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은 사면 불량이 아닌 이상 쉽게 고장 나지 않는다. 몇 년 잘 쓰다가 어느 순간 밥이 설익는 거 같다 싶으면,
여기저기 분해해 청소를 해본다.
고무 패킹도 갈아보라 하니 새로 사다가
끼어도 본다.
그런데 웬걸, 예전 같지가 않다.
뭔가가 다르다.
많지 않은 A/S 센터. 그나마 가까운 곳에 밥솥을 들고 찾아가는 수고로움을 자처한다.
왜일까?
매일 밥은 먹어야 하니까? 당연하다.
그리고 바꾸는 것보다는 비용이 덜 드니까?
고쳐 쓰면 되지 멀쩡한 걸 왜 버리냐는
생각 때문에?
남편이 심리상담사라고 소개하면, 대부분 표정 자체가 '오' 모양이 된다.
확실히 주변에 자주 보기는 힘든 직군인 듯하다.
조금 더 왕래를 하다 보면 고민을 나누게 되고, 이런 질문을 으레 듣게 된다.
혹시 부부상담 잘 아는 데 있어?
물론 아동상담, 청소년상담센터를 물어보기도 하고, 남편은 '은둔형 외톨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고립청년 상담이 전문이기 때문에 관련해서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상담센터는 많지만 '어디가 좋은지' 알아보기가 힘들고, "근처 식당 어디가 맛있어? 추천 좀 해줘"라고 레스토랑 묻듯이 섣불리 물어보기가 저어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좋다는 상담센터를 찾아갔는데 정작 자신과는 안 맞아서 도중에 그만둔 경우도 꽤나 많다.
그런 어려움을 알고 있으니 어쨌든 누군가 물어오면 남편에게서 믿을만한 상담센터를 추천받아 리스트를 추려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는 태평양 오지랖을 발휘해 상담센터 특징을 자세히도 써서 보낸다.
그래야 진짜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 같아서.
꼭 그 문제를 해결이든 뭐든 하면 좋겠는 마음에서.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20대에 1년 간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결혼하고 나서 부부상담도 받았다.
개인적으로 해결이 안 된 부분을 다루기 위해
사흘 동안 아침에 시작해 저녁에 끝나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도 있다.
20대 때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상담 전후로 나는 '완전하게' 다른 사람이 됐다.
수틀리면 잠수 타고 나를 들키면 숨어버리던 20대의 나와 지금은 너무도 다르다.
상담을 받을수록 내 안에서 쌓아 올렸던 나만의 생각들이 무너지는 걸 경험한다.
상담을 통해
내가 아버지를 '증오'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걸,
나도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산다는 걸 보여주며 그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그를 '안심'시키고 싶었다는 것을,
19살의 내가 여전히 그때의 아파트 난간에서 위태롭게 서 있음을 알게 됐다.
상담은,
아버지에게,
19살의 나에게
"이제 안녕, 잘 가. 이제 그만 가도 돼."라는 말을 하고,
잘 이별할 수 있게 해 줬다.
그러니 상담사와 결혼해서가 아니라 나는 원래 '심리상담 예찬론자'였던 것이다.
나는 특히 부부상담을 밥솥에 비유하고는 했다.
매일 밥 먹듯이 (배우자도) 봐야 하고,
(지금 고민하는 문제도) 매일 마주해야 하고, 이혼하자니 조금 고쳐 쓸 수도 있을 것 같고,
그 문제만 아니면 어찌어찌 또 살 수 있을 것 같으면.
A/S 받듯 상담받아보자.
밥솥도 직접 들고 가지 않냐.
(배우자랑) 손 잡고 가보자.
하지만 정말 상담센터를 물어온 사람 중에
상담리스트를 건넨 사람 중에
특히 부부상담은, 받으러 간 사람이 없다.
왜일까?
(2부로 나눠서 계속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