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평소에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자기 직전에 먹는 습관이 있었다.
위가 좋지 않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듣고 나름 조심하기는 했지만,
어느 날 밤,
"오늘은 진짜 배고파서 잠이 안 와"라며,
아몬드 한 봉지를 다 먹을 기세로 입안 가득 욱여넣었다.
다음 날,
"요즘 피부가 또 올라와. 엄청 간지러워."
하며 남편이 팔뚝 안쪽을 벅벅 긁어댔다.
금세 피부가 빨갛게 올라왔다.
남편은,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봐."
고기는 죄가 없다. 뭐만 하면 요즘 고기를 많이 먹었다고 이야기하는 남편이다.
그놈의 고기 타령을 못 들어주겠어서,
"여보, 예전에 알레르기 검사한 거 봐봐. 진짜 고기 먹고 그러는지 다른 거 때문에 그러는지."
그렇게 어디 널브러져 있던 알레르기 검사 결과지를 들고 왔다.
"아아? 나 아몬드에 알러지가 있네에!!!"
"아몬드에? 2년 전에 검사받은건데 몰랐어? 어제 많이도 먹더니,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거 아냐?"
이것이 알러지 인간과 사는 어려움의 시작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알레르기 검사에는 두 종류가 있다.
급성알레르기검사(lgE)와 지연성알레르기검사(lgG4).
남편이 받은 것은 지연성알레르기검사이고, 이것은 즉각적인 알레르기 반응(아낙플락시스)을 보는 것은 아니다. IgG4 수치가 높게 나온 것은 “몸이 그 물질에 많이 반응하고 있다”는 뜻이지만, 그것이 꼭 “나쁘게 과민하다”는 의미는 아니고, 때로는 “익숙해져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따라서 검사 수치만으로는 피해야 할 음식을 확정할 수 없고, 실제 증상과 생활 경험을 함께 봐야 한다.
남편은 확실히 클래스 4에 해당하는 아몬드와 땅콩은 즉각적으로 가려움증이 올라오는 것 같다. 앞으로는 안 먹는 방향으로 조절해야겠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일평생 먹어오면서 익숙해졌는지 그다지 반응이 나타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아몬드, 땅콩, 계란흰자, 토마토
밀, 치즈, 바나나, 계란노른자,
그리고 마늘!!!!
남편은 결과지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그날부터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요리를 못하는 편이 아니라서 남편이 음식 가지고 불만을 가졌던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음식에 토를 달기 시작했다.
"여보, 나 마늘 알러지잖아."
"나 우유에도 알러지 있는거 알지?"
"그러면 평생 안 먹어? 이제까지 잘만 먹고 살았는데? 계란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아?"
"계란 흰자 알러지 반응이 더 높아. 클래스 포호오-."
"그럼 노른자만 먹으면 되잖아."
"그건 콜레스테롤~~~~"
갑자기 이렇게 나온다고?
그러니까 알러지 반응 검사를 하기 전까지는, 나이 마흔이 훌쩍 넘도록
알러지가 있는 줄도 모른 채 살아온 인생이 아닌가.
"야식에는 아몬드지."
"알지 나 소스 장인인 거, 비빔국수 콜?"
"비 올 때는 칼국수 콜?"
"심장에 토마토가 좋아."
"우리 아침에 바나나 하나씩은 꼭 먹자."
"자긴 반숙? 나는 완숙" 숙숙거리며 계란을 먹던,
그는 도대체 어디 갔나.
더욱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그가 선택적 회피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 마늘의 알레르기 반응 결과가 더 높은데도
마늘이 왕창 들어가는 공심채 볶음은 매일 먹는다든지,
토마토는 매일 먹으면서 치즈는 안 먹는다든지.
게다가 요즘 자주 해 먹는 브리 로티(brie rôti).
토마토갈릭브리치즈구이라고도 하고 불리는 이름이 다양한데,
간단히 브리치즈에 토마토와 마늘 올리브오일 뿌려 오븐에 구워낸다.
여기에 꿀을 살짝 곁들여 빵에 발라 먹는다.
정말 초초간단하지만 와인 안주나 브런치 요리로 손색이 없다.
분명 얼마 전까지 남편이 신나서 먹던 요리 중에 하나인데,
"어? 이거 했어? 근데... 마늘, 토마토, 치즈가 다 들어가네? 나 전부 알러지 있잖아.... 안 먹을래."
.
.
.
.
.
.
가뜩이나 고기 안 먹는 것도 짜증나는데 음식에 까다롭게 굴 거라면,
어쩔 수가 없다.
브리 로티에 아몬드와 땅콩을 잔뜩 넣어 억지로 먹이는 수밖에.
주문을 외우면서.
설마 하니 죽지는 않겠지만,
간지러움에 죽어봐라 하면서.
아몬드가 잔뜩 들어간 브리 로티를 먹고 바닥에 구르며
간지러워하는 남편을 보며 낄낄대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다, 상상만 해보는 것이다.
진짜로 상상으로만.
왜냐하면 나는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는 인간이 아니기에.
나는 알레르기 인간과 사느라 애를 쓰고 있지만,
그 또한 정말이지 너~~~~~~~무 예민한 나와 같이 사느라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예민해? 하이고.
너 같은 애면 열이라도 키운다니까.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바보같이 웃기만 하고
손 갈 일 없이 키웠는데 네가 예민해?
나를 낳아준 엄마의 전언이다.
그런 아이가 자라서 어쩌다 매우 예민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빛, 소리, 사람과의 거리, 피부, 일 등등
어쩌면 먹을 거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 아주 신경질적인 예민함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가 나도 피곤하니 남편도 이래저래 참 곤란한 일이 많을 것이다.
*역시 끼리끼리입니다.
다음주에는 저의 유난함을 고백해 보려고 합니다.....
*알레르기가 표준어이나, 일상에서는 알러지라고 더 자주 쓰기에 글에서는 혼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