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하루를 지탱해주는 것들은 매일매일 비슷하다. 그래도 감사하다.
정말 추운 날씨다. 설날도 지났고, 입춘이라는 절기가 다가오고 지나가는데, 봄은 요원하다. 군대에서 헌병으로 지냈기 때문에, 날이 추우면 히트텍을 챙겨 입는다. 꼭 그것때문은 아니지만, 군대에서 습관이 되었던 것 같다. 사람에 따라 자존심에 안 입는 친구도 있더라. 그 친구는 BX관리 병사였기 때문이다. 약이 올랐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무선 이어폰을 귀에 넣는다. 새삼 이번 달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마음에 든다. 가장 흐뭇해지는 발견은 '정수민 -Siren'이라는 노래다. 처음 들어보는데 신선하고 내 스타일이었다. 루시- 21세기의 어떤 날은 라이브버전으로 추가했다. 보컬의 호응유도와 팬들의 떼창이 기분 좋은 곡이다. 정말 오랜만에 Muse-Plug in Baby를 들었는데,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떠올랐다. 라이브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른다. 하현상 - 겨울이 오면 이라는 곡은 하현상의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곡 같다. 다른 곡도 많이 알지만, 새로운 하현상의 노래를 듣는게 즐거웠다.
노래를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회사에 도착한다. 컴퓨터 전원을 넣고, 물을 받으러 간다. 거의 1리터 정도 되는 스탠리 보온병에 물을 가득 받아서 먹는데, 중간중간 다시 받으러 가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어제까지 써놓은 업무일지를 다시 읽어본다. 올해 들어서 퇴근시간 이후에 10~15분동안 그날 새로 알게된 지식이나, 외워둬야할 부분들 중 일부를 빈 A4용지에 적어두고 퇴근하고 있다. 쌓이다보니 2~3일에 한 장씩 썼는데, 벌써 10장은 훌쩍 넘었다.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자신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은 반가운 것도, 반갑지 않은 것도 있다. 반가운 것은 반가운대로 후속업무가 있고, 달갑지 않은 상황은 그것대로 대응을 마련해야 한다. 업무라는 것은 Term이 있을 뿐, Termination은 요원하다. 아직 오전일 뿐인데, 벌써 허기가 지는 느낌이다. 아침을 먹었지만, 탕비실에 가서 간식을 꺼내 먹는다. 요즘은 탕비실 정리를 내가 안해서 내가 원하는 간식은 없지만, 아쉬운대로 달달한 트윅스 몇 개를 챙긴다.
점심시간에는 오랜 친구와 함께 곱창전골을 먹는다. 이 근방에는 이만한 식당이 없다. 난 곱장이나 곱창전골을 먹진 않지만, 이 집의 곱창전골만 먹는다. 잡내가 없고, 재료가 신선하며, 면사리가 부들부들해서 항상 추가해서 먹는다. 오늘은 친구가 사는 날이라, 친구가 계산하고, 나는 음료를 산다. 달달한 초코라떼에 두유변경을 해서 먹으나, 초코가 더 달달한 느낌이다. 춥지만 잠깐의 산책을 했는데, 서로 고민도 얘기하고, 같은 업무에 종사하니 지식도 나누고, 말도 안되는 말로 서로를 놀리다 이내 자리로 돌아간다. 마침 바람이 적게 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후에는 유난히 졸렸다. 이틀 연속 아침 6시부터 운동을 한 탓인 것 같다. 비타민C를 몇 천 CC를 먹어도 체력이 나아지지 않는다. 오버도스는 나에게 잘 효과가 없는 것 같다. 2시가 넘어가니 눈이 오기 시작했다. 거의 폭설 수준이라 세상은 순식간에 하얀 눈으로 덮였다. 낭만은 쓸모에서 탄생하지 않는 다는 것을 눈을 보며 느낀다. 저렇게 예뻐서 뭐하나 싶지만, 눈 덮인 세상은 묘한 위로를 준다. 그리고 세상사람들은 조금 차분해지고 느려지는 것이 마음에 든다.
퇴근일지를 쓰고 난 후 퇴근한다. 눈이오면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다. 집에만 와도 다 지쳐있다. 오늘 저녁은 한 숨자고 먹자 싶어서 씻고 바로 누워 30분을 잔다. 결혼을 안했으니까 이럴 수 있는 거겠지. 일어나서 저녁거리를 사온다. 소고기 된장찌개. 만오천원이면 한 4~5번 정도 먹을만큼의 된장찌개 재료를 사는 것 같다. 두고두고 먹어야지 하면서 요리를 하고 먹고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에 넣어둔다. 맛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출근길의 플레이리스트. 쌓여둔 퇴근일지의 뿌듯함. 오전의 탕비실 간식. 오후에 내린 눈의 낭만. 저녁에 먹은 소고기 된장찌개. 그래도 괜찮은 하루였습니다.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