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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아쿠아로빅을 함께 하면 생기는 일

by 이손끝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남편은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이며, 남편은 평생을 슬렌더로 살아왔다.

그래서 난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는 스타일이고, 남편은 '운동 그게 뭐야?' 같은 분위기로 살아간다.

나는 결혼 전 오랫동안 PT를 받고, 헬스를 하며 근육통을 즐겼고, 매일 새벽 남산을 걷는 것을 사랑했다.

남편은 20대에 학사장교 체력 시험을 보기 위해 6개월 헬스 다닌 게 전부였다.

그는 운동은 하지 않지만 엉덩이 붙이고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 평소에도 활동량이 높기는 하다.


그래서일까.

운동을 끊고서 나는 체중이 15kg가량 불어났고, 그는 운동을 하지 않아도 자꾸 살이 빠졌다.


그러다 아이가 세 살이 되고, 둘째를 생각하던 우리는 운동을 같이 해보기로 했다.

(지금은 아이가 다섯 살이고, 둘째는 여러 이유로 갖지 않기로 했다.)

그와 내가 둘 다 좋아하는 것은 수영이었다.


하지만 서울은 수영 재등록률이 높아서 웬만한 스포츠센터에서는 신청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포기를 할 것이냐?

아니다, 둘째가 기다리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우리에겐 오전 시간의 아쿠아로빅 강습이 딱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동네에서 가까운 스포츠센터의 아쿠아로빅 오전 10시 화목반 강습을 신청했다.


수강 첫날,


수영장 안내데스크에서 이번이 처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벽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가리키며,

누가 뭐래도 그냥 못 들은 척하라고 했다.


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텃세 금지,
자리 맡기 금지.


아니, 텃세가 얼마나 심하면

텃세 부리지 말라고 써놓는 거지?


이건 첫 번째 레슨, 좋은 건 너만 알기


뮤직뱅크 방송 캡처 / 유노윤호의 신곡 thank u가 머릿속에 맴돌아 중간중간 제목으로 넣어봤는데, 묘하게 제 글과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합니다?!


예상했던 바다.

대부분의 수강생 연령층은 60~90대 여성이었고,

남자 수강생은 단 한 명, 남편이 유일했다.

젊은 축에 속하는 30~40대 여성도 흔하지는 않았다.


쭈뼛쭈뼛.

갈 길 잃은 어린양들처럼 방향 감각을 잃고 비틀거리자,

오른쪽 제일 바깥쪽 레인의 할머니들께서 이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어머나, 세상에 부부야?
어쩜 둘이 닮아서 오빠동생인 줄 알았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강사가 들어왔고, 오른쪽 제일 바깥쪽 레인은 강사 바로 앞 열이었다.

할머니 무리가 우리에게 가운데(강사님 앞자리)로 가라며 친히 안내를 해주셨다.

거기 말고는 빈자리도 없거니와 일단 누구의 말이든 들어야 하는

어리바리 두 명은 졸졸졸 강사 앞으로 나아갔다.


음악이 흘러나오며 강습이 시작됐다.

"자뉜한~ 여자라~ 나를 부르지는 뫄아아아~~" 같은 추억의 90년대 가요 메들리와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와 같은 당시 유행하는 트로트가 적당히 섞여있어,

수강생들의 취향을 저격한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헛둘헛둘.

아쿠아로빅은 절대 만만한 스포~쓰가 아니었다.


한때 비치클럽을 누볐던 나의 댄스 실력은 전혀 발휘를 하지 못했고,

몸치이자 박치인 남편은 모든 동작을 강사와 정확히 반대로 했다.

왼쪽으로 가는 동작이면 오른쪽으로 간다든지 위로 점프를 하는 동작이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든지 미끄러지지 말라고 워터슈즈까지 사줬건만,

번번이 미끄러졌고,

이따금 뒤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실수 연발이었지만,

오랜만의 운동이었고,

또 같이 하는 운동은 처음이었으니까

살짝궁 신나고 설렜던 것 같다.


우스꽝스러운 남편의 허우적거림에 깔깔거리기도 하면서 함께 미끄러져 물을 쿨럭쿨럭 마시며 케케 거렸다.

수업시간 50분이 후딱 지나갔다.


"처음엔 따라가기 어려운데, 금방 또 익숙해지더라고. 걱정 마. 또 봐요."


아니 텃세는 무슨 텃세란 말인가.

너무나 다정한 할머니들 사이에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남편에게 소감을 물으니,

"재밌어!!!! 꽤 힘드네~. 남자가 한 명도 없어서 샤워실이 내 차지야!"였다.


해맑다. 참 해맑아.

그는 나 포함 아줌마, 할머니들 사이에서 전혀 위축되는 법이 없었다.


(참고로 남편은 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제 두 번째 레슨, 슬픔도 너만 갖기


그의 댄스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며 물을 연신 먹고,

점프할 때도 적당함이 없이 마치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돌고래처럼 뛰어올라 물을 여기저기 튀겼다.

잘 보고 따라 하라며 주의를 줬지만 그의 몸은 더 이상 그의 소유가 아닌 듯했다.

그는 물에 빠진 주유소 풍선과 같이 나풀거렸다.

뒤에서는 연신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래도 첫 시간보다 많이 나아졌네."

"부부가 운동 같이 하니까 얼마나 보기가 좋아."


칭찬은 남편을 춤추게 하는 듯했다.




두 번째 강습이 끝나고 샤워를 하러 들어왔다.

머리를 감고 있는 내게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와 물었다.


"부부예요?"

나는 아주 잠깐, 부부가 운동을 같이 한다는 사실에

뿌듯함 같은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네에~ㅎㅎㅎ"


"아니 그런데..."

.

.

"네?"

너무 못하니까~~~~!


그녀의 말에는 주어는 빠져있었지만 그녀가 가리키는 사람은 당연히 남편이었다.

그녀의 항변은 일리가 있었다.

강사 바로 앞에서 남편이 정확히 반대의 춤사위를 보이니 수업에 방해가 되었을 수 있겠다.


"아고 그러셨어요?" 머쓱해서 웃었더니,

"그니까, 너무 못하니까"를 반복했다.

"... 저희도 다른 데 가고 싶은 데 갈 데가 없어서요."

"아니 진짜 너무 못하니까 좀 그래요. 앞자리는 비워놓고 다른 데 가줘요."


너무 못하니까!

너무 못하니까!!

너무 못하니까!!!!


'못해서 죄송하긴 합니다만... 못하니까 배우러 왔지요.'

같은 생각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왔지만 말하지는 못했다.


샤워를 하고 남편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전했더니,


"그렇지, 내가 좀 못하긴 해. 최선을 다한 건데 말이야. 허허." 한다.


그날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와서 관련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텃세야. 진짜 나도 수영 배우러 갔다가 혼쭐이 났잖아. 난 엉엉 울었다니까. 그 뒤로는 못 가겠더라고."


하지만,

여성 무리에 있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고,

남의 핀잔에도 타격감이 전혀 없는 남편이라


우리는 꿋꿋하게 아쿠아로빅 강습을 또 갔다.



드디어 세 번째 레슨, 일희일비 않기


난 인자하신 할머니들께 지난 강습 때 있었던 이야기를 일러바쳤다.

난 원래가 속이 좁은 인간이다.


"신경 쓰지 마. 꼭 못하는 것들이 그래."


"어머님, 그래도 저희... 좀 구석에 가서 할게요."


그렇게 우리는 맨 앞 줄에 섰지만 가운데는 비워놓고 구석에 가서 강습을 받기로 했다.


"오~~~ 넌 그렇게 날 놓아줄 수는 없겠뉘이이이~~~" 노래에 맞춰 헛둘헛둘.


그러나 보법이 달랐던 남편은...

어? 어? 어? 하다가 가운데로 휩쓸려 가버리고 말았다.

폴짝폴짝 뛰며 내 쪽으로 왔다 멀어지길 반복하며 결국에는

'에이 난 몰라' 하는 표정으로,

그는 다시 주유소 풍선이 되어 물살을 갈랐다.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네 번째 수업도 남편과 함께였다.

일명 못하니까 아줌마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날도 구석에서 시작해 가운데에서 강습을 마쳤다.

그 뒤로는 서로 바빠져서 자연스레 못 갔던 것 같다.




가끔 그때 이야기를 남편과 한다.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같이 운동을 하는 게 너무 재밌었고,

다시 남편에게 반하게 된 순간이라고 말한다.


내가 남편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모습 중 하나.

다른 사람의 말이나 태도나 행동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그렇습니까? 허허.
네~ 그럴 수도 있지요.


평소에는 타잔의 헐랭이 빤스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그는 지하 10층까지 뻗은 뿌리 깊은 나무 같아서 여간해서는 흔들림이 없다.

(물론 이것은 왕왕고집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씁)




여하튼 불어난 몸뚱이를 두고 볼 수 없어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러닝 전후 스트레칭도 야무지게 하고,

더디지만 달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더 건강한 모습을 꿈꾸게 됐다.


지금 사는 곳은 집 앞에 바로 수영장이 있어

남편에게도 권유를 해보지만 꿈쩍도 않는다.


"나 요즘 엄청 바쁘잖아."


헬스장이든 수영장이든 어디로든 꼬시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요?


결혼 선배님들,

같이 운동 하시나요?



**메인 사진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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