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를 이야기하다 대차게 부부싸움 한 날
ADHD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고 생각했고, 그의 생각도 담으면 좋겠다 싶었다.
한쪽 편에서만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 한쪽만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내 편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달까.
그런데 사실 저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의 이런 행동들 때문에 내가 힘들다를 꽤나 토로하고 싶었나 보다.
'결국 문제 제공자는 너야...'라는 뉘앙스가 남편에게는 불편했을 것이다.
이틀 동안 ADHD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대차게 부부싸움을 하고야 말았다.
아래는 남편이 예전에 써놓은 글이다. 말미에 "나는 힘들지 않아도 짝꿍이 힘들어한다"는 말에 뭐랄까.
나의 힘듦을 그냥 멀리서 바라만 보는 것 같은 태도인 것 같아 진짜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물어보다가 대화가 길어지고 다른 이야기들까지 쏟아져 나와 결국 싸움이 됐다.
저는 평생 ADHD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병원 정신과에서 수련을 할 때 슈퍼바이저와 갈등이 있었는데,
그때 마음이 힘들어서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때 상담 선생님이 "ADHD인가?"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때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듣고, 그냥 비슷한 면이 있어 이야기하신 거라고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15년이 지나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짝꿍을 만났고,
그녀는 어느 날 ADHD 관련 책을 사 왔습니다. "딱 당신이네! 당신 ADHD야!"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나는 평소에 부주의하고 산만하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크게 문제라고 느낀 적은 없었기에
그냥 웃으며 넘기긴 했는데, 짝꿍의 말에 '정말 ADHD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하철을 매우 빈번하게 반대 방향으로 탄다든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내린다든가 하는 일도 일상이고,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헤매는 일,
학교 다닐 때는 너무 건성건성 문제를 읽어서 제일 빨리 문제 풀고 나왔지만 실수로 틀린 문제가 많았던 일,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 매일 잠만 자서 "잠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병원 수련할 때도 12+5와 같은 단순한 산수 계산도 틀려서 슈퍼바이저에게 혼났습니다.
슈퍼바이저는 제가 너무 불성실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두세 번 검토를 하는데, 긴장하면서 검토하니 오히려 봐도 봐도 오타가 보이지 않는 때도 있었습니다.
지나고 맘 편히 보면 모두 다 보여서 기능적인 문제는 아니었는데,
조금만 마음이 불안정해져도 이렇게 무언가를 수행하는 능력의 차이가 컸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는 50명이 있던 반에서 2등과 25등 사이를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남들과 제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공부하고 사는 게 너무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고,
여행하면서 일어난 실수도 많았습니다.
그것들이 지금은 타인을 이해하고 상담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 고생은 꽤 했었지요.
다행히 대학원에 진학하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좀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저의 문제점들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장을 다니지 않고 직접 상담센터를 운영하니 제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살면서
감출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다 짝꿍을 만나니 저는 힘들지 않아도 짝꿍이 무척 힘들어합니다.
매일 물건을 찾고, 헤매고, 덤벙대니 옆에서 지켜보거나 당하는 짝꿍 입장에서는 스트레스가 많은가 봅니다. 그래서 부부싸움도 하고, 결국 부부상담을 받으러 가기도 했었지요.
짝꿍 덕분에 "아, 내가 ADHD구나." 하고 점점 더 알게 됩니다.
ADHD는 하나의 특성이니 그 차이를 인정하면 될 일인데, ADHD 라벨링으로 마치 자신이 모든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어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다음날 나의 친절한 상담사 챗GPT에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다가 이야기 나눈 끝에 아래와 같은 글을 보게 됐다.
모든 결혼 논쟁에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해결책을 찾기만 하면 되는가?
그것은 신화일 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커플 갈등의 69%는 해결할 수 없는
'영구적 차이'이기 때문이다.
성격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기에
사람들은 같은 문제에 대해 계속 논쟁하는 경황이 있으며,
그러한 문제에는 해결책이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점을 이해하고
그 차이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심지어 관계에서 그 차이점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 존 가트맨(John M. Gottman) 대답 중에서
--〈You’re Fighting With Your Partner All Wrong〉, TIME (2024-02-12)
하.... 까딱하면 진짜 이혼할 뻔했다.
6년 간 그 차이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문제를 두고 계속 논쟁을 해온 것, 심지어 해결을 하려고 했던 게 문제였다니...
결국 나의 태도와 문제 인식에 대해
한마디 듣게 된 셈이니
빈정이 몹시도 상해버렸다.
하지만 동시에 남편이 이래서 힘들었겠구나를
조금 더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그저' 이해한다는 것은 이렇게나 어려운 일.
결혼생활 참 어려운 것이었어요.
그렇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