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의 ‘정신’은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가?
인간의 ‘정신’은 모두 수준 높은 정신, 즉 ‘기억’이 “충분히 전개된 정신”일까요? 그렇지 않죠. 인간의 ‘정신’은 ‘기억’이 ‘충분히 전개될 수 있는 정신’일 뿐, “충분히 전개된 정신”은 아니죠. 어떤 이는 ‘기억’을 충분히 (전개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개하지 못해서 돌멩이나 동식물처럼 살아가기도 하잖아요.
(외부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돌멩이처럼 살거나 (늘 주어진 일만 하며 사는) 벌처럼 살거나 (늘 밥을 주는 주인을 찾아 헤매는) 개처럼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요? 반면 어떤 이는 ‘기억’을 충분히 전개하여 새로운 ‘습관 기억’을 형성하며 질적인 변화(도약)를 이루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존재로 진보·진화를 거듭해 나가기도 하죠. 이처럼, 어떤 이는 낮은 수준의 정신을 갖고 살고, 또 어떤 이는 높은 수준의 정신을 갖고 살아가죠.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수준 높은 정신, 즉 “충분히 전개된 정신”이 어떤 것인지 조금 더 살펴봅시다.
충분히 전개된 정신이란 단순히 결정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이고 숙고된 행동을 할 수 있는 정신을 말한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에 따르면, “충분히 전개된 정신”은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어요. 하나는 “결정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정신’이고, 또 하나는 “합리적이고 숙고된 행동을 할 수 있는 정신”이에요. 전자는 ‘충동’, 후자는 ‘사유’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결정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건 ‘충동’적인 것이고, “합리적이고 숙고된 행동을 할 수 있는” 건 ‘사유’적인 것이기 때문이죠. 즉 “충분히 전개된 정신”이란 ‘충동’과 ‘사유’를 모두 갖고 있는 ‘정신’이에요.
수준 높은 정신, ‘충동’과 ‘사유’
직장을 예로 들어 볼까요? 내일 출근은 ‘결정된 행동’이잖아요. 이때 “결정되지 않은 행동” 즉, 결근·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는 건, ‘충동’적인 일이잖아요. 반면 “합리적으로 숙고된 행동”은 승진이나 이직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죠. 이는 ‘사유’적인 일이죠. “충분히 전개된 정신”이란, 이 ‘충동’과 ‘사유’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정신’을 의미해요, 이는 우리네 일상적 삶으로도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어요.
변호사를 한 명 알고 있어요. 그는 세계에서 가장 좋다고 인정받는 대학을 졸업했고, 한국에서 가장 좋다는 로펌에서 일을 했어요. 그렇다면 그는 “충분히 전개된 정신”을 갖고 있었을까요? ‘정신’이 단지 지식과 지성을 의미한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베르그손의 정의에 따른다면 전혀 그렇지 않죠. 그는 “합리적이고 숙고된 행동을 할 수 있는” ‘사유’는 있었지만, “결정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충동’은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그는 매 순간 “합리적으로 숙고된 행동”만 했을 뿐, 주어진 삶 밖으로 나서는, 즉 “결정되지 않은 행동”을 하진 못했죠. 쉽게 말해, 그의 ‘정신’에는 ‘사유’만 있었을 뿐, ‘충동’은 없었던 거죠. 그러던 그가 몇 달 동안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나가는 시간을 가졌어요. 베르그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정신’이 ‘기억’을 “충분히 전개”하는 시간(지속!)을 가졌던 거죠. 그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그가 말했어요.
“저, 글을 쓰고 싶어요.” 이는 어린 시절, 소설에 빠져 지냈던, 글을 쓰고 싶어 하던 흐릿한 자신의 ‘기억’을 찾았고, 그것을 현실로 전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그렇게 그는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 로펌을 그만두고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을 여행하며 자신만의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충동’인 거죠. 그는 “합리적이고 숙고된 행동”을 할 수 있는 ‘사유’의 ‘정신’뿐만 아니라 “결정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충동’의 ‘정신’을 갖게 된 거죠. 그는 한 인간으로 성숙(진화!)해진 거죠. 이는 “충분히 전개된 정신(수준 높은 정신)”에 이를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공무원과’ ‘방랑자’ 너머
이제 “충분히 전개된 정신”이 무엇인지 조금 더 명료하게 말할 수 있죠. 자신의 ‘기억’을 충분히 전개해서, 때로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나’를 발현할 ‘충동’적인 선택을 하고, 또 때로는 “합리적이고 숙고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유’가 가능한 상태인 거죠. “합리적이고 숙고된 행동”(사유)이나 “결정되지 않은 행동”(충동)만으로는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어요. 때로는 ‘사유’가, 때로는 ‘충동’이 필요해요. 이 ‘사유’와 ‘충동’이 균형잡힌 ‘정신’이 바로 “충분히 전개된 정신”인 거죠. 이러한 ‘정신’ 아래서만 우리는 비로소 질적인 변화, 즉 진화를 이루게 되는 거죠.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죠. 이 둘은 각각 ‘공무원(사유인)’과 ‘방랑자(충동인)’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거예요. ‘공무원’은 ‘사유’적이죠. 그래서 늘 “합리적이고 숙고된 행동”만 하죠. 이들은 항상 열심히 살지만 삶의 어느 지점에서 답답함과 우울감을 느끼게 돼요. 그들은 늘 그 안정적인 자리에 머물 뿐, 삶의 질적 도약(진화)이 없죠. 그래서 그들은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우울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거죠.
‘방랑자’는 어떨까요? 이들은 ‘충동’적이죠. 그래서 늘 “결정되지 않은 행동”을 하죠. 느닷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갑자기 해외로 떠나는 삶을 반복하는 이들이 있죠. 이들은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삶의 어느 지점에서 불안과 허무를 느끼게 되죠. 그들은 늘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자리에 머물기 때문에 어떤 삶의 질적 도약(진화)도 있을 수 없죠. 이것이 그들이 불안과 허무를 느끼게 되는 이유죠.
“충분히 전개된 정신”을 갖는다는 건 ‘충동’적인 ‘공무원’이 된다는 의미이고, ‘사유’하는 ‘방랑자’가 된다는 의미일 거예요. 즉, ‘충동’적으로 떠나야 할 때와 ‘사유’적으로 머물려야 할 때는 적확하게 아는 정신, 그것이 바로 수준 높은 정신 즉 “충분히 전개된 정신”일 거예요. 수준 높은 ‘정신’에 이르러 삶을 변화(진화)시키고 싶나요?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있는 ‘기억’을 충분히 전개해야 해요. 그렇게 “충분히 전개된 정신”에 이르러 ‘충동’과 ‘사유’를 모두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야 해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존의 ‘습관 기억’ 너머 새로운 ‘습관 기억’을 형성하며 존재론적 진화를 이룰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