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 혹은 사랑

‘충동’은 왜 수준 높은 정신인가?

“충분히 전개된 정신(수준 높은 정신)”은 ‘사유’와 ‘충동’이 모두 작동하는 상태죠.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모종의 불편함 혹은 의구심을 갖게 되죠. 바로 ‘충동’에 관한 부분이죠. 수준 높은 ‘정신’은 우리를 조금 더 나은(진화된) 삶으로 인도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충동’적으로 살면 조금 더 나은 삶은커녕 삶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잖아요. 이는 근거 없는 우려가 아니죠.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충동’적으로 그만두는 이들이 있죠. 또 ‘충동’적으로 이곳저곳 여행을 떠나는 일을 반복하는 이들이 있죠. 이들의 삶은 겉으로는 낭만적으로 볼일지 몰라도, 끝내는 더 불행한 삶으로 떨어지게 돼요. 이는 삶의 ‘진화’는커녕 오히려 ‘퇴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수준 높은 ‘정신’에서 ‘충동’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죠.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충동’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고민해야 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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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충동’, ‘본능’과 ‘직관’


‘충동’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사유’되지 않은 ‘충동’과 ‘사유’된 ‘충동’이에요. 전자는 ‘본능’, 후자를 ‘직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본능’은 동물적인 ‘충동’이고, ‘직관’은 인간적인 ‘충동’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진규’와 ‘재웅’, 두 명의 직장인이 있어요. 둘은 어느 날, ‘충동’적으로 회사를 그만 두었어요. ‘진규’는 직장 상사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한 날 홧김에 사표를 던졌어요. 반면, ‘재웅’은 직장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느 날 덤덤히 사표를 냈어요.


‘진규’는 ‘본능’적으로, ‘재웅’은 ‘직관’적으로 퇴사를 한 거예요. ‘진규’는 상사의 모욕을 견딜 수 없어서 (고통을 주는 것은 회피하고, 쾌락을 주는 것은 취하려는) 동물적인 반응을 한 거죠. 반면 ‘재웅’은 인간적으로 반응한 거죠. 즉 ‘직관’적으로 반응한 거죠. “충분히 전개된 정신”의 ‘충동’은 ‘본능’(‘사유’ 없는 ‘충동’)이 아니라 ‘직관’(‘사유’된 ‘충동’)인 거예요. 수준 높은 ‘정신’은 ‘직관’적으로 행동하는 ‘정신’인 거죠. 그렇다면 이 ‘직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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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은 무엇인가?


직관은 병치竝置가 아닌 흐름을 파악하며, 내부의 성장을 그리고 현재 속으로 부단히 연장되어 들어가는 과거를 파악한다. 이때 현재는 이미 미래 속으로 혼합되어 들어가고 있다. 직관이란 정신의 직접적 투시다. 『사유와 운동』 앙리 베르그손


먼저 ‘직관’은 ‘병치’가 아니에요. 즉, ‘공간’ 속에 둘 이상의 어떤 것을 놓는 일이 아니에요. ‘직관’은 시간 속의 흐름(지속)을 파악하는 일이에요. 이는 “현재 속에서 부단히 연장되어 들어가는 과거를 파악”하는 일이며, 이때 “현재는 이미 미래 속으로 혼합되어 들어가고” 있죠. 즉, “직관이란 정신의 직접적 투시” 즉 과거-현재-미래를 단번에 꿰뚫어 봄으로써, “내부의 성장(변화)을” 파악하는 일인 거죠.


‘진규’는 ‘본능’적일 뿐, ‘직관’이 없죠. 자신의 삶을 직장 안(고통)과 직장 밖(쾌락)이라는 ‘병치’로 파악했으니까요. (듣기 싫은 소리하니까 때려친다!) 하지만 ‘재웅’은 다르죠. ‘재웅’은 왜 어느 날, 사표를 던졌을까요? 자신과 과거-현재-미래의 흐름을 단번에 꿰뚫어 봄으로써 자신 내부의 성장(변화)을 파악했기 때문이죠. 즉, 그저 ‘본능’(‘사유’ 없는 충동)으로 사표를 던진 것이 아니라, 지금은 내 삶을 바꾸기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라는 사실을 ‘직관’(‘사유’된 ‘충동’)적으로 파악한 것이죠.


직관은 지속, 곧 성장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새로운 것 안에서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의 단절되지 않은 연속을 지각한다. 『사유와 운동』 앙리 베르그손


‘직관’은 “성장(진보·진화)에 연결되어” 있어요. 즉, ‘직관’은 우리가 질적인 변화(진화)를 맞이하도록 해주죠. 이는 ‘직관’이 ‘단절’이 아닌 ‘연속’을 보기 때문이죠. ‘직관’은 “새로운 것 안에서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의 단절되지 않은 연속을 지각”할 수 있게 해줘요. ‘직관’이 없는 이들은 성장하지 못하죠. 왜냐하면 그들은 ‘연속’을 보지 못하고 ‘단절’을 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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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은 ‘단절’이 아닌 ‘연속’을 보는 것


의미 없는 직장을 그만두어야 자신의 삶에 어떤 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알죠. 하지만 아무나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왜 그럴까요? 두려움 때문이죠. 이 두려움은 어디서 올까요? 바로 ‘단절’이죠. 직장 안(안정)과 직장 밖(불안)의 사이에서 어떤 ‘단절’을 보기 때문에 두려워지는 거죠. 하지만 ‘직관’이 있는 이들은 다르죠. 그들은 삶의 질적 도약을 위해 두려움 없이 직장을 그만둘 수 있죠. 왜냐하면 그들은 ‘단절’이 사실은 ‘연속’임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작가가 되기 위해 로펌을 그만둔 변호사를 알고 있어요. 그는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직관’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새로운 것(퇴사 이후의 삶) 안”에는 분명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글쓰기)”이 있겠지만, 그 새로움은 단지 변호사의 삶과 단절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이는 자명한 일이죠. 그가 글을 쓰게 된다면, 그 글에는 그의 변호사 시절의 흔적들이 담기게 될 테니까요. 바로 이 때문에 그는 다른 어떤 작가들과 다른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이 있는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는 분명 이전(변호사)의 삶과 ‘단절’했죠. 그런데 이 ‘단절’은 표면적인 것일 뿐이며, 진실은 “단절되지 않은 연속”이 이어지는 거죠. ‘직관’이란 이러한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는 힘인 거죠. 즉 허상일 뿐인 ‘단절’을 넘어 모든 것이 이어지고 있는 ‘연속’의 세계를 분명히 볼 수 있는 힘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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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은 ‘사유’된 ‘본능’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직관’에 이를 수 있을까요? 베르그손은 ‘직관’을 ‘최고 상태에 이른 본능’이라고 정의해요. 이는 ‘직관’이 ‘사유’된 ‘본능(충동)’이기 때문이죠. ‘직관’은 ‘지성’이 아니에요. 즉 합리·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직관’은 그 순간에 ‘지금 이걸 해야 한다!’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직관’이 동물적인 ‘본능’대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에요.


직관은 노력을 필요로 하며, 오래갈 수 없다. 『사유와 운동』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의 말처럼, “직관은 오래갈 수” 없죠. ‘직관’은 순간적인 판단이니까요.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글 쓰는 삶을 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직관’적 판단은 모두 순간적인 거잖아요. 이는 결코 합리·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죠. 그런데 이 ‘직관’이 순간적인 판단이라고 해서, 거기에 ‘지속’되는 노력이 필요 없는 건 아니에요. “직관은 노력을 필요로” 해요. 그것은 어떤 노력일까요? 바로 ‘지성’이에요.


직관은 오직 지성에 의해서만 전달된다. 직관은 관념 이상의 것이다. 그런데도 전달되기 위해서는 그 전달체로서 관념을 사용해야만 한다. 『사유와 운동』 앙리 베르그손


‘본능’이 ‘직관’이 되려면 반드시 ‘사유(지성)’적 훈련이 필요해요. ‘직관’은 분명 합리·논리·언어로 구성된 “관념(지성) 이상의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직관’에 이르기 위해서는 합리·논리·언어로 구성된 ‘지성’이 필요해요. ‘직관’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이는 “오직 지성(사유)에 의해서만 전달”되기 때문이죠. ‘직관’이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그 전달체로서 관념(사유)을 사용해야만”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직관’은 ‘사유’된 ‘본능’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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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는 ‘기억’을 찾고 펼치는 것


‘직관’은 동물적 ‘본능’이 아니기에 ‘사유(지성)’라는 노력이 필요해요. 이때 ‘사유’란 무엇일까요? 단지 어려운 책을 읽고 복잡한 생각을 하는 노력일까요? 아니에요. ‘사유’라는 노력은 자신의 ‘기억’을 찾고, 그것을 현실에서 그것을 적절하게 펼쳐나가는 노력일 거예요. 이것이 수준 높은 정신을 “충분히 전개된 정신”이라고 말하는 이유죠.


이제 우리는 어떻게 수준 높은 정신을 가질 수 있는지 말할 수 있죠. 먼저 우리 안에 있는‘충동’을 긍정해야 하죠. 그렇게 아직 결정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만나러 가야 해요. 하지만 그 ‘충동’을 동물적인 수준, 즉 ‘본능’에 머물게 해서는 안 돼요. 자신 깊은 곳에 있는 ‘기억’을 하나씩 찾고 그것을 현실에서 전개하려는 ‘사유(지성)’적 노력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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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높은 정신, 직관 혹은 사랑


사랑을 예로 설명해 볼게요. 수준 높은 ‘정신’의 대표적 사례는 사랑이죠. 수준 높은 ‘정신’을 가진 이만이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충동’을 긍정하는 것이죠. ‘저 사람은 돈이 많아’, ‘저 사람은 나를 편하게 해줘’라고 합리적·논리적인 마음으로 한 사람을 만나는 건 ‘충동’이 아니죠. ‘충동’은 ‘저 사람 만나면 안 될 것 같은데, 자꾸 생각나네.’라는 마음이 드는 상태에 가까울 거예요.


그런데 이런 마음(충동)을 그저 긍정한다고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아니죠. 예컨대, 그 사람에게 끌리기 때문에 섹스(본능)한다거나 혹은 무작정 그 사람을 소유(본능)하려는 마음은 사랑이 아니잖아요. 그런 성욕과 소유욕은 ‘충동’을 ‘본능’에 머물게 하는 일이죠. 이는 결코 수준 높은 ‘정신’이라 말할 수 없죠.


‘충동’을 긍정했다면, 이제 ‘사유’하려고 해야 해요. 반려동물에 대한 ‘기억’, 친구에 대한 ‘기억’, 아버지에 대한 ‘기억’, 첫사랑에 대한 ‘기억’, 소설과 영화의 ‘기억’ 등등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기억’을 하나씩 찾아서 그 사람에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해야 하죠. 그 기억을 현실적으로 전개해서 어떻게 그를 더 소중히 대하며 아껴줄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하죠. 이것이 바로 ‘사유’죠. 그러니 진정한 사랑은 수준 높은 ‘정신’에 이른 이들의 정신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직관’의 바닥에는 ‘본능’이 있지만, 이 ‘본능’이 ‘직관’이 되려면, ‘지성(사유)’적 훈련이 필요한 거죠. 이 훈련을 통해 ‘본능’과 ‘사유’를 화학적으로 결합시켜 그것이 하나의 혼합물인 된 상태가 바로 ‘직관’인 거예요. ‘본능’을 긍정하고, 그것을 ‘지성’과 융합시킬 때, 우리는 ‘직관’에 이르러 수준 높은 정신을 갖게 될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 한 존재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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