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도 연애에서도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잊자.
사랑의 확인, ‘나 사랑해?’
‘너 나 사랑해?’라는 사랑의 확인은 부질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모두 타자다. 타자는 어떤 식으로도 제어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연인의 자유 의지인 것이지 강요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 너 사랑해?’라는 질문을 한다고 해서 이미 식은 사랑이 복원되는 일은 없다. 심지어 사랑의 확인은 부질없는 것인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반복된 사랑의 확인은 자칫 사랑을 의무로 변질시키기도 한다. 반복된 사랑의 확인, 그러니까 ‘나 사랑하는 거 맞아?’라는 반복된 질문은 자칫 상대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해야만’ 하는 존재로 느끼도록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연애에서 사랑의 확인은 너무나 간절하지만 가급적 참고 견디는 편이 더 낫다. 사랑의 확인을 확인하다고 해서 상황이 호전되는 경우 없고,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만 있는 까닭이다.
사랑의 확인 대상은 누구인가?
하지만 사랑을 확인하라! 이게 무슨 말인가? 방금까지 사랑의 확인은 부질없으며 위험하다고까지 말하지 않았나. 사랑의 확인은 부질없고 위험한 것이지만 동시에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이 모순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체로 사랑의 확인 대상은 상대다. 연인이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고 한다. 하지만 바로 우리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만큼 결코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사랑은 언제나 확고하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확인 대상이 타자일 경우, 그 사랑의 확인은 부질없고 위험하다. 하지만 사랑의 확인 대상이 자신인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는 대체로 ‘내가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걸까?’ 라는 질문은 건너뛴 채 언제나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걸까?’ 라는 질문만을 부여잡고 있다.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있다. 이건 다른 연인들을 판단할 때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자신의 연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은 결코 변하지 않는 지고지순한 순애보적 사랑을 하는 주인공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 상대는 언제든 다른 사람을 만나 떠날 수 있는 변덕스런 사랑을 하는 악역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사랑 앞에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 사랑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데, 그 사람이 나를 버리고 떠났어.’라며 말이다.
사랑을 확인하자. 바로 나의 사랑을.
연애 중이라면 나의 사랑을 확인하자. ‘나는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그 사람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라는 질문보다 중요하다. 인생이 꼬일 때가 언제일까? 그건 내가 할 수 일들을 외면한 채,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집착할 때다. 삶의 어려움이 닥쳤을 때, 헤쳐 나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할 수 없는 일들은 잊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연애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우리를 사랑해줄지 말지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일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는 겸허히 기다릴 뿐이다. 삶에서도 연애에서도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잊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가면 된다. 그러니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잊자.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만 하자.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라면, 상대가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말고 후회 없이 사랑하자.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다행스럽게도 상대가 나를 사랑해준다면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연애하자. ‘진인사대천명’,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면, 매순간 ‘진인사대천명’의 심정으로 상대를 사랑하자. 그것이 지혜로운, 성숙한 연애다.