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작된 사랑이 더 순도 높은 사랑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는 것의 어려움
남자는 스물여덟의 자유롭고 활동적인 대학생이었다. 남자는 너무나 매혹적인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남자에게 “저는 공무원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녀와 연애를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남자는 “제 꿈이 바로 공무원입니다. 하하.”라고 말해버렸다. 그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그때 남자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을 직감한 그는 허풍을 쳤던 게다. 그 허풍 때문에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불운하게(?) 합격을 하고 말았다.
남자는 공무원이 되었고 그녀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자유롭고 활동적인 남자는 틀에 박히고 경직된 공무원 사회에서 질식해가고 있었다. 결혼 5년 차, 남자는 살기 위해 여자에게 말했다. “나, 다른 일 해보면 어떨까? 공무원은 정말 안 맞는 것 같아” 돌아온 여자의 대답은 절망이었다. “지금 애들한테 들어갈 돈이 얼만데, 왜 이제 와서 딴 소리야. 공무원이 좋다고 말한 건 당신이잖아”
이제 여자의 이야기다. 소개팅 자리에서 매력적인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솔직했다. “전 몸매 좋은 여자가 좋아요” 여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팔이나 다리 같은 곳은 날씬한 편이었고, 뱃살은 잘 가릴 수 있는 옷을 입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전 원래 살이 잘 안찌는 체질이에요”라고 말해버렸다. 여자는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길로 헬스클럽 등록해 매일 같이 운동을 했다. 불운하게(?) 그녀는 날씬한 몸매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그때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알지 못했다.
직장에서 일이 많아지면서 스트레스가 많아졌고,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해소했던 그녀는 점점 살이 찌기 시작했다. 살이 찌면서 여자는 불안해졌다.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할까봐. 그녀는 다이어트 약을 먹기도 하고, 급기야 지방 흡입을 하러 병원에 다니기도 했다. 너무 힘들었던 그녀는 남자 친구에게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런저런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돌아온 남자의 답은 절망이었다. “왜 이제 와서 딴 소리야? 넌 원래 살 안찌는 체질이라고 말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인간은 그 대상이 누구라도 상관없이, 심지어 그 대상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관심과 인정, 칭찬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인간이 그런 존재인데, 하물며 사랑받고 싶은 대상에게는 오죽할까? 사랑받고 싶은 존재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정직하게 내보여주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무원이 좋다’고 말하는 여성에게 “난 자유로운 여행 수필가를 꿈꾸는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날씬 여자가 좋다’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난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는 일이다.
앞서 이야기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는 조금 극단적인 경우다. 연애를 하면서 사랑이 깊어져 상대의 거짓을 이해하고 그것까지 보듬어 주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거짓된 모습으로 시작된 사랑은 결국 그 거짓된 모습으로 자신을 점점 더 끌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 이보다 더 큰 불행도 없다. 거짓된 모습으로 연애를 시작해서 상처를 입어 본 사람은 안다. 연애를 시작할 때는 항상 정직해야 한다는 걸. 연애를 시작할 때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잘 통제해야 한다.
순도 높은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왜 그래야 할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작된 사랑이 더 순도 높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예쁜 외모에 끌려서 연애를 시작한 적도 있고, 나에게 잘 맞춰 줄 것 같은 성격에 끌려서 연애를 시작한 적도 있다. 정직하게 돌아보면 그 사랑은 그다지 순도가 높지 못했다. 더 예쁜 사람이 나타나서 사랑이 식어버리기도 했고, 나에게 더 잘 맞춰주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사랑이 식어버리기고 했으니까. 그런 내게 순도 높은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왠지 끌렸던 그녀와 두 번째 만나던 날이었다. 그날 ‘사귀고 싶다’는 나의 고백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꺼냈던 이야기는 나를 당황케 했다. “좋아요. 그런데 먼저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저는 아버지가 없어요.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어찌 보면 뜬금없는, 또 어찌 보면 아픈 이야기를 작은 떨림을 눌러가며 이야기했다. 순간 망설여졌다. ‘내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이 친구와 연애를 해도 좋은 걸까?’라는 걱정들 때문이었다.
그 순간의 망설임이 걷힌 뒤, 그녀가 빛나 보였다. 나는 사랑이 시작되려는 순간에 그녀처럼 정직한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그 어렵고 힘든 일을 그녀는 해내고 있었다. 그녀가 빛나보였던 건 그녀가 용기를 내어 보여준 어두운 모습 때문이었다. 그녀와 연애하면서 순도 높은 사랑이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내 것을 이기적으로 챙기려는 낮은 순도의 사랑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이기에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그런 순도 높은 사랑을 경험했다.
그녀와의 연애는 어떤 연애보다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랑의 순도와 행복의 순도는 비례한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녀 덕분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짧은 인생, 우리가 몇 번의 사랑을 할까? 기왕 하는 연애, 조금 더 순도 높은 사랑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용기를 내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