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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과 자기연민 II

자기연민은 어떻게 삶을 파괴하는가? 

자기연민은 어떻게 삶을 파괴하는가? 

    

 피해의식은 자기연민을 촉발하며 동시에 강화한다. 이것이 피해의식이 우리네 삶을 파괴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자기연민만큼 우리네 삶에 유해한 감정도 없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떻게 우리네 삶을 파괴하는 걸까? 


 첫째, 자기연민은 능동성‧주체성을 제거한다. 자기연민은 삶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감정이다. ‘민희’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크고 작은 삶의 고난 앞에서 자신의 불쌍함에 취해 울고 있을 수밖에 없다. ‘민희’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온 힘을 다 쏟아 정작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나갈 힘이 없다. 이것이 자기연민에 빠진 이들이 의존적으로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를 기다릴 뿐,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삶을 헤쳐 나가지 못하는 이유다.


 둘째, 자기연민은 관계에 균열을 낸다. 자기연민에 빠진 이들은 타인에게 쉽게 상처를 준다.  ‘민희’는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대한다. 심지어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자기연민 때문이다. 자신을 가장 불쌍히 여기는 이들은 늘 자신만을 볼 뿐, 주변 사람들을 섬세하게 살필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주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자기연민의 치명적 문제는 일상적인 관계(동료‧친구)뿐만 아니라 소중한 관계 역시 균열을 낸다는 데 있다. ‘민희’는 왜 수술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연인에게 직장 생활의 불평불만과 짜증을 쏟아냈을까? 이는 ‘민희’가 악질적인 사람이어서 아니다. ‘민희’는 자신이 제일 불쌍하기 때문일 뿐이다. 자신이 제일 고통스럽다고 여기는 이는 소중한 이들의 고통을 볼 수가 없다. 자기연민에 빠진 ‘민희’ 곁에서 ‘재훈’이 조금씩 지쳐갔던 것처럼, ‘민희’의 다른 소중한 관계들 역시 그렇게 조금씩 무너져 갈 테다.     


 셋째,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은 변화 가능성이 낮다. 이것이 자기연민의 가장 심각한 해악이다. 자기연민에 빠진 이들은 갖가지 불행을 겪게 되지만, 그 상태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낮다. 왜 그런가? 자기연민에 빠진 이들은 자기성찰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연민에 빠진 이들은 불행의 늪에 빠져 들어가지만, 그것에 대해 아프게 성찰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민희’ 곁을 떠나갈 때, ‘민희’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아프게 성찰할 수 있을까?      


 ‘민희’의 자기연민에 지쳐서 ‘재훈’이 떠나갈 때, ‘민희’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성찰할 수 있을까? 어려울 테다. 자신의 문제를 성찰하기보다 ‘혼자 남겨진 나는 불쌍하다’는 자기연민에 다시 빠져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민희’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쌍하다는 이유로, 자기 잘못들은 너무 쉽게 정당화한다. 자신이 가장 불쌍한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은 이해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아프게 성찰하기 어렵다.      


 자기연민은 갖가지 방식으로 우리네 삶을 슬픔으로 몰아넣는다. 이것이 우리가 피해의식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피해의식은 자기연민을 촉발하고 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니까 말이다. 자기연민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자신의 피해의식부터 아프게 직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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