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과 '최선' 사이
여기 세 사람이 있다. 편의상 A, B, C라고 하자.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세 사람은 C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만날 때마다 A와 B가 번갈아 가며 밥을 사거나 음료를 샀다.
그러다 몇 년 만에 C가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밥을 샀던 A와 B는 내심 기대했다.
‘이제 형편이 나아질 테니 다음에 만나면
한 턱 정도는 쏘겠지.’
그렇게 C가 일을 시작하고 몇 개월 후.
세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C가 밥을 맛있게 먹고 한 말.
“이번에는 더치페이 하자.”
나머지 두 사람은 화가 났다.
'더치페이? 한 턱 정도는 쏴야 하는 거 아냐?'
이때 C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느 강연 중에 나온 에피소드인데,
나는 듣고 나서 '아니 C 마음을 뭘 이해해. 당연히 밥을 사야지. 뭔 더치페이야? 그동안 고마운 거 생각하면 한 턱이 아니고 두 턱 세 턱이라도 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짜증이 나버렸다.
(나란 인간.... 참 별로지만 이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때 강연자가 C의 마음을 대신해 말했다.
"C는 한 턱을 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 턱은 못 쏘는 거다.
생각을 아예 못하는 것.
대신 그동안 자신의 몫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더치페이를 해서 1인분의 값을
이제부터라도
내겠다는 마음이었을 거다."
C가 생각한 최선은 1인분의 몫을 제대로 하는 것이었고,
A, B는 그 이상인 '한 턱'을 기대했기에 C에게 실망했던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는 것 = 남편은 아예 생각을 못하는 것
남편과 나는 대화가 꽤 많은 편이다. 싸울 때도 우리는 치열하게 말로 싸운다.
한번 시작하면 새벽 2시, 3시를 훌쩍 넘길 때도 있다.
이렇게 말로 서로를 ‘조지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살면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건너뛸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게 꼭 탈이 나서 싸움의 계기가 된다.
“하고 싶었어? 몰랐어. 그럼 말을 하지.”
“아니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직접적으로는 안 했잖아. 그렇게 에둘러 말하면 몰라.”
나는 꼭 해달라고 말해야 하나? 이 정도로 티를 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지? 하는 반감이 든다.
같이 살면 더 알아줄 것 같아도 오래 살수록 ‘동상이몽’ 일 때가 어째 더 많다.
'그래, 말 안 하면 모르지. 다음에는 이야기해야지' 싶으면서도 말하기 전에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난 이제 포기했어.“
지인이 얼마전 한 말이다.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남편에게 몇 번 이야기해봤지만 반응조차 없어서
이제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얼마나 많은 기대가 실려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게 부부 사이에, 친구 사이에, 부모자식 사이에 늘 존재하는 것 같다.
‘당연’과 ‘최선’의 사이
그렇게 남편 혹은 아내가 내 마음 알아주기를 기다리다가 또 이야기를 해보다가 싸워도 보다가
'이러다간 진짜 안 되겠다' 싶을 때, 상담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게 부부상담 추천을 받고도 가지 않은, 가지 못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 배우자를 데리고 가는 것만도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나와 남편은 워낙 상담이 친숙하다 보니 "문제가 있다면 상담받자"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사실 더 많다.
관계 회복을 위해서 당연히 상담 정도는 같이 가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아니 우리 사이가 왜? 문제가 없는데”
“내가 더 이상 뭘 더 어떻게 해?”
“돈 아깝게, 우리끼리 해결하면 돼.”
이런 식으로 배우자가 말하면, 없던 기대도 내려놓을 만큼 허탈감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는 ‘당신은 이 관계를 회복시킬 의지가 없구나’라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더 이상 권유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자의 대답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을 수 있다.
‘상담 가면 내가 잘못했다고 할까 봐 두려워.’
‘우리 사이가 더 안 좋아지면 어쩌지? 내가 더 싫어지면 어떡하지?’
'나도 노력을 한 거 같은데, 내가 잘못한 것만 비칠까 봐 걱정돼'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거 힘들어.'
이런 마음의 가능성들이 있지만, 대부분 상담을 같이 가자는 말에 거절당했다고 느껴서 다시 말을 꺼내기가 힘들게 된다.
내가 기대하는 ‘당연’이 누군가에게는 이미 ‘최선’ 일 수 있음을.
상담센터 리스트를 건네고 그들이 부부상담을 받았다면 좋았겠지만,
부부 사이에 상담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해 본 것만으로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묻다 보면 굳이 상담을 받지 않고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남편에게 바라는 '한 턱'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말하지 않고도 알아서 해주면 좋겠는 거 말이다.
여보, 나 사실 바라는 게 있어.
나랑 같이 뛰면 좋겠어.
내가 몸무게 더 나가는 거
열라 짜증 나고,
당신이 일찍 죽을까 봐 너무 겁나.
혹시,
남편 혹은 아내가 '그냥' 알아서 해주면 좋겠는 거 있나요?
저희 집 사람에게도 물어봐야겠습니다.....
**<내가 이혼에 실패한 이유>의 연재일을 월,수,토에서 화요일로 연재일을 변경했습니다.
"주3회? 아주 쉽지"하며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한달 동안 혼쭐이 났습니다. 눈물콧물 쏟으며 썼는데 저의 내밀한 이야기들이라 가능한 호흡을 길게, 시간을 들여가며 쓰고 싶습니다.
오키나와 친구와 쓰는 새로운 브런치북도 계획하고 있으니 종종 놀러와 주세요.
읽어주시는 것만으로 너무나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