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성감대를 찾을 수 있을까?
라캉은 신경증자의 신체는 본질적으로 죽은 신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신경증자의 신체는 기표로 덧쓰여져 있다. 그것은 상징계의 의해 코드화되어 있다.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으로서의 신체는 사회화를 통해 점차 ‘길들여져’ 극소수의 영역에 숨어들 뿐인데, 그것이 이른 바 성감대이다. 신체는 바로 이런 성감대 속에서만 살아 있으며, 실재적일 수 있다. 「라캉과 정신의학」 브루스 핑크
육체적 오르가즘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보자. 육체적 오르가즘으로 들어가는 문은 성감대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흥분되고, 절정의 쾌감을 선물해줄 수 있는 비밀이 성감대에 있다. 황지우의 말처럼 ‘이타심이 이기심’이라면, 우리는 상대의 성감대를 찾아 그곳을 자극해주는 이타적 행위를 통해 우리의 이기심(성적 쾌감)을 찾을 수 있다. 쉽게 말해, 나의 오르가즘을 위해 먼저 상대를 오르가즘에 이르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 상대의 성감대를 찾아야 한다.
성기가 성감대인 것은 아니다. 대체로 성기가 성감대이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성감대는 미묘하게 다르다. 어떤 사람은 손이 성감대인 경우도 있고, 등이 성감대인 경우도 있다. 성기가 성감대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성기에서 쾌감을 느끼는 위치가 미묘하게 다르다. 섹스를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남자는 여기가 성감대잖아’, ‘여자는 여기가 성감대잖아’라고 확신하는 경우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전혀 다른 존재이듯 성감대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떻게 상대의 성감대를 찾을 수 있을까? 이타적인 섹스를 해야 한다. 그 이전에 만났던 이성과의 섹스는 모조리 잊은 것처럼, 처음 섹스를 해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상대를 만지고 애무하면서 섬세하게 상대의 반응을 살펴야 한다. 작은 움직임, 표정, 호흡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 정도의 이타성이 없다면 상대의 성감대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줄 수도 없다. 고로 자신 역시 오르가즘을 느낄 수도 없다. 이타심은 이기심이니까.
오르가즘을 맛보고 싶다면, 이기심을 내려놓고 먼저 이타심으로 상대를 대하자. 정서적으로 이타적인 존재가 되고, 육체적으로 이타적인 존재가 되자. 그렇게 상대의 성감대를 찾자. 야동을 백 번 보는 것보다 상대를 섬세하게 살피는 것이 성감대를 찾고,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다.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이 없다면, 아니 그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면, 혹시 내가 너무 이기적인 사랑과 섹스만을 해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