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쓰레기)
창고를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구겨지고 바랜 작은 천한 장.
“이거… 기억나니?
“네가 다섯 살 때 입던 원피스 자투리야.”
깨알처럼 잔잔한 꽃무늬가 빛바랜 은은함이얼마나 깔끔 떨 듯 빨아댔는지 그 낡음이 어찌나 사랑스러운 원단이던지.
친정엄마도 타고난 손재주로 집안 곳곳
자잘한 패브릭 소품들을 만들어내는 재주꾼이셨기에 그날 일은 놀랍지도 않았다. 별걸 다 모으셔~~
그날 밤 나는 그 천을 손에 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살아남은 천.
작은 꽃무늬 사이로 스며든 어린 날의 웃음소리.
며칠 후, 그 조각으로 반짇고리 커버를 만들었다.
손바느질로 천을 누비고, 오래된 단추를 달고,내가 사랑하는 리넨 리본을 살짝 얹었다.그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의 소품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기억을 꿰맨 물건들, 결혼한 후 처음 생긴 나의 버릇 그래서 쉽게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나 보다 그 덕에 내 아이의 옷을 몇 가지는 활용하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딸아이 꽃무늬 원피스를 잘라 꼬마 파우치를 만드는 일. 아들 체크 남방을 버리지 못하고 미니 쿠션을 만들었던 일. 자주 입던 청바지는 낡아가고 유행이 뒤처져 입을 수 없어도 과감히 잘리고 찢겨 나의 가방이 되곤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바느질이 단순히 예쁘고 실용적인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바느질은 시간을 꿰매는 일이고, 사라진 마음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었다.어쩌면 내 인생에 모아온 예쁜 쓰레기들은그 자체로 시간의 주머니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나에게 묻는 사람이 있다.
“이건 뭐예요?”
“어디에 쓰는 거죠?”
나는 예전처럼 말끝을 흐리지 않는다.
“추억이요.”
“그리고, 마음을 꿰매는 바느질이죠
천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쓸모없는 것들을 ‘쓰레기’라 부른다. 그리고 나는 그 쓰레기를 참 많이 모았다.
한때 내 방은 ‘예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금이 간 찻잔, 시간이 멈춘 오래된 회중시계,
깊은 주름이 있는 스툴, 페인트가 벗겨진 작은 서랍장,그리고 먼지 속에 잠든 나무 프레임 액자들.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고, 누군가는 왜 그런 걸 사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그저 “예뻐서요.” 하고 말끝을 흐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그런 예쁜 쓰레기들을 끌어안았던 이유를.
나는 오래된 것들에 마음이 간다.
새것보다 낡은 것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때가 묻은 손잡이, 군데군데 까진 모서리,
시간이 입김처럼 스며든 흔적들. 그건 물건의 흠이 아니라, 기억이다. 누군가의 손길이었고, 어떤 계절의 햇살이었고, 말없이 지나온 시간의 결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쓸모는 잊히고, 아름다움만 남은 것들.
나는 그것들을 수납장에 조용히 앉혀두며,마치 오래전 친구에게 다정히 인사하듯 속삭였다.
“괜찮아. 여기에 있어도 돼.”
살다 보면, 우리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쓸모를 잃은 것처럼 느껴지고, 누군가의 선택지에서 밀려나고,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용히 주저앉을 때. 그럴 때 내 곁에 있던 건
바로 그런 예쁜 쓰레기들이었다. 말없이 있어주는 것들,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것들.
사람이든, 물건이든, 쓸모보다 중요한 건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도 한 번씩 낡은 물건들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 담긴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고,
내가 살아온 날들을 떠올린다
어쩌면 인생은 예쁘고, 낡고, 쓸모없는 것들의 합집합일지 모르니까.
그 모든 게 모여 결국 나를 만들어 왔으니까.
우리는 흔희 쓸모있음을 기준으로 물건을 판단한다
그냥"예쁘기만 해도 좀 안되나"
세상에 꼭 쓸모로만 남겨야. 하는 것이 있는가?
그 질문은 결국 사람에게도 향하는 이야기같다.
물론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일이 비일비제하지만 쓸모를 잃었다고 느껴질때,존재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 버려져도 괜찮은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