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뇌 속에 없다.
‘기억은 원리상 물질과는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힘이다.’ 이것이 베르그손의 핵심 논의에요. 베르그손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뇌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거예요. 20세기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기억이 뇌의 문제로 100% 환원된다는 흐름이 생겼어요. 쉽게 말해, “기억이 어디 있니?” “뇌의 주름이지” 이런 식으로 정리가 됐었어요. 지금 우리도 일정 정도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기억이 어디 있다고 생각해요? 흔히 뇌에 있다고 생각하죠. 뇌를 기억의 저장소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베르그손은 이러한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해요. 기억은 뇌에 있지 않다는 거죠. 기억이 뇌에 있지 않다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바로 ‘정신’이에요. 베르그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봅시다.
정신이 하나의 실재라면, 우리가 정신을 경험적으로 접촉해야만 하는 곳은 바로 여기, 기억이라는 현상 안에서다. 그때부터 뇌의 작용으로부터 순수 기억을 도출하려는 모든 시도는 근본적인 착각임이 드러날 것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이원론자에요. ‘정신’과 ‘물질’이 각각 별도로 실제 존재한다고 보는 이원론자죠. 즉 정신이 몸(뇌:물질)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물질)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정신’ 역시 별도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거죠. 세계를 긴 시간 ‘물질’을 중심으로 생각해 왔다면, 이들에게 이는 다소 낯선 관점일 수 있어요. 몸(물질)은 보고 만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정신’ 역시 하나의 실재라면 그것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바로 ‘기억’이에요. 우리는 각자의 ‘정신’을 ‘기억’을 통해 경험하게 돼요. 우리가 뭔가를 ‘기억’할 때 우리의 ‘정신’을 만나는 거예요. “정신이 하나의 실재라면, 우리가 정신을 경험적으로 접촉해야 하는 것은 기억이라는 현상 안에서”인 것이죠. 베르그손의 논의에서 ‘정신’과 ‘기억’은 거의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기억≒정신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래서 ‘기억’이라는 테마가 중요한 거예요.
‘기억’은 ‘물질’이 아니다.
‘기억’은 ‘물질’과 달라요. 그래서 뇌라는 ‘물질’만으로 ‘기억’ 전체를 끄집어낼 수 없어요, 이것이 베르그손의 철학이 심리학자들 혹은 (근대) 뇌과학자들의 이론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에요. 심리학자 혹은 뇌과학자들은 뇌가 기억의 저장소라고 생각하거든요. 베르그손은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요. 베르그손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도식을 하나 살펴봐요.
뇌(물질)와 기억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뇌 안에 모든 기억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뇌가 사라지면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죠. 정말 그럴까요? 뇌가 사라지면 모든 기억이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아요. 물론 베르그손은 뇌 안에 기억이 전혀 없다고 말하지 않아요. 뇌 안에 기억이 있긴 있어요. 뇌 안에는 기억이 산발적으로 있어요. 그 산발적인 기억은 어떤 기억일까요? ‘운동화 된 기억’이에요. 그 기억만이 뇌 안에 있어요.
‘운동화 된 기억’은 무엇일까요? 수많은 기억 중 우리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기억이에요. 그 기억이 ‘운동화 된 기억’이고, 그 기억만이 뇌 속에 있다는 거죠. 더 정확히 말해 뇌의 작용(과정) 안에 있는 거예요. 사과를 먹은 기억, 연인과 키스했던 기억은 우리의 뇌의 작용 속에 있는 기억이에요. 그 기억은 우리를 운동하게(사과를 먹고, 키스하게) 할, 즉 몸을 움직이게 할 기억에요. 그 기억은 뇌의 과정에 대응되는 기억이에요.
반대로, ‘운동화 된 기억’ 이외의 기억은 뇌 안에 없어요. 순수한 망상처럼, 우리의 몸을 전혀 움직이게 하지 않았던 기억들도 있죠. 그런 기억은 우리 뇌 안에 없어요, 그것은 뇌의 작용에 대응하지 않아요. 즉, 전체 기억 중 일부만 뇌에 있고, 나머지는 뇌 밖에 있는 거죠. 낯선 이야기일 수 있으니 뇌와 기억에 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볼게요.
뇌의 작동은 기억의 결과다.
뇌의 과정은 기억의 매우 작은 부분에 대응할 뿐이고, 기억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뇌와 기억은 분명 대응 관계에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매우 일부일 뿐이에요. 과거의 어떤 기억이 현재화되어서 어떤 행위를 하게 될 때만 뇌에서 변화가 생겨요. 그러니 뇌의 과정(작용·형성)은 기억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까울 거예요. 즉, 뇌의 과정(작용·형성)이 기억을 촉발하는 원인이 아니라, 기억 때문에 뇌의 과정(작용·형성)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그래요. 과거의 어떤 기억이 현재화되어서 어떤 행위를 하게 될 때 뇌에서 변화가 생겨요.
어떤 기억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하면, 실제로 뇌의 모양이 변한다고요. 책상에 오랜 시간 공부한 기억이 갖고 계속 공부하는 이들은 그에 걸맞은 뇌의 주름이 생겨요. 오랜 시간 운동한 기억으로 계속 운동을 하면 그에 맞는 뇌의 주름이 생겨요. 우리는 뇌의 과정(작용·형성)이 있기 때문에 기억이 있다고 생각하죠. 거꾸로예요. 뇌의 과정(작용·형성)이 기억을 이끌어 내는 게 아니라 기억이 뇌의 과정(작용·형성)을 이끌어 내는 거예요.
베르그손을 처음 공부할 때, 참 매력적인 철학자라고 생각했어요. 베르그손은 ‘정신’을 강조하기 때문에 분명 관념론적인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헤겔과 칸트 같은 전통적인 관념론자들과는 전혀 달라요. 분명 ‘정신’을 중시하는 관념론자인데 ‘물질’을 중시하는 유물론자보다 더 ‘물질’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마치, 어둠을 규명하기 위해 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려 하기보다,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서 어둠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 같았어요.
기억과 뇌
베르그손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기억과 뇌를 구분하는 일은 중요해요. 이 부분을 조금 더 살펴봅시다.
뇌의 운동 기제는 거의 모든 기억을 무의식 속에 억압하기 위해서, 그리고 의식 속에서 현재 상황을 조명하고 행동이 준비되는 것을 도와서 결국에는 유용한 일을 낳을 수 있는 것만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창조적 진화』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뇌의 운동 기제(메커니즘)는 거의 모든 기억을 무의식 속에 억압”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해요?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흔히 사람들은 뇌가 컴퓨터 메모리처럼, 무의식 속에 있는 어떤 기억을 의식적으로 기억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이는 우리 뇌의 역할을 정반대로 이해하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일(생각)에 집중할 때, 뇌에서는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 걸까요? 그 일(생각) 이외에 일에는 관심을 끄게 만들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 있죠? 그게 동시적으로 터져 나오면 우리는 아무 일도 못 하고 미쳐버려요. 뇌의 운동 기제 중 1차 작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을 무의식 속에서 억압하는 거예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필요한 일들을 할 수 있어요. 뇌는 컴퓨터가 아니에요. 컴퓨팅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컴퓨터가 아니에요. 뇌는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아요.
“뇌의 운동 기제는 … 의식 속에서 현재 상황을 조명하고 행동이 준비되는 것을 도와 결국에는 유용한 일을 낳을 수 있는 것만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에요. 이제 베르그손의 말이 이해되죠. 뇌의 첫 번째 기능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을 억압하는 거라고 했죠? 왜 억압할까요? 그래야 지금 당장 도움이 되는 유용한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현재 상황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행동이 준비되는 것을 도와서 유용할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뇌의 역할이자 기능인 거에요.
우리의 모든 기억은 무의식 속 어딘가에 모두 저장되어 있죠.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은 다 입력되고 있어요. 우리가 선별하고 분별하고 분류해서 의식적으로 꺼낼 수 없을 뿐 다 입력되어 있어요. 마치 어느 창고에 몇 년 치 CCTV가 다 보관 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때 뇌는 지금 행동에 필요한 기억만을 선택하여 소환하는 동시에 나머지 기억들은 무의식 속에서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거죠.
‘망상’은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니다.
‘뇌는 기억의 저장장치(저장소)가 아니다.’ ‘뇌는 현재 필요한 결과를 얻기 위한 행동을 준비한다.’ 『물질과 기억』에서 놓쳐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주장이에요. 이는 우리네 삶에서 매우 중요한 통찰을 하나 줍니다. ‘생각’과 ‘망상’은 다르다는 사실이죠. 이 둘은 모두 뇌를 쓰는 일이라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사과를 구할 ‘생각’을 하는 것과 사과를 먹는 ‘망상’에 빠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죠. 어떻게 다를까요?
베르그손의 논의에 따르면 전자는 뇌를 쓰는 것이고, 후자는 뇌를 쓰지 않는 것이죠. 뇌를 쓴다는 것은 “의식 속에서 현재 상황(배가 고프다)을 조명하고 행동(사과를 구함)이 준비되는 것을 도와서 결국에는 유용한 일(사과를 먹음)”을 도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망상’은 다르죠. 그것은 현재 상황을 제대로 조명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 당연히 행동이 준비되는 것을 돕는데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할 테니까요.
세상 사람들은 망상에 빠져 지내는 이들을 보면 ‘바보 같다’고 비난할 때가 있죠. 이는 전혀 근거 없는 비난만은 아닐 겁니다. 머리(뇌)를 쓰며 산다는 것은 공허한 망상에 빠져 산다는 것이 아니라, 당장 우리네 삶에 필요한(유용한) 일들을 해나가기 위한 행동을 해나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진정으로 뇌를 쓴다는 것은 공허하고 무의미한 ‘망상’에 빠져 사는 것이 아니라, 당장 우리에게 유용하고 유익한 행동들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