. 한차례 대청소를 한 참이었고, 우리에게 여러모로 중요하고 긴장되는 날이었다. 할머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님,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날. 


  30년 전 집들이 때와는 여러 가지가 다르다. 화분들이 과하게 촉촉하기도 하고, 그땐 다들 조금씩 고개를 숙여야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지만 이제는 문이 사람 키보다 크다. 화장실도 집 안에 달려있고 집 앞에 주차할 공간도 있다. 다만 비디오를 찍을 아빠가 없고, 볼이 빨갛고 통통했던 아기들도 다 자라고 없어서 그때에 비해 조용하고 단출한 집들이가 될 것이었다. 코로나에 코로나에 코로나까지 집들이를 못 할 이유야 다섯 개가 넘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는 와중에 '왜 오라는 얘기가 없는걸까' 둘러둘러 우리 집 사정을 수소문한다는 할머니 얘기가 들려와 마음이 급해졌다. 이러다 혹여라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집 한 번 못 와보고 보라색 꽃이 될까 봐. 그러면 우리는 보라색 꽃을 볼 때마다 영영 울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은 만들면 안 된다. 


  24시간을 누워서 생활하시는 할아버지가 오늘은 의욕 있게 지팡이를 짚고 오셨다. 오는 길이 고단하셨는지 도착하자마자 침대 위에 두 손 모으고 누워서 눈을 감으셨는데, 완곡한 표현의 '눈을 감으셨다'는 아니고 잠깐. 사실 나는 할아버지가 너무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누워계셔서 이제 한이 풀려서 떠나신 줄 알았다. "느이들이 이제 집다운 집에 사는구나, 이제 됐다" 하고. 둘째 고모가 문간에 선 나와 침대를 번갈아 들여다보며 "점심을 안 드셨어" 했다. 오늘 내가 귀한 과일 체리를 사다 놓았기 망정이지 안 그랬음 소생이 어려울 뻔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여섯 명의 자식 중 큰 아들인 나의 아빠에게 집중 투자를 한 케이스인데, 꾸준히 마이너스 길을 걷는 아들을 미워하다가 그 아들이 먼저 가기까지 하는 일을 겪으셨다. 고단할 만도 하다. 나는 "할아버지~~"하며 안기는 손녀가 아니고, 뻣뻣하기로는 할아버지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할 말이 없어 먹구름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있었다.
  '살아계셔서 다행이에요.'
체리 내가 사 온 건데... 마음이 전해졌을까? 


  초대했더니 누가 온다는 건 재밌는 일이다. 세상에 시계라는 게 있고, 지도라는 게 있고, 서로 간의 약속이라는 게 있어서 '2021년 7월 3일 토요일 저녁 6시'라는 게 누구에게나 똑같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싶어진다. 다들 시간 맞춰 와서 선물을 내려놓은 다음 새로 깔아놓은 마루와 벽지에 감탄하고, "이 집은 얼마나 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도 하고, "여보, 우리도 타일 실리콘 이 색으로 바꾸자."하고, "어머 이 테이블도 참 예쁘다", "난 여기가 제일 맘에 들어" 같은 말들을 리본 풀듯 풀어 놓는다. 여기저기 꼼꼼히 살피고 고장 난 것은 없는지 매만지기도 하고, "여긴 이게 좋다" "여긴 이게 좋고" 하는 말들을 집에 차곡차곡 쌓았다. 우리 집 한 번 안 도와줘 본 친척이 없기에,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이 마음 약한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고 입매를 올리며 하는 말을 항아리에 주워 담고 싶었다. 그 흔하다는 시기, 질투 한 톨 없는 깨끗한 축복의 말. 좋은 흙으로만 가득 채워 온 큰고모의 화분 같은 말. 잘 담아 놓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듣고 싶었다. 흔치 않은 이런 날의 이런 말들이야말로 잊지 못할 선물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렇지만 선물의 양으로 보나 가짓수로 보나 특별함으로 보나 할머니 선물을 따라갈 것이 없기는 하다. 할머니는 우리가 이사 하기 몇 주 전부터 집들이를 기다렸는데, 기다리는 동안 모은 집들이 선물만 해도 일곱 종이나 된다. 두루마리 휴지 24롤 세트, 트리오 대용량, 올해 심은 분 나는 감자, 크게 되진 않았지만 매운맛이 살아있는 마늘, 손녀딸에게 줄 10만 원 담은 봉투, 거기에 알로에 페트병에 담은 집간장까지. 챙겨야 할 선물이 너무 많아 담가 놓은 된장은 잊어버릴 만큼 마음이 바빴다. 그리고 이번에도, 주차장에서 모두가 사라진 걸 확인하곤 주머니에서 십만 원이 든 봉투를 꺼내 얼른 내 손에 쥐여주었다. 시골에 갈 때마다 속이 안 보이는 박스에 감자 한가득, 들기름 한 병, 마늘 한 접씩 더 넣곤 입 앞에 검지손가락을 갖다 대고 비밀, 비밀. 그러나 못 사는 자식 집에 더 손이 가는 걸 모를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할머니는 그 모든 걸 앞장서서 감행하는 사람이고, 보고도 못 본 척 눈감아주는 친척들 모두는 공범이다. 사랑의 공범. 나는 그 사랑 살뜰히 먹고 자라서 백수가 되었고, "이사해서 일터가 멀어져서 어떡하냐"는 걱정에 속도 없이 "할머니 나 일 없어~!" 한 것이 조금 불효 같기는 했으나 없는 것은 없는 것이지 있는 것이 될 수 없지요, 할머니... 후후. 


  우리는 씻어 놓은 체리와 키위와 참외와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여기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아들이자, 남동생이자, 큰오빠이자, 남편이자, 아빠인 우리 아빠를 조금씩 마음에 둔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이 집이 어떻게 우리 집이 됐는지, 아빠로 인해 마련된 집에 왜 아빠는 같이 있을 수 없는 것인지, 세상은 참 요지경이라 다들 말은 안 해도 집 구석구석이 마음에 시렸을 것이다. 어두운 밤 헤치고 집에 가는 검은 도로 위에서 몇 번이고 아들을, 남동생을, 큰오빠를 떠올렸을 것이다. 모두가 돌아간 뒤 침대에 누워 남편과 아빠를 생각했던 엄마와 나처럼.
  엄마, 요새 누가 노란 트리오를 써. 그치.
이런저런 생각들이 지나고 나니 싱크대 밑에 넣어둔 트리오 생각이 났다. 할머니의 선물 중 제일 노랗던 것. 쌈짓돈을 주고 바꿔온 것. 동네 큰 농협 마트에서 고른 제일 좋은 생활용품. 아무리 향균이고 아무리 강력하게 세척해준대도 요새는 다들 천연 세제 쓰고 그러는데... 아무튼 그 트리오가 너무 애틋해서 잠이 오질 않았다. 요새 누가 트리오를 선물해, 누가.... 왠지 앞으로도 누구에게도 트리오는 받아볼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울렁였다. 앞으로 나는 트리오만 보면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겠지.
  큰일이다. 큰일이다, 큰일이야. 우리 이제 큰일 난 거야.
엄마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소릴 내며 괜히 할머니를 탓했다. 살아가기가 바쁜데 사랑할 시간은 정해져 있고, 자주 보기가 힘든데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정해져 있고. 사랑을 이렇게 많이 받았으니 언젠가 많이 울 날이 올 것이다. 그래도 어떡해. 살아야지. 또 누군가의 초대장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야지. 만나야지. 선물을 내려놓고, 리본을 풀고, 얼싸안고 반가워하고, 웃고 떠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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