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의 나에게
서랍 정리를 하다 '편지'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 '편지'는 일 년에 한 번 쓰는 편지이며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편지가 아닌 서랍 한편에 고이 남겨두기 위한 편지입니다.
아마 그 편지가 누군가에게 전달이 된다면 이후에는 그 편지를 스스로 쓸 수 없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저의 작은 서랍 속에 숨겨 놓았던 편지. 그건 저의 '유서'입니다.
유서를 처음 쓰게 된 계기는 대학 생활 중 교수님을 도와 웰다잉(Well-daving) 프로그램 -죽음을 미리 체험하는 프로그램- 에 참여하면서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남아 있는 생을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미리 유서나 자서전을 쓰면서 삶을 정리하는 기록을 남기고 직접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 봄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내 삶의 마지막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웰다잉 프로그램을 위해 어르신들이 학교에 오셨는데 직접 유서를 써보시라는 주문에 어르신들께서는 유서는 무슨 유서냐며 손 서리 치셨지만, 프로그램의 일환이라 꼭 쓰셔야 한다고 설득드리니 그제야 마지못해 한 자 한 자 쓰셨습니다. 그렇게 유서를 쓰시던 중 어떤 분은 눈물을 떨구시며 본인이 쓰신 유서를 곱씹으셨고, 어떤 분은 내 인생이 이 곳에 담기는구나 라며 오랜 시간을 천천히 공들이셨습니다. 그리고 유서를 쓰시며 느끼셨던 부분을 말씀해주셨는데 '내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집에 가서 써봐야지 했던 게 첫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유서 쓰기는 새로운 1년을 맞이할 때마다 써 내려갔고, 과거의 유서는 새로운 유서가 생길 때마다 보관하지 않고 처분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총 여섯 통의 유서를 썼습니다.
직업의 영향 때문인지 제 유서 속에는 꽤나 상세히 스스로가 원하는 장례절차와 이후에 가족들이 살펴봐야 할 행정적인 부분들까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한 가지 더.
1년이 지난 후 제가 다시 그 편지를 열었을 때 1년 전 과거의 제가 1년 후 편지를 열어볼 저에게 전하는 말들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다짐했던 다이어트는 성공했어?
***랑 여행은 잘 다녀왔고?
직장은 잘 다니고 있는 거지?
입 내밀지 말기! 아직도 하고 있는 거 아냐?
즐겁게 지내고 있지? 우울해도 괜찮아, 금방 지나간다니까?
1년 동안 수고했어. 잘 살았어. 고마워.
다짐했던 것들은 잘 실천했는지 묻는 이야기부터 스스로에게 전하는 수고했고 고맙다는 위로의 말까지.
'마지막' '끝' '죽음' '슬픔' 등의 의미로만 생각되어 오던 유서가
'잘 해왔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며 스스로를 토닥거려주는 누군가의 품 속처럼 그렇게 많은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는 무언가를 시작해 보는 것.
여러분들도 한 번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우연히 열어본 2015년의 유서의 끝 자락의 메시지
" 괜찮아. 괜찮아. 수고했어. 잘 살았어.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