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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함은 비인간적이다.

지각은 예비(잠정)적 행동이다.


 행동의 필연성(결정성)은 부자유입니다. 특정한 외부 사건(교통정체)에 대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이 좁아서(짜증·분노) 특정한 행동(짜증)을 필연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부자유한 상태입니다. 반대로 행동의 비결정성은 자유입니다. 즉, 특정한 외부 사건(교통 정체)에 대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이 넓어서(짜증·분노·대화·음악·사색…) 어떤 선택을 할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가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그 상태일 때, 자유롭게 특정한 행동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생명체의 진화를 말해줍니다. ‘행동의 필연성(부자유)’에서 ‘행동의 비결정성(자유)’으로 진보가 바로 한 생명의 진화를 의미하는 거죠. 거시적인 생명체의 진화(신경계의 발전)이던, 미시적인 한 생명(인간)의 진화(성숙)이던, 이는 모두 부자유한 상태(행동의 필연성)에서 자유로운 상태(행동의 비결정성)로 나아간다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이러한 진화(성숙)의 과정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지각知覺’이죠.     


 ‘지각知覺’은 무엇일까요? 무엇인가를 알아서知 깨닫는覺 것입니다. ‘인식’과 ‘지각’은 다르죠. ‘인식’은 대상을 수동적으로 파악하는 것이고, ‘지각’은 대상을 능동적으로 파악하는 일입니다. 종이가 한 장 있다고 해봅시다. 이때 종이의 ‘인식’은 그저 하얗고 넓은 어떤 평면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반면 종이의 ‘지각’은 그 하얗고 넓은 그 평면이 내가 연필로 무엇인가를 쓰거나 그릴 수 있는 대상인 것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즉, ‘지각’은 행동을 위한 정보의 취득인 동시에 예비적(잠재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덜 진화된 종의 ‘지각-행동’ 법칙

     

 이 ‘지각’은 생명체의 행동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의식적 지각의 범위는 생명체가 가진 행동의 강도와 엄밀한 법칙에 따라 연결된다는 것에 주의하자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에 따르면, ‘지각’과 ‘행동의 강도’는 엄밀한 법칙에 따라 연결됩니다. 그 엄밀한 법칙은 생명체가 ‘지각’할 수 있는 범위와 그 생명체가 행동하는 강도(세기)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를 베르그손은 덜 진화된 종과 더 진화된 종의 ‘지각’과 ‘행동’의 차이를 통해 설명합니다. 먼저 덜 진화된 종은 어떻게 ‘지각’하고 ‘행동’하는지 살펴봅시다.      


 열등한 종에게 접촉은 수동적이자 능동적이다접촉은 먹이를 알아보고 그것을 잡는데위험을 느끼고 그것을 피하는 데 소용된다원생동물의 다양한 위족극피동물의 관족은 운동기관인 동시에 촉각기관이기도 하다강장동물의 찌르는 장치는 방어의 수단이자 동시에 지각의 도구이다한 마디로 반응이 즉각적인 것일수록 지각은 단순한 접촉을 닮은 것이어야 하며 그때 지각과 반응의 전 과정은 필연적 운동이 뒤따르는 기계적 충동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덜 진화된(열등한) 종, 예컨대 원생동물(아메바)·극피동물(불가사리)·강장동물(해파리)을 생각해 볼까요? 이들의 ‘지각’은 ‘접촉’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지각은 “수동적이자 능동적”입니다. 아메바(원생동물)는 작은 돌기(위족)로, 불가사리(극피동물)는 몸에 붙어 있는 발(관족)로 대상에 직접 ‘접촉’하여 대상을 ‘지각’합니다. 이때 이 위족(돌기)이나 관족(발)은 (이익과 위험에 대응하는) 운동기관인 동시에 (대상을 파악하는) 촉각기관인 셈입니다. 해파리(강장동물)의 촉수 역시 마찬가지죠. 그 찌르는 장치는 방어의 수단인 동시에 지각의 도구니까요.     


 열등한 종의 ‘지각’은 ‘접촉’(거리=0)이기에 그들의 ‘행동’은 즉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지각’(수동적)하고 ‘반응’(능동적)하는 과정이 거의 동시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들의 행동은 돌멩이를 발로 차면 그 즉시 튕겨 나가는 것처럼, 입력과 출력이 동시적인 “기계적 충동(반응)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죠. 열등한 종의 ‘행동’은 ‘지각-반응’의 동시적 ‘행동’인 셈입니다. 즉, 이들은 아주 즉각적인 강도의 행동을 나타냅니다.      



더 진화된 종의 지각-행동 법칙


 그렇다면 더 진화된 종의 ‘지각’과 ‘행동’은 어떨까요?  

    

 반응이 더 불확실해지고 더 많은 자리가 남겨져 주저하게 됨에 따라관심을 끄는 대상의 작용에 대해 그 동물이 느끼는 거리도 더 증가한다동물은 시각·청각에 의해 항상 더 많은 사물과 관계를 맺게 되고더욱 먼 데서 오는 영향력을 받아들인다또 그 대상들이 이익을 약속하건위험으로서 위협하건 간에 그 이익과 위험은 그 지불기한을 연기시킨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동물이 진화할수록 ‘지각-반응’ 사이의 틈이 벌어지게 됩니다. 가장 진화된 동물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을 예로 들어봅시다. 인간은 아메바나 해파리와 다르게 눈과 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접촉’(거라=0)하지 않아도 ‘지각’할 수 있지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대상을 ‘지각’할 수 있기에 ‘지각’과 ‘반응’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됩니다. 즉 반응은 더 불확실해지고 망설이게 되는 상태가 되는 거죠. 얼핏 난해하게 들리지만 자연 현상으로 설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이익인지 위험인지 알 수 없는 물체가 하나가 있다고 해봅시다. 아메바·해파리에게는 불확실함도 망설임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접촉’(거리=0)해야지만 ‘지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지각’ 순간 ‘행동’(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지각=촉각). 하지만 인간은 다르죠. 신경계가 발전한 인간은 시각과 청각을 통해 그 물체와 거리를 둔 채 그것을 ‘지각’할 수 있지요. 그 거리(비접촉) 때문에 인간은 이익과 위험의 불확실함을 고려하게 되고 행동에 주저하게 됩니다.     


 즉, 인간은 진화의 결과로서, 이익과 위험의 지불 기한을 연기시킬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 덜 진화된 종의 행동은 ‘기계적 충동(반응)’과 같은 행동이고, 더 진화된 종의 행동은 이익과 위험의 지불기한을 연기시키는 행동인 셈입니다. 즉, 이들은 아주 비결정적인(불확실하고 망설이는) 강도의 행동을 나타냅니다. ‘지각’에 관한 베르그손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봅시다.     



지각이 풍부해질수록 선택가능한 행동이 많아진다.


 지각의 풍부성은 뒤따르는 행동의 비결정성과 정확하게 같은 크기임을 인정할 수 있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지각의 풍부성”이 뭔가요? 더 멀리까지 더 많은 대상을 지각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잖아요. 이는 곧 “행동의 비결정성”이 더 커진다는 의미인 거죠. 시력이 0.1인 사람과 2.0인 사람이 아주 넓은 방에 갇혔다고 해봅시다. 두 사람은 각각 그 방에서 어떻게 탈출하려고 할까요? 시력이 0.1인 사람은 겨우 손이 닿는 곳을 더듬어 문을 열려고 하겠죠(필연적 행동). 반면 시력이 2.0인 사람은 어떨까요? 가까운 곳뿐만 아니라 먼 곳까지 천천히 살펴보면서 적절한 도구를 찾아서 문을 열려고 하겠죠(비결정적 행동).     


 이처럼, “지각의 풍부성은 뒤따르는 행동의 비결정성과 정확하게 같은 크기”인 겁니다. 쉽게 말해, 더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자유롭다는 것이죠. 더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는 사람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기에(비결정적이기에)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되잖아요. 베르그손에 따르면, 이러한 삶의 진실이 하나의 법칙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행동’은 시간에 대해 재량권을 가지고, ‘지각’은 공간에 대한 재량권을 가진다는 거예요.      



‘행동’은 시간을 조정하고, ‘지각’은 공간을 지배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법칙을 말할 수 있다행동이 시간에 대해 재량권을 가지는 것과 정확히 비례하여 지각은 공간에 대한 재량권을 가진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행동’이 시간에 대한 재량권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메바는 ‘지각=촉각’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행동’을 하죠. 이는 외부 대상을 ‘지각’하고 반응하는 시간을 현저히 줄입니다. 반면 인간은 ‘지각=시각(혹은 청각)’이기 때문에 주저하며(비 즉각적인) ‘행동’을 하죠. 즉 외부 대상을 ‘지각’하고 ‘반응’하는 데 시간을 길어지게 되는 거죠. 이처럼, 특정한 생명체의 ‘행동’ 양상은 시간에 대한 재량권을 가지는 거죠. 즉 ‘행동’은 외부 대상의 파악하고 반응하는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겁니다.    

  

 ‘지각’이 공간에 대한 재량권을 가진다는 것은 어려운 말이 아니죠. 아메바는 ‘지각=촉각’이기 때문에 사용 가능한 공간은 매우 좁죠. 반면 인간은 ‘지각=시각(혹은 청각)’이기 때문에 사용 가능한 공간이 매우 넓습니다. 이처럼, ‘지각’은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죠.      



인간이 행동 앞서 망설이는 이유

 이제 이러한 베르그손의 논의를 바탕으로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 논의해 볼 수 있을 겁니다. ‘행동’과 ‘지각’의 관점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인간은 여느 동물들보다 뇌와 신경계가 발전했습니다. 이는 ‘지각’이 풍부해져서 사용(파악) 가능한 공간이 넓어졌다는 사실을 의미하죠. 이는 달리 말해,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여느 동물들보다 더 불확실하고 망설이게 진화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메바나 불가사리는 파악 불가능한 외부 대상이 나타났을 때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행동’하죠. 아는(보이는) 게 없으면 뭐든 쉽게 결정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인간은 다르죠. 파악 불가능한 외부 대상(혹은 사건)이 나타났을 때 주저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아는(보이는) 게 많으면 결정장애가 오게 마련이잖아요.      


 그렇다면 특정한 외부 대상(혹은 사건)이 나타났을 때 늘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이 인간다운 일일까요? 얼핏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아메바나 불가사리처럼 똥인지 된장인지 채 구분도 되기 전에 덥석 ‘행동’하기보다 주저하고 망설이며 고심(사유)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니까요.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지각’은 예비적 혹은 잠정적 '행동'이라는 사실입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볼까요? 인간은 왜 뇌·신경계를 비약적으로 진화시켰을까요? 더 큰 공간을 ‘지각’할 수 있기 위해서였죠. 그럼 왜 더 큰 공간을 ‘지각’하려고 했을까요? 그것은 근본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였잖아요. 아메바나 해파리와는 다른(진화된) ‘행동’을 하기 위해서였지만, 근본적으로 그 목적은 ‘행동’이었잖아요. 이 사실을 잊어서는 결코 잊어서는 안 돼요.     

 


우유부단함은 비인간적이다.


 ‘지각’은 근본적으로 ‘행동’을 전제하는 정보 취득입니다. 이는 어떤 생명체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생명의 진실입니다. 다만 인간은 조금 더 나은 행동 혹은 최적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지각’이 발전한 것일 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아무런 결정(행동)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은 결코 인간다운 모습이 아니죠. 아무런 결정(행동)도 내리지 못한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 많은 '지각(고민)'을 한다는 것 역시 결코 인간다운 모습이 아니죠. 


 어찌보면 이러한 모습은 아메바나 해파리보다 못한 존재론적 양상입니다. 아메바나 해파리는 더 나은 결정, 최적의 선택이 아닐지라도 ‘행동’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진화되었다는 인간이 주저하며 망설이느라 아무런 결정도 선택도 내리지 못해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그런 우유부단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 '지각'만하고 있다는 건, 아메바나 해파리만도 못한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다움은 ‘지각(사유)’이 아니라 ‘행동’에 있습니다. ‘지각’은 ‘행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일 뿐이니까요. 우리가 더 큰 공간을 ‘지각’함으로써 더 큰 행동의 비결정성(자유)을 갖는 이유는 결국 ‘행동’하기 위해서인 겁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인간 역시 동물인 이상 이미 ‘행동’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인간은 ‘지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인 겁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 인간은 (물론 더 나은 선택과 결정을 위한) ‘행동’하기 위해 ‘지각’하는 존재인 겁니다. 그러니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지각’은 하되, 그것은 반드시 ‘행동’하기 위한 ‘지각’을 하며 산다는 말에 다름 아닐 겁니다. 인간의 우유부단함은 인간의 ‘지각(사유)’이 과도하게 비대해져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답게 산다는건, '행동'하며 산다는 말과 동의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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