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대로 살 수밖에 없다.
‘기억=기억+지각’, 이것이 기억의 특징이요. 무엇인가 기억된다는 것은 기존의 기억에 현재의 지각이 더해져 다시 기억되는 거죠. ‘기억’의 이런 특성을 통해 우리의 ‘지각’, 즉, 현실적 지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기억’은 ‘지각’을 통해 점점 쌓여가죠. 이는 ‘지각’한 것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억’한 것으로 ‘지각’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즉 ‘기억’ 없이 ‘지각’은 발생하지 않죠. 이는 우리가 어떤 ‘현실적 지각’을 한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공부를 따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여행을 설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적 지각’은 왜 생겼을까요? 공부를 강요한 당한 ‘기억’과 즐겁게 여행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이는 반대로 누군가 공부를 행복하게 한 ‘기억’이 있고, 여행을 억지로 강요당한 ‘기억’이 있다면, 그는 공부를 설레는 것으로, 여행을 따분한 것으로 ‘지각’하게 되겠죠. 이처럼 ‘현실적 지각’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아요. ‘현실적 지각’은 오직 ‘나’만의 ‘현실적 지각’이에요. 사람마다 ‘기억’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이러한 통찰은 우리에게 아주 큰 삶의 진실 하나를 깨닫게 해 줍니다. “누구나 ‘기억’대로 살 수밖에 없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이죠. 이러한 삶의 진실을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표현해요.
행복한 자의 세계는 불행한 자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다. 『논리-철학 논고』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정말 그렇지 않나요?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아이(A)와 다정한 부모 밑에서 부유하게 자란 아이(B)가 같은 반에서 있다고 해 봅시다. 그 둘이 경험하는 학교는 정말 같은 세계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죠. A는 불행한 학교(세계)를 다니고, B는 행복한 학교(세계)를 다니고 있을 겁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행복한 자의 세계와 불행한 자의 세계는 명백히 다른 세계인 셈이죠.
매 순간의 선택이 ‘기억’을 만든다.
그렇다면 왜 행복한 자의 세계와 불행한 자의 세계는 다른 세계일까요? 바로 ‘기억’ 때문이죠.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사람이 가진 ‘기억’에 따라 현실적 ‘지각’이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지요. 행복했던 ‘기억’을 가진 아이는 세계를 행복하게 ‘지각’할 것이고, 불행했던 ‘기억’을 가진 아이는 세계를 불행하게 ‘지각’하게 됩니다. 선생님이 부를 때, A는 웃으며 대답하겠지만 B는 불안해하며 대답하겠죠. 또 A는 등교도 즐겁고 하교도 즐거울 테죠. 하지만 B는 등교도 하교도 모두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삶의 진실은 A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B에게는 너무나 절망스러운 일 아닌가요? “누구나 ‘기억’대로 살 수밖에 없다.” B에게 이 삶의 진실은 가혹하리만치 잔인합니다. 원치 않게 갖게 된 유년 시절 불행한 ‘기억’으로 인해 그의 삶 전체가 불행한 세계로 전락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불행했던 기억은 필연적으로 불행한 세계를 구성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기억’의 메커니즘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한 오해일 뿐입니다.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우리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면서 점점 쌓여가는 거예요. B는 불행한 세계에서 벗어나 행복한 세계로 넘어올 수 있어요. 행복한 ‘기억’을 점점 쌓아나가면 됩니다. 물론 이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죠. “내가 어떻게 부유해질 수 있겠어.” “내가 어떻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어.” “나 같은 놈한테 어떻게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겠어.” 이처럼 그의 불행했던 ‘기억’이 자꾸만 세계를 불행한 방식으로 ‘지각’하게 만들려고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지각’ 너머 행복한 삶을 위한 선택을 해나가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폭력적인 부모와 결별하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그와 함께 기쁜 순간들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 가면 됩니다. 그 하나하나의 행복한 ‘기억’들이 점점 쌓여 나갈 때, 어느 순간 B의 세계 역시 행복한 세계가 될 겁니다.
누구나 ‘기억’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누구나 살아왔던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퇴행적이고 절망적인 진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오히려 ‘누구나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넘어 새로운 삶의 구성할 수 있다’는 삶의 진실을 의미합니다. 지난 삶이 아무리 암울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으로 구성해 나갈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것이 ‘기억’의 구성원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삶의 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