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자 모든 것으로부터
스무 살엔 모든 게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았고, 서른 즈음엔 모든 게 너무 버거웠다.
마흔을 넘긴 뒤엔 그 무게를 그냥 들고 살아야 하는 줄만 알았다.
그리고 쉰이 넘어 좋아하는 일이 시작됐다.
그 조용하고 오래된 세계에
마침내 내 마음도 조용히 눕기 시작했다
누구도 보지 않는 틈, 작은 바늘에 실을 꿰고 하얀 천 위에 내 마음을 천천히 펼치는 그 시간.
마치 하루를 꿰매듯, 찢어진 감정을 봉합하듯, 나는 내 마음의 실밥을 하나하나 고르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앉게 되는 그 자리에 앉아 어깨를 조금 숙이고, 조용히 숨을 고른다. 살면서 참아온 말들,
끝내하지 못한 속마음들,
잘한 건지 못한 건지도 모를 선택들.
그 모든 것이 천 위의 실선처럼 나를 따라온다.
그러다 문득,
처음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이란 걸 실감한다. 누구 엄마도, 누구 아내도 아닌 그저 '나'로만 존재할 수 있는 조용하고 단단한 순간.
실이 천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질 때
그건 단지 물리적인 동작이 아니라
내 마음의 주름을 다독이는 일과 같다.
작은 손놀림 안에 위로가 숨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너무 좋아요.”
수업에서 한 수강생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무언가 ‘아무 생각 없이 좋다’는 건,
사실 가장 깊은 몰입의 순간이라는 걸 나는 알았으니까.
쉰 이후의 인생은
어쩌면 두 번째 인생이 아니라, 비로소 내 인생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바늘을 든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뭔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기 위해서.
작업대 위에 삐뚤게 꿰어진 실선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다운 무늬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바느질을 오래 하다 보면 실이 틀어지고, 선이 엇나가고, 생각지 못한 자리에 바늘자국이 생기기도 한다. 처음엔 그걸 지우려고 애썼다.
다시 뜯고, 다시 고르고, 완벽하게 반듯해야만 작품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어느 날은 오히려
그 어긋난 한 땀 때문에 그 작품이 더 마음에 남기도 한다. 애정이 간다. 자꾸 보고 만지고 싶어 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반듯한 사람보다
삐뚤고, 덜 다듬어지고, 조금은 엉성한 사람이 훨씬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삐뚤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게 바로 나니까.
엉성하고 엉뚱해도, 그게 내 진심이라면
삐뚤게 꿰어진 실선도 충분히 아름답다.
나는 오늘도 실을 꿰고, 조금은 기울어진 마음으로 천을 꿰맨다. 반듯하진 않아도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 삐뚤어져도 괜찮은 삶,
틀리지 말고, 삐뚤지 말고, 모난 말은 삼키고
학교 다닐 때도 생긴 외모는" 물동이를 금방이라도 내려놓은 댕기 딴 참한 처자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러나 속은 엉뚱하고 짓궂었고 늘 일탈을 꿈 뀠던 사춘기 소녀여서 그랬을까?
웃으며 인사하고, 피해는 주지 말고. 그렇게 살아온 시간의 실선은 정직하게 반듯했지만, 그 안엔 내 감정 하나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은 작업대 위에 삐뚤게 꿰어진 실선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다운 무늬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바느질을 오래 하다 보면 실이 틀어지고, 선이 엇나가고, 생각지 못한 자리에 바늘자국이 생기기도 한다. 처음엔 그걸 지우려고 애썼다. 다시 뜯고, 다시 고르고, 완벽하게 반듯해야만 작품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느 날은 오히려 그 어긋난 한 땀 때문에 그 작품이 더 마음에 남기도 한다.
애착이 생기고 그마저 멋스러워 보고 또 보게 되는 무늬.
사람도 마찬가지다. 반듯한 사람보다. 삐뚤고, 덜 다듬어지고, 조금은 엉성한 사람이 훨씬 따뜻하게 느껴진다.
조금 삐뚤어도 좀 어설픈 사람이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게 바로 나이고, 우리니까.
엉성하고 엉뚱해도, 그게 내 진심이라면
삐뚤게 꿰어진 실선도 충분히 아름답다.
나는 오늘도 실을 꿰고, 조금은 기울어진 마음으로 천을 꿰맨다. 반듯하진 않아도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
삐뚤어져도 괜찮은 삶, 완벽하지 않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편안할 수 있는 나. 그 안에서만 비로소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의 무늬를 따라가던 때를 벗어나
나만이 그리는 무늬, 삶의 패턴을 나답고 자유롭게 그리는 요즘 내 인생이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진정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