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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

우리는 왜 고백하지 못할까?

연애의 시작, 고백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귈까?”     


연인 관계는 가족, 동료, 선후배, 친구 관계 같은 일상적 관계들과 다르다. 무엇이 다른가? 연인 관계로 돌입하기 위해서는 ‘고백’이라는 의식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일상적 관계를 시작하는데 고백을 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부터 우리 가족 할래요?” “나는 오늘부터 당신의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말은 어색하지 않은가? 일상적 관계는 자연스럽게 시작되어 자연스럽게 유지되고 이어진다. 하지만 다들 알겠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연애는 그렇게 시작되지 않는다. 고백이 없다면, 연애는 시작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고백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고백의 어려움 때문에 연애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제자리걸음을 하곤 한다. 연애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둘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에, 고백에는 두 가지 형식이 있다. ‘하는 고백’과 ‘받는 고백’ 결국 연애라는 것은 누가 고백을 하고, 누가 고백을 받는 과정을 통해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가 어려워하는 고백은 ‘받는 고백’이 아니다. ‘하는 고백’이다.     



 마흔을 넘길 때까지 제대로 된 연애를 한 번도 못 해본 사람이 있다. 그녀는 항상 외롭다고 말하며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절대 고백하지 않는다. ‘먼저 고백하라’는 나의 조언에 그녀가 돌리는 답은 매번 같다. “연애를 못하는 한 있어도 절대 먼저 고백은 안할 거예요!” 그녀는 ‘고백하는 것’이 어려워 지긋지긋해 하는 솔로 생활에서 탈출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 사람이 내게 고백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고백하는 것’은 어렵다. ‘고백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누구든 바라는 일이다. 당연하다. 누구에게든 사랑받고 싶은 것이 인간 아니던가? 그러니 누군가 나에게 고백하는 것보다 황홀한 일도 없다. 어딜 가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그래서 이성으로부터 고백을 줄지어 받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자신은 고백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에 드는 상대가 먼저 와서 나에게 고백을 해주는 것, 상상만 해도 황홀한 일 아닌가? ‘고백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상상에 더욱 황홀감을 느낄 게다.     



우리는 왜 고백하지 못할까?


현실은 상상이 아니다. 평범한 외모에, 그저 그런 내면을 가진 우리는 이성으로부터 고백을 끌어낼 특별한 매력이 없다. 인정하자.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백을 해야 한다. 고백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매력적인 사람이 나타나도 고백을 할 수 없는 걸까? “쪽팔리니까 그렇지!”라고 단순하게 답하지 말고 고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고백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깊게 알아보자. 그 고백의 어려움이 바로 우리가 고백을 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이유일 테다.


 우선, 단연 첫 번째 이유는 ‘거절당할까봐서’다. “사실 저 오랫동안 성찬씨를 좋아해왔어요.”라는 고백에 “아, 저는 미숙씨를 이성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라는 답변을 듣는다면 어떨까? 용기를 내어 고백했지만 거절당한다면 그 민망함, 창피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거절당했을 때 결코 피할 수 없는, 그 상상도 하기 싫은 민망함, 창피함 때문에 쉽사리 고백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쪽팔림을 감당하느니 차라리 연애를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 쪽팔림이다. 고백은 쪽팔리는 일이다. 그런데 그 쪽팔림이라는 게 상대가 나의 고백을 거절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백의 쪽팔림은 단순한 거절의 쪽팔림의 문제가 아니다. 진지하게 누군가에게 고백해본 사람은 안다. 고백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상대 앞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오래 전부터 널 좋아했었어.”라는 고백은 상대의 반응과 별개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기에 힘든 것이다.     


고백이 쪽팔리는 진짜 이유


여기서 고백이 힘든 두 번째이자 본질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진짜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어서’다. 고백이 쪽팔리는 진짜 이유는 상대의 거절 때문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가 누구이든 진짜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이다. 고백은 빼도 박도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는 일 아닌가? 언제나 자신 감정을 숨기느라 애를 써왔던 사람이라면, 이 고백은 사실상 불가능한 도전에 가깝다.


 고백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주도권’이다. 이 이유는 연애 꽤나 해봤다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발견된다. 연애 좀 해봤다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연애에서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는 거야’ 맞다. 연애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된다. 생각해보라. 몇 년을 따라 다니고 수십 번의 고백을 통해 겨우 연애를 하게 된 남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 남자가 여자 친구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언제나 노심초사 여자 친구의 눈치를 보는 약자로 연애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고백이란 게 뭔가? 쉽게 말해, 내 패를 먼저 다 까 보이는 것이다.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더라도 먼저 고백하는 사람은 상대가 나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먼저 고백했기 때문이다. 먼저 고백하는 사람이 연애에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고백을 받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연애를 좀 해본 사람들은 종종 먼저 고백하지 않는다. 연애가 시작되고 나서 눈치 보는 약자가 아니라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연애를 하고 싶어서 말이다. 때로는 연애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고백을 하지 않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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