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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02. 2016

#182 오늘도 운동 가요?

조금씩, 천천히 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운동을 새로 시작한 지인이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운동의 'ㅇ'도 모르고 살아온 친구다. 새로 이사한 집 가까이에 헬스장이 있었고, 여차저차 할인을 받아 한 달에 2만 원 밖에 안 하는 데다가, 주변 사람들의 으쌰 으쌰 응원에 등도 좀 떼밀리는 등 여러 가지 좋은 인연이 겹친 덕에 어제 처음 운동화 끈을 묶었다.


헬스장에서 땀을 흘린 기분이 어떻냐고, 팔다리나 복근이 욱신거리지는 않느냐고 물었더니, 헤헤 하고 웃는다. 기구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리 열심히 하진 않았단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헬스가 생각보다 재미있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원래 그런 거예요.'라고 나는 도닥였다.


소개팅과 운동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처음 한 두 번 마주했을 때 느낌이 오지 않으면 계속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헬스는 특히 어려운 만남이긴 하다. 처음에는 기구를 드는 자신이 바윗덩이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져셔 '이것을 지금 왜 하고 있나.' 싶다.


그래도 꾹 참고 꾸준히 출석 도장을 찍다 보면 체중계의 눈금이 미소를 짓거나 근육 여기저기에 갈라진 실금이 신기루처럼 보일 듯 말 듯 하는 때가 온다. 그때서야 겨우 헬스 하는 재미를 느낄똥 말똥 하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몸이 정직하다는 표현 속에는 아마 운동과 인연을 맺기가 쉽지 않다는 진실도 포함되어 있을게다. 


퇴근 무렵, 넌지시 툭 하고 던졌다.


오늘도 운동 가요?



그랬더니 헤헤 하고 해맑게 웃는 품이, 마치 숙제 따위는 새까맣게 잊고 멱 감으러 가는 초등학생 같았다. 허허. 계획에 없구나 싶었다. 혹시 애프터가 없는 만남처럼 헬스장과 영영 작별하려는 것은 아니려나. 아무리 시작이 절반이라지만, 절반만 가고 그만두면 안 되는데. 


예전에 검도를 가르쳤던 사범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학생 때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꼬박꼬박 운동을 나오지만 나중에 직장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다 보면 도장에서 자주 못 볼 수 있다고. 다들 생활인이고 생계가 우선이니 당연히 그런 거라고. 다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더라도, 완전히 검도를 그만두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틈나는 대로 보름에 한 번이고 한 달에 한 번이고 도복을 입기를 바란다고. 보름에 한 번 죽도를 잡아도 검도인이고 한 달에 한 번 죽도를 잡아도 검도인이라고. 그렇게 검도를 하는 사람이라는 끈만 놓지 않고 있으면, 또다시 시절 인연이 닿아 자주 볼 날이 돌아올 거라고. 


나는 그 이야기가 좋았다.


검도든, 영어 공부든, 글 쓰는 일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우리가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꼭 팽팽한 거문고 줄처럼 무리할 필요는 없다. 이를테면 한 달 중에서 적어도 23일은 하자, 라는 식으로 처음에 스스로와 약속을 했다고 해서 억지로 그것을 지키느라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저 끈을 놓지 않는 것. 틈나는 대로 조금씩이라도 하면서 내가 '그것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러다 보면 흐름을 타고 이따금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며 우리는 더 풍요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테니까. 


나중에 그 지인을 보면 검도 사범님의 이야기를 해 주어야겠다.


매일 가지 않아도 되니까 끈을 놓지 말라고. 꼭 헬스장을 가지 않아도 좋으니까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때로는 그저 방에서 5분쯤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너무 팽팽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느슨하지도 않게. 그저 놓지만 않기를 바란다고.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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