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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써야 할 시간

“스스로 ‘균형’ 잡고, 내 ‘근력’으로 살아내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타자와 ‘감응’하며 움직이는 몸을 위하여” 황진규 

1.

“왜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세요?” 

“살려고요.” 


 저는 정말 살려고 운동합니다. 세상의 물살을 거슬러 가는 삶은 고통스러웠습니다.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열심히 해도 다 무의미할 것 같은 그 기분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잠식당했지요. 철학은 제게 희망이자 저주였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삶의 진실에 조금씩 이르게 되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저를 조금씩 더 우울의 늪으로 몰아갔습니다. 하루 종일 책만 보기도 했고, 술도 마셔보고, 훌쩍 여행도 떠나보았습니다. 잠시 우울의 늪에서 빠져 나온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다시 더 깊은 우울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 우울의 늪에서 빠져 나왔을까요? 거친 숨을 내쉬며 온 몸이 땀으로 젖을 때까지 몸을 움직였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떨치지 못했던 우울의 늪에서 한 걸음 빠져 나온 기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몸을 움직여야 했던 겁니다. 일상에 쫒기든, 삶의 진실을 쫒든, 우울과 불안, 절망의 늪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때 당장 해야 할 것은 공부나 명상 같은 정신적인 것이 아닙니다.


 몸입니다. 우울과 불안, 절망은 우리네 몸을 굳게 하죠. 그 굳은 몸을 이완시켜 몸 이곳저곳을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거창하게 ‘운동’이라고 이름 붙은 일들을 하지 않더라도, 몸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몸을 써 생긴 활력(쾌적함‧유쾌함)으로 쫒기는 일상을 멈춰 세우고, 다시 삶의 진실을 쫒아야 합니다. 이것이 긴 시간 우울의 늪에서 방황하던 제가 찾은 삶의 진실입니다. ‘나를 안다’는 건 ‘내 몸을 안다’는 것이고, ‘삶을 안다’는 건 ‘내 몸을 쓸 줄 안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2.

 그렇다면 몸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몸을 쓰는 데는 네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균형’, ‘근력’, ‘움직임’, ‘감응’ 이제 우리는 몸을 쓰는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겠습니다. 스스로 ‘균형’ 잡고, 자신의 ‘근력’을 키우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익히고, 타자와 ‘감응’하는 부자유한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일입니다. 이 네 가지 몸쓰는 법을 익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렇게 몸을 쓰는 법을 알게 되면 하나의 삶의 진실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삶을 잘 산다는 것=내 몸을 잘 쓰는 것’ 잘 산다는 것은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균형 잡고 살아가는 일이죠(중도!). 잘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는 일이죠(독립!). 잘 산다는 것은 고정된 길이 아닌 자유로운 길로 살아가는 일이죠(자유!). 삶을 잘산다는 것은 부자유를 촉발하는 타자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이죠(사랑!).      


 이 모든 잘 사는 법의 원초적인 감각은 바로 우리의 몸에 있습니다. 균형 잡고, 근력으로, 자유롭게, 그리고 타자와 감응하며 몸을 쓸 수 있을 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삶에서도 균형 잡고, 내 힘으로, 자유롭게, 그리고 세계와 감응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 이제 그만 떠들고 ‘몸’을 쓰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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