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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연애는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닥쳐오는’ 것이다.

열쇠 도둑의 방법

연애를 부정하지 않는 솔로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언젠가는 자신도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연애를 ‘준비’한다. 어떤 이는 다이어트를 하고, 어떤 이는 옷을 사고, 또 어떤 이는 사랑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모든 것이 연애를 하기 위한 ‘준비’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준비해서 나쁠 게 뭐가 있을까. 그러니 연애를 ‘준비’하려는 사람들 역시 준비성이 철저한 성실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연애의 ‘준비’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기 전에 영화를 한 편 소개하고 싶다. 「열쇠도둑의 방법」 (감독 우치다 켄지, 2012)이다. 사랑을 ‘준비’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는  여성 잡지사 편집장인 ‘카나에’, 무명 배우인 ‘타케시’, 그리고 청부살인자인 ‘콘도’라는 세 명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영화는 청부살인자 콘도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타케시와 콘도가 서로 바뀐 삶을 살게 되면 벌어지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카나에’라는 여자다. 그녀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는 성격이다. 결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잡지사 편집장인 그녀는 부하직원들에게 자신의 결혼에 대한 일정과 계획에 대해서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아직 결혼 상대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일정과 계획, 준비 안에 결혼할 조건에 맞는 남자를 찾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 또 있을까?


 여기저기 맞선을 보던 중 카나에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콘도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카나에는 과거를 기억하지도 못하고 허름한 단칸방에 살게 된 콘도에게 조금씩 마음을 빼앗긴다. 급기야 카나에는 콘도의 살인청부업자라는 정체를 알게 된 이후에도 사랑을 멈추지 못하게 된다. 결국 카나에는 자신이 계획하고 준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연애를 시작하게 된 셈이다. 카나에의 사랑을 보면서 연애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연애는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닥쳐오는’ 것이다.
     

비단 연애만 그럴까? 우리는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세웠던 계획과 성실한 준비대로 일이 풀려 나갔던 적이 얼마나 있을까? 겹치고 겹친 우연과 통제할 수 없는 돌발변수에 의해 치밀했던 계획과 성실했던 준비는 허사로 돌아갔던 적이 한 두 번이던가. 연애 역시 삶의 일부이기에 마찬가지다. 연애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옥 같은 다이어트로 마른 몸을 갖게 되었지만, 눈앞에 나타난 매혹적인 사람이 통통한 사람이 좋다고 하면 어떻게 할 텐가? 연애를 위해 이런 저런 옷을 사다 모았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이 음악과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텐가? 연애를 하기 위해 돈을 악착같이 모았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이 돈만 밝히는 사람을 제일 격멸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연애는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닥쳐오는 것이다. 사랑은 차근차근 진행되는 감정이 아니다. 어느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휘말려 들어가 버리는 것이 사랑이다. 매사에 계획적이고 준비성 넘치는 카나에가 히키코모리 같은 ‘콘도’와 살인청부업자 ‘콘도’에게 휘말려 들어가 버린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랑이 휘말림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이런 일은 정말 영화 속의 일이기만 할까?

          

 친구 땜빵하러 세수도 안하고 나간 미팅 자리에서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날 수도 있다. 평소에는 얄쌍한 남자를 좋아했지만 어느 날 덩치 큰 어느 남자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 들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사랑이다. 연애는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이처럼 사랑은 휘말림이기에 연애는 계획할 수도, 준비할 수도 없다. 반대로 말해, 준비하고 계획할 수 있다면, 그건 연애가 아니라 의무 같은 노동이거나 사업 같은 돈벌이일 게다.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감정에 정직해지는 것이다.

 

이쯤 되면, 볼멘소리로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 지긋지긋한 솔로를 탈출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말란 말인가요?” 물론 아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옷을 사고, 돈도 모으는 것이 연애를 하는 데 왜 아무 필요가 없을까?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날씬한 사람을, 세련되게 옷 입는 사람을, 돈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 연애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그런 준비들이 전혀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연애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를 해야 한다면, 가장 중요한 준비는 감정에 정직해지는 것이다. 다시 카나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영화 밖으로 나오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카나에’가 존재한다. 매사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성실하게 준비하고 그래서 모든 일을 똑 부러지게 처리 하는 그런 사람들. 영화 밖의 그 ‘카나에’들이 진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도 보았다. 콘도와 사랑에 빠진 영화 속 카나에와 현실의 ‘카나에’는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의사를 한 명 알고 있다. 의대생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이제껏 그보다 더 인생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우연히 알게 된 자원봉사자였다. ‘그녀가 어디가 좋았냐?’는 내 질문에,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본적이 없어”라고 답했다. 그때 알았다. 친구는 이미 사랑이라는 감정에 휘말렸음을. 그 뒤로 가끔 그녀를 만나 밥도 먹고 함께 공연을 보러갔던 것으로 안다. 


현실의 ‘카나에’를 위하여 


의대생은 그녀와 연애를 시작했을까? 아니다. ‘그녀와 왜 사귀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가 돌린 답은 “나답지 못한 것 같아서”였다. ‘나답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자신의 계획과 준비에 예정 없이 불쑥 끼어든 그녀에게 빠져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영화 속 카나에는 어떻게 콘도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카나에는 자신의 감정에 정직했기에 때문이다. 히키코모리 같은 사람이지만 내가 그에게 끌리고 있다는 감정, 살인청부업자지만 여전히 그와 있으면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감정에 정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현실의 ‘카나에’인 의대생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은폐했다. 그녀의 그 해맑은 미소를 보며 느꼈던 설렘, 두근거림, 그리고 그녀를 만나면서 자신의 삶이 충만해지고 완전해지고 있다는 감정을 애써 부정했다. 그래서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 솔로들이 사랑을 기다리며 연애를 준비해야 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잘 살피고 그것에 정직해지는 것이다. 그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는 영화 속 카나에처럼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콘도’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솔로 탈출은 그렇게 이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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