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없을까?
이제 우리는 ‘기억’과 ‘행동’에 관한 연관성에 대해서 규명해 볼 수 있어요. 이는 우리네 삶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일 거예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잖아요? 하지만 그게 잘 안되죠. 왜 안 될까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몰라서일까요? 그렇지 않죠.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 알고 다 알고 있잖아요. 지금 불행하게 만드는 현실을 하나씩 바꿔가면 되잖아요. 돈이 없다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직장이 괴롭다면 다른 일을 찾고, 살이 쪘다면 적게 먹고 운동하고, 건강이 안 좋다면 술·담배를 끊으면 되죠.
이렇게 불행한 현실을 하나씩 바꿔 나가는 ‘행동’을 하면 반드시 조금씩 더 행복해지겠죠. 다 알고 있잖아요. 문제는 그 ‘행동’이 잘 안된다는 거잖아요. 돈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계속 놀고 있고, 직장이 영혼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참고 계속 다니고, 뚱뚱한 것이 콤플렉스이지만 늘 많이 먹고 운동은 하지 않고, 건강이 점점 나빠지는 것을 느끼지만 매일 담배 피고 술을 마시잖아요. 우리가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행복해질 ‘행동’을 좀처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기억’과 ‘행동’ 사이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기억’은 ‘과거-현재’를 잇는 역할을 하고, ‘행동’은 ‘현재-미래’를 잇는 역할을 해요. 한 사람의 역사(과거-현재-미래)가 그렇잖아요. 한 사람이 과거(고등학생)로부터 ‘기억’(공부)을 쌓으면서 현재(대학생)로 왔고, 또한 현재에서 어떠한 ‘행동’(취업 준비)을 해나가면서 미래(직장인)로 나아가게 되잖아요. 이처럼 ‘기억’은 ‘과거-현재’를 연결하고, ‘행동’은 ‘현재-미래’를 연결해요.
‘기억’ 따라 ‘행동’하고, ‘행동’하는 대로 ‘기억’된다.
미래에 대해 영향을 미치려면 과거에 대한 동일한 양의 일치하는 조망perspective이 있어야 한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미래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려면 과거에 대한 조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이는 쉽게 말해 미래를 바꿀 행동을 하고 싶다면, 과거를 잘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에요. 미래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면, 일단 기본적으로 현재에 서 있는 ‘나’가 지나온 과거의 ‘기억’들을 잘 살펴봐야 해요.
제 이야기로 설명해 볼게요. 저는 대학교 4학년 때 대기업에 취업했거든요.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저의 가난했던 과거 ‘기억’ 때문이에요. 저의 아버지는 작은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셨어요. 이후 이런저런 자영업을 하셨는데 다 잘 안됐어요. 제 유년 시절 ‘기억’의 대부분은 돈 때문에 부모님이 다투는 일들로 점철되어 있어요. 그 과거에 대한 ‘기억’의 조망이 ‘돈 많이 주는 대기업으로 가야 된다.’라는 ‘행동’에 영향을 미친 거예요.
“미래에 대한 영향을 미치려면 과거에 대한 동일한 양의 일치하는 조망이 있어야 된다.” 이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죠. 저는 대기업이라는 미래를 선택했잖아요. 그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가 무엇일까요? 바로 제 과거에 대한 조망이었어요. 대기업을 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그 노력의 양은 제가 과거에 대해 조망했던 양과 동일할 거예요. 지긋지긋한 가난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조망했기 때문에 악착같이 대기업에 가려고 발버둥(‘행동’)을 칠 수 있었던 거죠.
누군가 현재 어떤 ‘행동’을 해서 미래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봐요. 이는 반드시 그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조망했기 때문이며, 그가 과거를 조망한 양만큼 미래에 영향을 미치게 될 걸 거예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부유한 집에서 자라 유학을 다녀와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은 취업하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 ‘행동’ 자체를 시도하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과거를 샅샅이 뒤져봐야 그 ‘행동’을 하게 할 동력, 즉 ‘기억’이 없기 때문이에요. ‘기억’에 따라서 미래는 바뀌는 거예요. 우리는 ‘기억’ 따라서 ‘행동’하게 되니까요.
삶은 운명처럼 미리 결정되어 있을까?
논의가 여기서 끝나면 우리의 생각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결정론이나 혹은 운명론으로 가게 될 거예요. ‘기억’은 이미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기억’ 따라 ‘행동’하게 된다면, 우리의 ‘행동’은 운명처럼 이미 다 결정된 거잖아요. 과거의 살아온 ‘기억’에 의해 현재 특정한 ‘행동’을 하게 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미래 역시 결정되는 거잖아요. 이러한 논의는 누구든 살아온(기억) 대로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잖아요. 쉽게 말해, 가난하게(부유하게) 살았던 이는 영원히 그 ‘기억’에 매여 ‘행동’하게 된다는 거잖아요.
이는 삶의 진실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기억’에 따라 ‘행동’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행동’하는 대로 ‘기억’하게 된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하면 안 돼요.
우리의 활동을 앞으로 미는 힘은 그 뒤로 기억들이 밀려들어 갈 빈자리를 만든다. 그럼으로써 기억은 인식의 영역에서 우리 의지의 비결정성의 반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시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시간의 흐름(과거-현재-미래)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마치 미지의 동굴을 파나가는 것과 비슷해요. 벽(현재)을 파나가면서 조금씩 앞(미래)으로 나아가게 되죠. 내가 벽을 파나가고 있는 곳이 ‘현재’이고, 그 벽 너머가 ‘미래’이고, 내가 판 벽 뒤쪽으로 생긴 공간이 ‘과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우리네 삶이 그렇잖아요. 우리가 현재 어떤 ‘행동’을 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순간 항상 뒤에 여백이 생겨요. 그 여백이 ‘기억’으로 채워지는 거예요.
“우리의 활동을 앞으로 미는 힘은 그 뒤로 기억이 밀려들어 갈 빈자리를 만든다.” 이 말 그런 의미에요. 우리가 현재 어떤 활동을 할 때(동굴 벽을 팔 때), 그 힘은 당연히 빈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는 ‘기억’이 밀려들어 가는 공간인 거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면 고등학교 시절은 열심히 공부한 ‘기억’으로 차게 되잖아요. 그런데 베르그손은 이 ‘기억’이 “우리 의지의 비결정성의 반향”이라고 말해요. 쉽게 말해, ‘기억’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동력이라는 거예요.
의아하죠. ‘기억’은 정해져 있잖아요. 그러니 그 ‘기억’은 ‘의지의 비결정성’이 아니라 ‘의지의 결정성’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어린 시절 가난했던 ‘기억’은 돈에 집착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그 의지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되게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베르그손은 ‘기억’이 특정한 의지를 결정하지 않고 얼마든지 다른 의지로 발현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말해, 가난한 ‘기억’을 가진 이도 돈에 집착하는 의지를 넘어 사람과 예술과 철학을 사랑할 의지를 갖게 될 수도 있고, 그에 합당한 행동 역시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는 거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행동’은 ‘기억’이 아니라 ‘누적된 기억’에 의해서 결정된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을 되짚어 봅시다. 우리가 과거를 지나 현재(A)에 있을 때 어떤 행위를 통해 시점 미래(B)에 서게 되죠. 그러면 과거였던 시점은 대과거가 되고, 현재(A)였던 시점은 과거가 되고, 또 앞으로 행동을 준비하고 있는 부분이 다시 미래가 되겠죠. 시간의 흐름은 대과거-과거-현재-미래라는 반복적 순환을 통해 이뤄지게 되죠. 이 반복적 순환 속에서 ‘기억’과 ‘의지’ ‘행동’은 어떻게 작동하게 될까요? 다시 제 이야기로 설명 해볼게요.
저는 왜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했죠? 가난했던 ‘기억’(기억 0) 때문이잖아요. 그렇게 미래로 나아가 직장인이 되었어요. 그럼 이제 취준생 시절은 ‘기억’(기억 1)이 되겠죠. 이제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다시 직장인으로서의 시절이 ‘기억’(기억 2)이 되겠죠. 그런데 저는 회사 다니면서 새벽에 철학 공부하고 주말에는 글을 썼어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기억 0’(가난)이나 ‘기억 1’(취준생)만 가지고는 그렇게 못해요. 어떻게 들어온 대기업인데, 열심히 돈 벌어야지 철학이나 글쓰기 같은 쓸데없는 짓을 왜 하겠어요?
제가 회사 다니면서 철학과 글쓰기에 대한 의지가 생기고 행동할 수 있던 것은 ‘기억 2’(직장인)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저 직장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그러면서 알게 됐어요. ‘이거 사람이 할 짓이 아니구나.’ ‘여기 더 있다가는 내 몸과 마음이 다 갈려 나가겠구나.’ 알게 됐어요. ‘기억 0’(가난)과 ‘기억 1’(취준생)은 직장인이 되는 의지를 촉발했고, 직장인이 되었죠. 그런데 그 직장인의 삶이 제가 바라던 삶이 아닌 거예요.
그런 생각을 갖고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그 일련의 시간들이 제 ‘기억 2’(직장인)가 된 거죠. ‘기억 0’(가난) ‘기억 1’(취준생) ‘기억 2’(직장인)까지 모두 쌓인 상태에서 저는 퇴사를 하고 철학을 공부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의지를 갖게 되었고, 그 의지에 합당한 행동을 하게 된 거예요.
우리가 어떤 ‘의지’를 갖고 특정한 ‘행동’을 한다는 건, 하나의 ‘기억’으로 결정되지 않아요. 우리가 지나왔던 수없는 ‘기억’들(기억 0·1·2·3·4…)이 모두 중첩되어서 결정되는 거예요. 저는 지금 철학자예요. 철학자로서 ‘기억’을 쌓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제게 생길 ‘의지’와 ‘행동’은 다른 철학자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기억 0’(가난) ‘기억 1’(취준생) ‘기억 2’(직장인) ‘기억 3’(작가) ‘기억 4’(철학자)까지 오게 되었으니까. 그 ‘기억’들의 중첩이 만들어낸 ‘의지’와 ‘행동’은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철학자들과 다를 수밖에 없겠죠.
‘기억’과 ‘행동’은 나선형 뫼비우스 띠
우리가 현재 어떤 ‘행동’을 하며 미래로 나아갈 때 ‘기억’이 점점 누적돼요. 우리는 그 누적된 ‘기억’ 전체를 조망하면서 미래가 선택되는 거예요. ‘기억’은 분명 특정한 ‘행동’을 불러일으켜요. 하지만 동시에 ‘행동’이 ‘기억’을 만드는 거예요. ‘기억’과 ‘행동’은 뫼비우스 띠 같은 형상인 거예요. ‘기억’을 따라가면 ‘행동’이 나오고,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은 ‘기억’이 되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뫼비우스의 띠가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의 나선형 띠라는 점이에요. ‘기억’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그 ‘행동’이 다시 ‘기억’을 만들지만, 그 순환은 결코 같은 지점을 반복하는 순환은 아니에요. ‘기억’ 따라 ‘행동’하게 되지만, 그 ‘행동’에 따라 다른 ‘기억’이 쌓이고, 그 달라진 ‘기억’에 의해 다시 다르게 ‘행동’하게 되죠. 이처럼 우리네 삶은 시간을 관통하면서 점점 다른 층위로 진입하게 될 수밖에 없죠.
‘기억’은 ‘의지’와 ‘행동’을 촉발할 뿐, 결정하지는 않아요. ‘기억’이 촉발하는 ‘의지’와 ‘행동’에는 항상 비결정성이 있어요. 가난한 ‘기억’이 있는 이가 돈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행동’을 할 순 없을 거예요. 하지만 돈을 고려하는 행동 중에도 여러 행동이 있잖아요. 가난한 ‘기억’을 가진 이 중 어떤 이는 불법·편법적인 방식으로 돈을 버는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버는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행동’을 할 수도 있잖아요.
이처럼 ‘기억’(가난)은 ‘행동’(돈벌이)을 촉발해요. 하지만 그 촉발된 ‘행동’이 특정한 ‘행동’(불법·합법·좋아하는 일)으로 결정되는 것은 누적된 기억들에 의해서예요. 바로 여기서 우리네 삶의 비결정성을 확인할 수 있어요. 누적된 ‘기억’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잖아요. 그런데 바로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이 다음 날 ‘기억’이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기억’이 그다음 날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겠죠.
가난하다고 모두 짐승처럼 돈만 벌려고 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에요. 가난하지만 매일 조금씩 다른 ‘행동’을 하는 이의 삶은 어느 순간 가난의 ‘기억’에서 온전히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될 거예요. 가난한 기억 때문에 불법적으로 돈을 버는 선택한 이와 가난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선택한 이의 ‘기억’과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그 둘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겠죠. 그러니 ‘기억’과 ‘행동’ 중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행동’이에요. 우리의 행동은 기억의 지배를 받지만, 그 기억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지금 우리가 선택할 행동이니까요.
잘살고 싶죠? 행복하게 살고 싶죠? 다른 사람한테 어떻게 살면 행복해지는 물을 필요 없어요. 답은 단순해요. 삶을 행복하게 만들 ‘행동’을 할 수 있는 ‘기억’들을 하나하나 쌓아나가야 해요. 삶을 기쁘게 살아가고자 한다면 내가 기쁘게 ‘행동’할 수 있는 ‘기억’들을 하루에 한 개씩 꾹꾹 밟아서 쌓아나가야 해요. 하나의 기쁜 기억을 쌓아 하나의 기쁜 행동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 기억이 어느 정도까지 쌓이면 마치 자동 운항 장치처럼 그냥 기쁘게 살게 돼요. 기쁜 기억이 많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기뻐지는 행동을 하게 될 테니까요. 복권 당첨되는 것처럼 어느 순간에 비법을 하나 얻어서 한 번에 행복한 삶이 펼쳐진다? 그런 건 없어요. 한 걸음씩 가는 거예요. 그게 삶의 진실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