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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어려운가?

1. 

 한 동안 바닷가에 있었다. 길었던 집필을, 언젠가 늘 내 곁에 있었던, 내가 사랑했던 그 바다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2.

 사랑은 어렵다. 왜 어려울까? 사랑의 대상을 찾기가 어려워서일까? 아니다. “사랑할 사람이 없어” 사랑의 대상을 찾기 어려워 사랑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는 자신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일 뿐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 아닌 사랑의 대상이 보일 리 없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줄이면 사랑의 대상이 보인다. 사랑의 대상은 늘 주변에 있다.      


 사랑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은 색깔과 같다. 색깔에 색상과 채도가 있듯이 감정에도 종류와 밀도가 있다. 사랑은 빨강 색이다. 하지만 모든 빨강색이 같은 채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짙은 빨강과 옅은 빨강이 있다. 사랑에는 저마다 채도가 있다. 짙은 사랑이 있고, 옅은 사랑이 있다.     

   

 사랑은 분명 기쁨이지만, 그것이 때로 슬픔이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작게 사랑하는 경우이거나 사랑하는 마음보다 크게 사랑하려는 경우가 그런 경우다. 전자는 어떤 경우일까? 누구나 한 존재를 만나게 되었을 때 직감할 수 있다. “나, 사랑에 빠졌구나.”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감정을 애써 외면하거나 부정하려 한다. 첫 눈에 반할만큼 매혹된 존재 앞에서 어깃장을 놓거나  쭈뼛거리는 이들이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격랑 속으로 뛰어 드는 일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짙은 사랑이 찾아왔음에도 옅게 사랑하려 한다. 이들의 사랑은 때 늦은 후회와 함께 슬픔이 된다.  

    

 후자는 어떤 경우일까? 누구나 필요에 의해 한 존재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때 그 존재가 다른 존재와 달리 조금 더 큰 기쁨을 주는 경우가 발생할 때가 있다. 이때 그 기쁨을 애써 포장하고 확대하려하는 이들이 있다. 그저 섹스를 하려 만난 이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믿는 이,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만난 이를 운명적 사랑이라고 믿는 이, 경제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난 배우자를 깊이 사랑한다고 믿는 이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옅은 사랑 속에 있으면서도 짙게 사랑하려고 한다. 이들의 사랑은 때늦게 깨닫게 된 자기기만과 함께 슬픔이 된다.

      

 사랑은 어렵다. 그것은 사랑의 채도를 정직하게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격랑 같은 사랑을 피하고 싶고, 때로 스치는 바람 같은 사랑을 태풍 같은 사랑으로 포장하고 싶다. 이 비겁과 미화美化는 우리의 아주 오래된 습관 아니던가. 사랑이 옅어서 슬픔이 되는 것도, 사랑이 짙어서 기쁨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만큼 사랑할 수 없을 때 슬픔이 되고, 사랑하는 만큼 사랑할 수 있을 때 기쁨이 된다.

  

    

3. 

 나는 늘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며 살고 싶다.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종종 생각나서 찾게 되는 이 바다처럼, 사랑하고 싶다. 사랑 앞에서 비겁해지지도, 사랑을 미화하지도 않고 싶다. 아프더라도, 정직하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 바다도, 철학도, 글도, 사람도 그리고 내 삶도 모두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Amor F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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