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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통해 발견하는 건, ‘타자’

“나는 타자를 발견한 적 있을까?”

연애를 통해 발견하는 건, ‘타자’다.


연애를 통해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건 ‘타자’다. 이 타자라는 건, 이성과는 다르다. 타자라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나와 다른 존재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타자를 ‘다른 어떤 누구로도 환원되지 않는 개별적이고 유일한 존재’라고 정의하고 싶다. 놀랍게도 진짜 연애를 몇 번 해보면 알게 된다. 여자(남자)는 없다는 걸. 오직 예빈, 유나, 수향, 정은, 동환, 우진, 선빈, 진규 같은 개별적이고 유일한 한 사람만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연애를 하면 추상적인 여자 혹은 남자라는 이성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유일하고 단독적인 그 한 사람, 즉 ‘타자’를 알게 되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여자, 남자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실이지 않은가? 세상에 여자가 어디 있나? 또 남자는 어디 있나? 있으면 데려 와보라. 예빈, 유나, 수향, 정은이라는 유일하고 단독적인 한 사람을 데려올 수 있을 뿐이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연애를 통해 여자나 남자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로 환원되지 않는 개별적이고 유일한 ‘타자’를 알게 된다.



 의구심이 든다. 타자라는 것을 꼭 연애를 통해서만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주위에 얼마나 많은 타자들이 존재하던가. 그러니 꼭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예빈, 유나, 수향, 정은, 동환, 우진, 선빈, 진규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여기에 우리의 치명적인 오해가 숨어 있다. 우리는 타자를 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전혀 모른다. 우리는 오직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서만 타자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직장 동료, 선후배들을 알고 있을까? 모른다. 타자라는 것은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사람을 통해서만 발견된다. 직장 동료나 친구가 내 생일에 함께 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무슨 일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 간다. 하지만 그 상대가 여자(남자)친구라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내 생일에 여자(남자)친구가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면, 무슨 일인지 또 그 일이 내 생일보다 더 중요한지 집요하게 묻고 싶어진다.



내 마음과 같아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타자

사랑하는 이에게 바란다. 내 마음과 같기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 상대 역시 살아왔던 삶의 맥락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맘과 같기를 바라지만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사랑하는 상대를 발견할 때 비로소 타자를 발견하게 된다. ‘아, 내 생일이 남자(여자)친구의 아버지 기일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밤마다 통화가 안 되는 건, 우울증 치료 때문에 수면제를 먹고 있기 때문이었구나.’라는 걸 그제 서야 알게 된다.


 일상적 관계에서 타자를 발견할 일은 없다. 애초에 직장동료나 친구에게는 내 마음과 같기를 바라지 않는 까닭이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싶다. 남자(여자)친구가 내 마음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사랑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그 불가능한 요구. 그 불가능한 요구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타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 연애를 통해 알게 되는 건, 이성이 아니라 타자다.

       

 많은 연애를 했지만, 타자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여자(남자)만 발견했다면,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 연애를 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고 단독적인 한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 혹은 남자라는 유령과 만난 것일 테니까. 진짜 연애는 여자 혹은 남자라는 이성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과도 대체 불가능한 유일하고 단독적인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것이 연애다. 이제 우리에게 물어볼 차례다. “나는 타자를 발견한 적 있을까?” “나는 연애를 한 적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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