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Feb 17. 2016

#159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한 것 같이

유시민님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었다.


역시, 폭넓은 지식을 쉽고 분명하게 설명하기로 이름난 분이지 싶었다. 단지 아는 것을 가위와 풀로 오려 붙인다 하여 나올 수 있는 글이 아니다. 


시중에 널린 것이 개론서(槪論書)와 입문서(入門書)지만, 정말 한 분야의 문(門)을 제대로 열어주는(入) 책은 만나기 힘들다. 말 그대로 대강(槪)을 추린 서술(論)들인 까닭이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고민이 있고, 고민이 있어야 관점이 있으며, 관점이 있어야 끊어지지 않은 사유의 흐름이 있기에, 그제서야 우리는 그 흐름을 타고 문(門)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갈 수(入) 있다. 학자로서, 언론인으로서, 정치인이자 관료로서 차곡차곡 쌓은 경험이 <국가란 무엇인가> 곳곳에 주춧돌처럼 박혀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 스스로가 <글쓰기 특강>에서 적은 글쓰기 비결이 그대로 녹아있구나 싶었다. 


"멋진 문장을 구사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다. 읽는 사람이 글쓴이의 마음과 생각을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써야 잘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표현할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을 내면에 쌓아야 하고, 그것을 실감 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문장을 멋지게 쓰면 ‘글재주’를 인정받을 수 있다. ‘글재주’가 있으면 ‘써야 해서 쓰는 글’을 어느 정도 잘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글재주’만으로 공감을 일으키거나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국가란 무엇인가>는 오부능선에서 '혁명이냐, 개량이냐'를 논의하며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혁명은 언제 일어나는지, 혁명이 일어나면 국가의 존립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여기서 유시민님은 혁명가들의 꿈과 같은 모습의 세상을 그리면서도, 혁명 자체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던 한 인물을 소개했다. 나는 그 글에서 숨이 멎었다. 하여 여기에 옮겨 본다. 평화주의자 톨스토이 이야기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속적인 해법을 찾을 수 없었던 톨스토이는 결국 종교적 해결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각자가 욕망을 줄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계시하고, 부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행복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임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얻은 결론이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훌륭하게 사는 세상을 원했다. 사람들 사이에 훌륭한 삶이 존재하려면 먼저 사람들이 훌륭해져야 한다. 사람들을 훌륭한 삶으로 인도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스스로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훌륭한 삶을 정착시키는 데 이바지 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수양하면서 복음서의 다음 구절을 실천하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한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만년의 톨스토이는 이 결론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다. 부를 축적하지 않았고 노예를 부리지 않았으며 풍요로운 생활을 원하지도 않았다. 민중의 사랑을 받는 대문호였지만 소박하게 입고 먹으며 성자처럼 살았다. 무엇인가를 찾아 혼자 길을 떠났다가 기차역 역장실에서 삶을 마감했다."


물론 톨스토이에 대한 자료가 많이 오픈된 지금, 실제 삶 전부가 그의 풍성한 수염처럼 푸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긴 하다. 악필로 쓴 초고를 전부 아내에게 수정하도록 강요했으며 숱한 외도를 저질러 사생아까지 낳았으니, 적어도 좋은 남편이자 가장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에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귀족이 가장 밑바닥 하층민의 삶을 생생하게 이해하고, 평생을 진지하게 해결책을 고민했으며, 실제로 금욕적인 삶을 실천하려고 애쓰기란 당연한 말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그가 비정상적인 성욕으로 대표되는 이런저런 성격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사상과 작품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국가란 무엇인가>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톨스토이에 대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지금 러시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사라져버린 혁명의 흔적 뿐이다. 반면 혁명에 반대했던 톨스토이의 생각과 삶, 죽음, 그의 문학작품은 여전히 세계인의 마음에 살아 있다. 혁명과 톨스토이, 누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더 많이 바꾸었을까?"


수없이 많은 내적 욕망과 갈등. 고민이라 쓰고 방황이라 읽어도 무색하지 않은 고단한 만년. 그러나 나는 결국 위대한 유산을 남긴 톨스토이의 삶을 그리며 그가 스스로 수없이 되새겼을 저 마태복음 5:48을 곱씹어본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매거진의 이전글 #158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