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E도 EEEE와 있으면 I가 된다
사실 하나.
남편은 사주원국에도 역마가 2개, 대운마저 역마 지지가 반복된다. 역마 그 자체다.
하원한 아이를 씻기는 동안 시어머니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먼저는 거의 하지 않으시는 분이라
어떤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어머니 어쩐 일이세요?"
"내가 하도 답답해서 네가 안 받길래 아들한테 했어.
그런데도 안 풀려서 전화했는데 시간 괜찮니?"
"네 그럼요."
통화할 때 등장인물 : A(남편), B(남편의 여동생, 시누이), 최서방(B의 남편, 고모부)
"아이 참, 딸이 100일 갓 넘은 애를 데리고 여름휴가를 간 댄단다.
휴가철이라 길도 막힐 텐데, 1시간 반 거리를, 그 어린애를, 그게 맞는거니?"
나는 듣다가, 진심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틀어막고,
1. 남편인 고모부도 그 여행에 동의를 했는지,
2. 그러는 내 남편은 어머니께 뭐라고 했는지,
3. 어머니는 박 씨 가문의 역마 또는 방랑에 대해 아직 포기가 안되시는지,
를 물어봤다.
1번에 대한 대답은,
" 최서방은 걔가 하는 말이면 그냥 다해준다니까. 그니까 이번에도 가야 된다니까 가는 거겠지.
내가 가지 말랬더니 글쎄 B가 뭐래는지 아니? 자기는 집에 가만히 못 있겠대. 나가야 산대."
2번 질문에 대한 답은,
"세상에 동생한테 잔소리 좀 그만하래. 다 알아서 한다고. 잔소리 좀 그만그만하라 그래서 내가 뭐 그렇게 잔소리하니? 난 또 그게 섭섭하더라?"
3번 대답은,
" 아니 그러니까. 아빠도 똑같아. 생전 집에 있지를 않았어.
그걸 어떻게 딸이나 아들이나 똑 닮았냐고. 아주 지겨워 죽겠어. 정말.
넌 안 그러니? 내가 내 딸 보면서 참,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 아들 만나서
너도 고생 많았겠다 싶더라니까.
그 고집들을 어떻게 꺾니. 내가. 속상해서 너한테 넋두리나 하려고 전화한 거지.
내가 말하니까 걔가 또 그런다. 오빠네도 아기 6개월 때 제주도 갔지 않냐고.
(그렇다. 나는 의도치 않게 6개월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 칠순기념 여행을 제주도로 떠난 것이었다.
그 여행이 누군가의 참고 모델이 될 줄은 몰랐다....)
여기, 내가 결혼한 박 모 씨의 일가는
일평생 방랑과 역마의 역사를 쓰며 살아왔다.
아마도 이들은 엉덩이가 땅에 닿은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제 생각을 물으신다면... 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오빠도 혼자 애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어요...
아시잖아요. 자기주장 강한 박가네 식구들이요.
그런데요 어머니. 아가씨도 이제 엄마니까 누구보다 신경 쓰면서 다니지 않을까요?
그리고 외국 사람들은 갓난아이 데리고 해외여행도 많이 가요. 생각의 차이인 거 같아요.
그냥 답답하실 때 저한테 전화 주세요.
전 어머니 이해할 수 있어요....
그렇다. 나는 6년 전부터 이런 일들을 겪어왔다.
나는 한때 활발한 E였으나, EEEE형 인간과 있으니 I가 되어간다.
참고로 시아버지 시누이 남편 모두 ENFP.
난 ESTJ다….
누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른가를 떠나
홍해처럼 냅다 두쪽으로 갈라지는 그 차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련다.
(박 씨 가문 한정) 역마는 이렇게 설명되어야 한다.
가고 싶으면 간다.
(계획 없이) 그냥 간다.
(점찍었으니) 다 봤지? 가자.
남편과 나는 출퇴근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니어서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아이를 돌본다.
셋이 함께하는 날은 일이 없는 날이거나, 아니면 둘 중 한 명이 일을 빼서 시간을 마련하는 구조다.
상대적으로 내가 더 유연한 일정의 일이었으므로, 시간을 맞추는 편이었다.
일이 갑자기 취소되거나 없을 때
그는 엉덩이를 들썩인다.
그는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드릉드릉 콧구멍을 연신 벌렁거리며
나갈 준비를 한다.
나를 졸라 산으로 들로, 목적지까지 갔다가 30분만 있다 올지언정 그렇게 나다녔다.
결혼 연차가 쌓일수록 남편과 아이 둘만 보내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아이 리듬을 생각하면 하원하고 집에서 조용히 마무리를 했음 싶은데,
나가야 사는 인간처럼 돌아다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철 과일 따러가기 (오디, 복숭아, 딸기, 포도 등),
나무 하러 가기,
민들레 홀씨 찾으러 다니기,
아빠 가고 싶은 데 가기 정도(?)라는 것.
(1시간 KTX 타고 가서 1시간 밥 먹고 1시간 KTX 타고 돌아오기......... 이게 맞는 거니???)
그래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겨우 산과 들, 가끔 바다다.
자연친화적이니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은 그렇게 나무를 주우러 다닌다.
산에서 떨어진 나뭇가지 줍는 정도이지만,
아이 장난감을 만들어준다는 핑계로,
어린이집 뒷산이고 어디고 간다.
아님 말고. 없음 말고의 마인드.
2주 전 약속 안 잡으면 집 밖을 나가지 않던 내가
계획되지 않는 일정은 부담스러워하던 내가
박 씨 가문의 자손을 만나 싫은 꼴 많이 봤다. 많이도 싸웠다.
하지만 같이 살아야 하니,
남편도 좀 덜 드릉드릉하기로 하고,
나도 급 당일치기 정도는 타협하는 것으로.
남편: 우리 진짜 요즘 못 놀았잖아!
나 : 허허이, 생각이 벌써 안 나나 보네? 엊그제 휴양림 가서 고기 구워 먹고 왔어.
남편: 그게 너~~~~~~~~~~~무 좋았어서 그래. 또 가자.
남편: 우리 데이트 요즘 너무 못했어.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야?
나 : 어이쿠? 우리 하루 종일 같이 있었잖아.
남편: 그건 카페에서 각자 일한 거잖아....
나 : 어쨌든 옆에 있었잖아.
남편이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맑눈광으로 이런 말들을 쏟아낼 때면,
조만간 당일치기 말고 1박 2일 이상 다녀와야겠구나 싶다.....
에피소드 하나.
남편이 세계여행을 하던 중, 라트비아 게스트에서 만난 사람이
"세계일주 중이라고? 벨라루스도 좋아. 우리나라도 놀러 와!"
일주일 뒤, 직항도 아닌 경유 비행기로 벨라루스 놀라오라던 사람 앞에 나타났다... 고 한다.
나: 그 사람이 진짜 오라고 한 거 맞아?
남편: 그럼 그러니까 갔지. 뭐 좀 놀란 눈치이긴 한데, 놀러 오라는 눈빛에서 진심을 봤거든.
나: 그 사람 진심을 여보가 어떻게 알아.
남편: 뭐 어쨌든 가서 잘 놀았어. 부모님 집에도 초대받고, 집 사우나에서 나뭇가지로 온몸을 두들겨(?) 맞았다고 했잖아. 베닉 마사지라고 한대.
남편이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긴다.
"제주도에서 친구가 점심 먹으러 올래? 하면 비행기 타고 가서 밥 먹고 올 사람이라고 써. 그러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아….철마는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