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남편 기상 후 30분 집중 관찰기
뉴스기사를 보면서 남편을 떠올린 건 처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택배 사기 배송 기사에 남편이 생각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으면서도,
사기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집에 오배송되어 온 것 같은 남편 혹은 A를 물어보거나 요청했는데 정말 아무 관련이 없는 B를 답하거나 해주는 남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난 3월 18일 연합뉴스 발 기사 제목이다.
...(중략)...네이버 아이디 '시**'은 지난달 26일 '요즘 알리 사기 배송 심하네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전기톱을 주문했는데 노트가 배송 왔고 무선 드릴을 샀는데 알 수 없는 물품이 왔다. 당황스럽고 무섭다"라고 밝혔다.
남편은 전기톱도 아니고 노트도 아니니 적확한 비유가 아닐지 모른다.
그렇지만 예상할 수 없는 그의 행동에 매일 당황스럽기는 하다.
무섭지는 않다. 몸무게는 내가 더 나가니까.
우리는 가난도 이혼도 장애도 극복한 커플이지만,
ADHD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그로 인한 나의 분노 또한 만만치 않았다.
ADHD라 괴로운 자신의 이야기 혹은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다룬 글이나 방송은 꽤 있던데,
ADHD의 배우자 입장에서의 이야기는 없어 보여 몇 마디 남겨본다.
(그래놓고 3부작.... 할 말 많은 나....)
연애할 때 남편은 자신이 ADHD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도 몰랐으니까.
나도 연애할 때는 몰랐다. 그저 길 잃은 어린양인 줄 알았....
당연히 관련해서 병원에 간 적도 없고, 내가 옆에서 말을 해도 자신이 정말로 성인ADHD인지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요즘 진짜ADHD와 가짜ADHD 구별법, 심지어 패션ADHD라는 말도 생겨나지만,
진또배기는 하루만 같이 살아보면 의사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참고로 남편은 과잉행동이 적은 조용한ADHD인 것으로 판단된다.
결혼 6년 차, 그 시간만큼 쌓인 에피소드를 묶으려다가 대신 그의 아주 평범한 하루를 기록해 봤다.
아침에 그를 깨운다.
아이와 나는 7시에 일어났지만 늦게 잤다길래 잠을 더 재웠다.
쉽게 일어나지 못해서 발가락을 쉴 새 없이 꼼지락 거린다.
새벽까지 일을 하다 잤다고 한다. 당장 필요한 일이 아니라 나중을 위해
갑자기 '삘 받아서' 심리서적 번역을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심리상담사지 번역가가 아니다. 새벽 늦도록 원서로 공부를 했다는 게 아니고, 진짜 나중에 출판의 기회를 생각해 한국에 나오지 않은 책을 번역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왜? 그 시간에? 갑자기?)
그의 아침은 매번 늦다.
"우리 나가야 해 30분 남았어. 8시까지 가야 해."
그는 씻지도 않았고 나갈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다.
시간은 가고 있는데 여전히 발가락만 꼼지락 거린다.
"20분 남았어"
침대에서 겨우 일어난 그는 주방으로 가서
"약 먹으려는 거야? 시간 없으니까 그냥 밥 먹어."
"8시까지 가면 되는 거 아냐?"
"어 그러니까 시간이 없잖아. 아직 씻지도 않았잖아."
"응"
그는 떡국 끓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마도 하필 지금 이 시간에 떡국을 꼭 먹어야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순간, 이 세계에는 남편과 떡국만이 남아있다.
아이랑 같이 나가는 날이라 아이 외출 준비를 하며 기다린다.
그 사이 떡국을 다 끓였다.
그리고 남편은 한갓지게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으며, 이런 말들을 한다.
"떡국에 된장 넣으면 맛있는 거 알아?"
"(시계를 보며) 8시에 나가면 되는 거지?"
"아니? 기차역에 8시까지 가는 거라고. 지금 나가야 된다고!! 몇 번을 말해?"
(사실 어제부터 몇 번 말했던 터라 나의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고 있다)
"아, 그렇구나"
뜨거운 떡국을 입에 욱여넣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는다.
"나 5분 만이잖아. 시간 맞출 수 있어. 나 몰라?"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음... 차키 어딨 지?"
"어제 자기가 썼잖아. 제자리에 좀 놓으라고"
이 차키가 보이시는가.
갤럭시 S23보다 두 배나 더 크다.
차키에는 주먹만 한 키링이 두 개나 달려있다.
그런데도 매번 여기저기에 놔두기 때문에
차키를 찾으러 온 집을 한 바퀴 순회해야 한다.
나는 포효하거나 미친년처럼 날뛰기 시작한다.
여차저차 기차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기차역이 코앞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남편은 나를 내려주며 내 노트북 가방을 들어주려고 한다.
"괜찮아, 안 무거워."
"아냐. 무거워. 줘."
"시간 없다고 괜찮다고."
"아니야, 괜찮아."
스위트함을 동반한 남편의 충동성으로 결국 나의 16인치 맥북은 바닥으로 수직 낙하했다.
맥북 낙하
낙하
셋 하면 어디든 내가 뛰어내리고 싶어진다.
나의 모든 것,
맥북이 모서리로 땅에 곤두박질치자,
나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황급히 전원을 켰다.
그 위치에서 그 각도로 떨어졌음에도 액정이 멀쩡하다. 뭐라도 고장이 났다면 그 즉시 내 무게로 남편을 눌러버렸을 텐데....
말없이 노려보기만 하다 헛웃음이 난다. 그가 옷을 앞뒤 거꾸로 입고 있다.
이건 365일 중 360번 반복되는 일이라 난 갑자기 어떤 무력함을 느낀 채 황급히 기차역으로 뛰어들어갔다.
이건 우리의 평범한 하루, 단 1시간 아니 30분 간의 기록이다.
ADHD 핵심 특성
집행 기능 지연 : 기상·세면·외출 준비 시작 시점이 계획보다 늦어질 때가 있음
충동적 행동 경향 : 갑작스러운 떡국 끓이기, 노트북 가방 들기 → 낙하
예상 소요 시간 과소평가 : 도착 시각이 임박해도 “아직 여유”로 인식해 일정이 촉박해질 수 있음
고강도 집중 구간(하이퍼포커스) : 흥미로운 작업에 몰입하면 장시간 이어짐 -> 새벽에 번역 일 몰입
조직화 어려움 : 차 키·서류 등을 “눈에 띄는 곳”에 두지만, 다음 날엔 찾느라 시간 소모
주의력 결핍 : 옷 거꾸로 입기
**다음 연재글은 남편이 직접 ADHD에 관해 고백하는 글을 실을 예정입니다.
**이 글은 ADHD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하려고 쓴 글이 아니라 그런 남편도 이해하고 싶지만 매번 화가 나는 저의 어려움도 토로하고 싶어 쓴 글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과정은 3부에 실을 예정입니다.
**대문 이미지 출처: 아는 형님 JTBC 25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