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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 반반? 같은 소리

by 이손끝


내가 지난 4월에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우리 부부는 결혼 내내 맞벌이였다.

집안일에 대한 기여도나 육아 참여도가 거의 비슷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내 혹은 엄마가 하는 일이 더 많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육아를 더 한다면 남편이 집안일을 더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어찌어찌 맞춰온 것 같다.


백수가 된 지금, 경제 기여도가 없어졌으니 내가 맡은 집안일이 늘어났느냐?

그것도 아니다.

주 이틀 정도는 온전히 내가 글도 쓰고 다른 일을 계획할 수 있게 남편이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한다.

나머지 요일도 서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적절히 한다.



하지만 신혼 초에는 달랐다.

우리는 집안일로 서로에게
치사하고 졸렬하고 아주 못되게 굴었다.


집안일 표를 만들어 서로를 감시하던 때가 있었다.



신혼 6개월까지 이런 집안일 표를 만들어 내가 한 일은 부풀리고 그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철저히 감시를 했다. 조금이라도 적게 하는 것 같으면 눈이 찢어져라 째려보며 타박하고 집안일을 하도록 종용했다.


참, '영양제 챙기기'에도 점수를 매겼다니.

엄청나게 찌질하지만 당시에는 피 터지는 투쟁의 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은 열심히 하는데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억울해서

이 따위 표를 만드는데 동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에게 점수를 매기고 집안일도 오히려 더 하기 싫어지게 되는 이런 투쟁은 얼마가지 못했다.

6개월을 채 넘기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정신이 똑바로 차려서 그랬을까?

아니다.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어느 가정이건 비슷하겠지만 임신과 출산은 빅빅빅 이벤트이기에

집안일을 누가 더 많이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졌다.

그냥 적당히 더러운 채로 살았다. 그냥 그렇게도 살아졌다.


만삭 때 짝꿍은 임산부 체험 옷을 입고 충무로, 남산 둘레길을 거쳐 명동을 누비고는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상대방이 되어 보려는 노력은 언제나 옳다.


특히 출산의 전 과정을 함께하고 산도를 통해 나온 아이를 직접 받은 남편은,

"이런 표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우리 둘 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잖아.

그거 따질 시간에 내가 더 하고 말지" 했다.


하지만.


집안일이 1차전이었다면
우리는 당연하게 2차전에 돌입했다.
바로 육아였다.


누가 육아를 더 많이 하네의 문제보다는 둘 다 잠이 부족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처음은 언제나 서투르다.

별 수 있나.

익숙해질 때까지 부둥켜안고 진흙탕을 구르는 수밖에.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는 서로의 역린을 건드리는 말을 끝도 없이 주고받았다.

그럴 때면 상대방의 바닥을 보고 나의 바닥도 보고 나서야 싸움이 끝이 났는데,

아무튼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이가 돌이 지나고,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여러 하루 일과가 일정하게 이어지면서는 2차전이 끝나.... 지는 않았고,

드문드문 생기는 게릴라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훈육에 대한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여전히 치열하게 분투한다.

육아와 그로 인한 의견 충돌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남편이 육아를 하는 날에는 온전히 맡긴다.

애가 어떻게 될까 봐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물론 때때로 잔소리를 하지만, 그를 믿기로 했다.


나보다 더 잘하는 것도 많다.

잠도 일찍 재우고, 안 먹는 음식도 먹게 잘 구슬린다.

세상 구경은 언제나 호기심 많은 아빠가 제일이다. 그는 ENFP니까!!!






며칠 전에 짝꿍이 지인을 만나고 왔다.

그 자리에는 결혼한 지 몇십 년 된 커플도 있고, 이제 막 신혼인 커플, 미혼인 청년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대화 중에 결혼 생활을 오래 유지하고 있는 커플의 아내가 평생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은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랬더니 한 청년이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남편분이 집안일을 하도록)
기회를 안 주신게 아닐까요?



엄마는 스물두 살에 결혼해 마흔 살에 이혼을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빠는 경제권을 쥔 채 엄마가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게 했다.

이혼을 하고 나니, 엄마는 공과금 하나 은행에서 처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기회'였다.

엄마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청년의 질문을 듣고 일상에서 고민했던 것들에 명쾌한 답을 들은 것 같았다.

우리가 최소한 집안일로 서로에게 불만이 없는 이유도 알게 됐다.


치사하고 모냥 빠지게 찌질했지만,

진흙탕에서 구르고 굴렀지만,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를 요구하고 받아들이고 조율하는 치열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도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선에 대한 의심을 거두는 순간 서로를 믿을 수 있다.


짝꿍에게 물어봤다.


"여보는 지금은 어때? 집안일이나 육아에 대해 불만 같은 게 있어?"


"아니 전혀 없어."


"그래? 여보가 좀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니? 하는 영역이 다른 거지. 둘 다 열심히 하잖아."


"혹시 불만 같은 게 생기면 미리 말해줘. 내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줘."






집안일,
육아,

사랑할 기회,
사랑받을 기회,

서로에게 노력할 기회—


우리는 서로에게 그 ‘기회’를 잘 건네고 있는 걸까요?









**메인 사진 :

남편이 홈베이킹으로 만든 음...그러니까 그런 빵? 쿠키? 돌하르방? 같은 것입니다.

(피 흘리는 것 같은 것은 크랜베리입니다...)

맛은…00이지만 전 짝꿍에게 베이킹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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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