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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남편은 OO을 한다

by 이손끝

남편이 시도 때도 없이, 매일 퇴근하고 하는 일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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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빨래다.


늦게 퇴근해도 예외 없이 그는 꼭 빨래를 돌린다.

정말 거의 매일 빨래를 한다.


우리는 때때로 빨래 때문에 언성을 높이고는 하는데,

그가 빨래를 해서 나는 화가 난다.

결혼하고 6년, 사는 동안 있었던 별별 일 중에 제일 사소하지만 제일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이

바로 이놈의 빨래라는 것이다.


(남편이) 평상시에 빨래를 안 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남편이) 시도 때도 없이 빨래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


보통 빨래를 한다고 하면 "고마워~" 눈 찡긋을 날려도 시원찮을 판에

나는 오히려 얼굴이 빨개지도록 화를 내고 있으니...


남편이 매일 빨래를 하는 이유


그는 빨래통에 들어있는 빨래가 보기 힘들다.

깨끗하게 비우고 싶다.

빨래통을.


그래서 집에 퇴근하자마자,

쉬는 날이라면 눈에 띄는 즉시,

꼭 해야 한다.

빨래라는 것을.


일을 조금 하다가 건조기에 넣어야지.
밥만 먹고 빨래를 말려야지.
책 좀 보고 나서 세탁물을 꺼내야지.


그는 이내 잊는다.

완전히 잊어버린다.

빨래에 대해서.

자신이 세탁기에 넣은 것들에 대해서.


그가 잊어버린 세계는

꿉꿉하고 텁텁하고 후덥지근하고 찜통같이 컴컴한 원통 안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쉽게 잊히지 않는 쉰내와 함께.


나는 괴성을 지른다.


빨래 돌렸어?


아, 까먹었다!!! 지금 다시 돌릴게.



다시 헹굼+탈수를 돌릴 거면 물 아깝게 제발 돌릴 수 있을 때 돌리자.


건조기까지 돌릴 수 있을 때 하면 좋겠다고.


건조기 아니더라도 안 잊어버리고 세탁물 꺼낼 수 있을 때 하면 어떻겠어?


"응 알았어. 다음부터는 그럴게용~."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나를 달래고는

그는 어제도 잊었고 오늘도 빨래의 존재를 잊는다.


빨래로 산더미를 만들고는.


물론 남편이 건조기까지 돌리는 날도 많다.


운이 좋게 건조기 안에서 열풍을 맞아,

뜨끈뜨끈해진 빨래들은 소파 위로 내던져진다.


티셔츠고, 원피스고, 니트고 모두 구겨진 상태로.

그놈의 아침을 맞이한다.


"다른 건 괜찮지만 티셔츠 같은 건 펴서 놓으면 안 돼?"


"응 알겠어. 근데."


옷을 좀 안 구겨지는 걸로 샀으면 좋겠어.


그게 말인지 방구인지 똥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 나는 상념에 젖는다.

과연 켜켜이 쌓여있는 빨래감 사이에서도 절대 구겨지지 않을 수 있는

초강력 링클프리 제품이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네가 하면 되잖아? 빨래.


그래, 이쯤 되면 이런 의문도 든다.


내가 빨래를 해버리자.


나도 싫은 소리 하기 싫고,

구겨진 티셔츠 입고 싶지 않으니까.


이제부터 빨래 내가 할게.
하지 마.


그렇게도 해봤다.

안 해봤을 리가.


하지만 나는 빨래를 매일 하고 싶지는 않다.

몰아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세탁기 용량 대빵 크다....)

매일 빨래를 개는 것도 너무 피곤하지 않나?

빨래 말고도 얼마나 많은 집안일이 있는가.

그래서 소파 위에 매일 널부러진 그것들을 흐린 눈 하고 피할 때도 많다.


내게도 이런 사정 같은 것이 있으니,

빨래통에 빨래가 어느 정도 찰 때까지는 분류만 해서 놔둔다.

그런데 빨래통이 다 차지도 않았는데.

스윽 가져다가 빨래를 하고야 마는 것이다.


빨래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작년에 이사를 오면서 세탁기 용량이 3배 정도 커졌는데도,

빨래 돌리는 횟수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은

그냥 그는 빨래가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세탁기를 돌리고 싶은 거다.


건조기는 아닌 게 분명하다.

빨래를 개는 것도 아닌 게 분명하다.


빨래 매일 하는 남편,

어쩌면 좋을까요?


사진: Unsplash의Thomas Dumortier


물론 빨래에 관해서 남편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빨래통에 조금 있는 것도 치워버리고 싶은 남편인데,

허물 벗듯 여기저기 옷을 널어두는 나랑 살아서

더 빨래 빨래 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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