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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의 뿌리를 찾아서

식습관이 결혼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by 이손끝

난 생각한다.

인생이 기세가 아니고 먹는 것이 기세라고.


일 인분만 먹는 자, 용서할 수 없다.

고 생각한다.


삼겹살 2인분?


결혼 전, 금방 살이 찌는 체질이기에 운동을 열심히 했었다.

마르지는 않았으나 보통 체형을 유지하며 지냈다.

내가 생각하는 적정체중에 조금만 넘어가도 빡세게 운동해 돌아왔다.

동트기 전 남산 둘레길을 걷는 것이 행복이었고,

PT를 오랫동안 받았고 근육통을 사랑했다.

옷 중에 운동복이 제일 많았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다.

그는 한때 피부 문제로 채식을 3년 간 했던 적이 있었고,

그때의 경험으로 채식주의는 아니지만 고기를 자주 먹지는 않게 되었다.

소고기는 아예 먹지 않았다.

어딜 가든 1인분만 먹었다.


삼겹살 2인분을 시키고 밥이나 냉면을 추가로 시키지 않는 남자.

그런 남자가 뭐가 좋다고 헬헬 거리며

나도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말을 했던가.

나도 이만하면 배가 부르다는 말을 했던가.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를 사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서 '매운 떡볶이'를 시켜 먹기 시작했다.

햄버거, 떡볶이뿐이겠는가.

나는 배달의 민족주의자가 되어갔다.


그렇게 연애하고 결혼해서 출산까지

하고 나니,

나는 원래 몸무게보다 15kg나 찐 몸이 되어버렸다.


남편 탓만 할 수는 없다.

난 원체도 식탐이 있는 여자였기 때문에.


내 식탐의 원천은 어디인가.


엄마는 식탐의 왕이었다.

그녀는 정말 풍족한 집의 막내로 태어났다.

대중화되기 훨씬 이전인 1970년대 초반에 집에 냉장고가 있었다는 걸 보면.

그 시절에 바나나며 파인애플을 먹었다는 거 보면.


(도룡뇽)누가 안 뺏어 먹어.
좀 천천히 먹어.
애들 봐, 있는 집 자식이라 그런지
이, 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소극적이잖아.
...
(덕선)나만 그래. 집에서 먹던
버릇 들어가지고.
누가 뺏어 먹을까 봐.

1988 응답하라, 덕선은 무지하게 먹었다. 우리 엄마도 무지하게 먹는다.


엄마는 덕선이 같은 집도 아니었는데,

원체 식탐이 대단했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적극적이다

못해 음식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났다.


어릴 적 유명한 일화가 있다.


네 할머니가 고구마나 감자를
잔뜩 쪄서 광주리에 넣어가지고
아랫목에 놓고 잤거든.
나는 젤 막내고 늦게 일어나잖아.
삼촌들이 아침에 다 먹고 갈 거
생각하니까, 안 되겠더라고.
새벽에 일어나서 한 입씩 베어 물고 자는 거지.
모든 감자 고구마를 한 입씩.
그러면 삼촌들이 일어나서 한 마디씩 하지.
저거저거 어따 쓰냐고.


그러던 엄마가 가난한 집의 유일한 돈줄이었던 아빠를 만나

사과 하나를 마음대로 못 사 먹었더랬다.


그녀는 어느샌가 식탐의 대마왕

되어버렸다.


그녀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급체를 해서

며칠 고생을 했고,

내가 성인이 되어 같이 살 적에는

먹는 속도가 너무 빨라 혈기왕성 20대인

내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였다.


배달을 시키면 엄마는 양손 스킬을 쓰곤

했는데, 내가 음식 뚜껑을 열기 전 항상

하는 말이,


"엄마! 제발 천천히 좀 먹어"였다.


나이 먹고 먹는 걸로 경쟁하는 게

자존심 상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녀를 쫓아 허겁지겁 먹고는 했다.


그런 엄마를 내가 안 닮았을 리가 없었지만,

나는 통제가 강한 성격이라

줄곧 적당히 사람인 척할 수 있었던 건데,

남편을 만나 식탐이 봉인해제가 된 것이었다.



단백질은 필수 아닙니까?


출산 후 5년 만에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그 사이 몸의 변화는 상당했지만,

어떠한 근력운동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나의 근육들은 평균 이상으로 아직 쓸 만했다.


수년 간의 운동 덕분이었다.

닭가슴살은 한때 나의 동반자였다.

한 번씩 몸에서도 닭 내가 난다는 그 고비도 없었다.


그 정도로 고기는 곧 근육을 위한 필수템이며, 무엇보다 좋아했다. 사랑했다.

고기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도 사실 없다.

그렇다, 난 CO2 배출에, 지구온난화 가속에 무진장 기여를 하고 있는 몸이다.

그럼에도 '미트 러버'라는 사실을 애써 숨기고 싶지 않다.


그러나,

결혼도 했으니,

나도 지구를 위해 뭐라도 하면 좋으니,

노력을 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두부요리를 많이 하려고 하고, 아침에 텃밭에서 키운 상추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 시작헀다.

남편이 소고기는 먹지 않기에 '미디엄 레어'로 즐기던 스테이크도 끊었다.


난 혼자서도 스테이크를 사 먹는 여자였다......


그럼에도

내 평생 먹은 고기보다,
당신을 만나 고기를 먹은 양이
더 많을 걸.


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남편과 거리 두기를

할 것인가 고기와 거리 두기를 할 것인가

심히 고민이 된다.


그는 말한다.

"나 고기 좋아해. 삼겹살도 먹고 목살도

먹잖아. 여보한테는 일 인분 이상 먹지 않으면 좋아하는 게 아닌 거야?"


나는 답한다.

"양껏! 양껏! 먹는 게 중요하다고!



이건 사기 결혼이야.


명절에 시댁에 가면 거의 해물 샤부샤부를 먹었다.

소스 없이. (이게 제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명절음식을 시어머니 혼자서 간단히만 하셨고, 설날에도 추석에도 그 어떤 날에도

고기반찬이 나오지 않았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면역 질환이 있으셔서 음식을 가려드신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아쉽지만 뭐, 친정에 가서 먹으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쌓아놓고 먹으니까.


그러다 작년 설날, 5년 만에 어머니가

갈비찜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


"아빠가 고기를 안 먹으니까. 할 일이 없는데 갈비찜 오랜만에 해봤어."

"...."

"아버지가 고기를 안 드세요?!!!!!!!!!!!!!!!!!!!“

.

그렇다. 시아버지는 원래 고기를 안 드시는 분이었다.

밖에서 식사할 때도 고깃집을 가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사실 고기뿐만이 아니라 뭐든 많이 안 드시는 분이었다.

집 전체가 소식을 한다.

남편은 아버지 자식이 틀림없었다.

.

.


"아니, 아버지가 고기를 안 드셔? 아니 왜 말을 안 했어?"

"아예 안 드시진 않는데? 집에서는 잘 안 드셨지"라고 남편이 그랬던가?


"아니, 아니! 아빠가 고기 안 드신다고 왜 말을 안 해?


보니까 똑 닮은 거네.

그래서 고기를 안 먹는 거네.

원래 고기를 안 좋아하는 거네!!!!

좋아하는 척한 거네!!!!!!!!!


고기를 먹는, 좋아하는 유전자가 없다는 사실에 나는 분개했다.

속아서 결혼한 기분이 들었다.



건강검진, 고기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올해 초, 둘 다 건강검진을 받고

콜레스테롤 조절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게 고기를 많이 먹지 말라고 했다.

남편은 식습관과 전혀 상관없는 가족력

때문이었다.


나는 고기를 줄였고,

그는 고기를 정말 끊다시피 했다.


두 달 뒤, 남편은 병원에 찾아가

"선생님, 제가 식단을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채소를 많이 먹고 있어요."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아니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가족력이라 식단이랑은 별로 관계가 없어요. 고기도 적당히 드셔야죠. 식단 말고 근력 운동 하세요."


그러나 그는 의사 말을 안 듣고 있다.

이참에 진짜로 채식주의자가 되려는 듯,

채소만 주야장천 먹고 있다.


나는 토끼와 살고 있다.

나는 소와 살고 있다.

나는 염생이 새끼와 살고 있다.


1988 응답하라

나는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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